[경상도의 숨은 명산 의성 금성산]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死火山

김재준 '한국유산기' 작가 2023. 7. 24.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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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금성산
들판에 우뚝선 금성산.

며칠 비 내려서 들판마다 초록은 파릇하고 농부들 일손이 바쁘다. 상쾌한 아침의 꽃, 금계국은 길가에 서서 살랑살랑 봄빛을 흔들어 댄다. 산 입구에서부터 졸졸 산개울 물 흐르는 소리, 뻐꾸기 소리, 산비둘기 소리, 수많은 자연의 소리도 바빠졌다. 오전 10시 20분 돌계단 오르는 길, 신갈·상수리나무, 엉겅퀴꽃은 산뜻한 햇살을 머금어 짙붉다. 쥐똥나무 흰꽃, 빨간 산딸기, 노란 애기똥풀, 며느리밑씻개·박주가리·모시풀, 저마다 비에 씻겨 해맑다.

등산로 입구 주차장

들판에 우뚝 선 금성산

금성산(530m)은 들판에 우뚝 선 모양이 오래된 유적처럼 예사롭지 않다. 이 산에 갈 때마다 나는 "묵언수행默言修行의 산"이라 말한다. 조문국 때 만들었다는 산성의 자취가 남아 있다. 조문국은 의성군 금성면 일대 고대국가로, 신라에 병합되기까지 독자적인 문화를 가졌다. 옛터를 따라 용문바위, 전망바위, 발아래 풍경과 금성산을 거쳐 비봉산 능선길 산조팝나무, 기린초 군락을 보는 것도 즐겁다. 비봉산을 아울러 고즈넉한 천년고찰 수정사도 둘러본다면 덤이다. 비봉산까지 시계방향으로 환종주할 경우엔 산행 거리 10km, 5시간 정도 걸린다. 탑리오층석탑, 조문국 사적지, 문익점 면작비, 공룡 발자국 유적도 둘러볼 만하다.

구불구불한 소나무지대에 나무껍질마다 빗물을 머금어 더욱 검다. 화선지에 그려진 먹빛처럼 바윗돌과 소나무가 어우러졌다. 오르막 산길 20분 오르면 산성 터 주변에 빗방울 다 털지 못한 산딸기가 탐스럽다. 입 안에 넣은 한 움큼은 알싸한 맛이다.

산성 터.

용문바위와 한반도 정기의 중심

오른쪽 0.6km 거리 용문바위로 걷는데 새소리는 계곡 물소리에 섞여 들린다. 벽오동나무 푸른색 줄기는 짙은데 이파리 기세가 대단하다. 쥐똥·자귀·산벚·산머루·좀작살나무. 자잘한 열매가 꽃봉오리 닮은 고욤나무와 밤나무꽃은 금방 피려고 늘어졌다.

11시에 마주한 용문바위는 밀림 속의 신전, 커다란 바위 돌문을 닮았다. 용이 승천했다는 꼭대기를 쳐다보니 하늘이 뻥 뚫렸고 빗물이 흘러내려 폭포수처럼 떨어진다. 바위에 부처손이 자라고 군데군데 쇠꼬챙이 박혔는데 암벽등반 금지 팻말을 세워 놨다.

전망암에서 바라본 금성면 일대(조문국의 도읍지).

건너편 비봉산 바라보다 수문장처럼 입구를 지키고 선 팽나무를 뒤로하고 기다란 데크길을 걷는다. 호랑버들·산수유·산조팝, 울긋불긋 꽃싸리, 작살나무는 금방 꽃 필 듯 봉오리 맺혔다. 산수유나무는 인근 사곡면 화전리에 수만 그루의 고목 군락지가 있는데 이른 봄이면 노란 꽃이 소박한 시골 마을을 뒤덮어 장관을 이룬다.

자주색 엉겅퀴꽃과 비슷한 뻐꾹채를 이야기하다 11시 15분 주등산로 병마훈련장(용문 0.2·용문정 1.4·정상 0.4·관망대 0.2km)에 도착했다, 잠시 긴 철계단을 올라서니 해발 530m 금성산 정상(주차장 1.1·병마훈련장 0.4·흔들바위 0.2km)에 닿는다.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에 있는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 휴화산인 백두산·한라산보다 맏이며 사화산이다. 지역에선 가마를 닮아 '가마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백두·한라의 정기를 잇는 중심, 명당으로 알려졌다.

금성산 정상, 발복의 터로 이름났다

화산 폭발로 생긴 작은 운동장 크기의 쉼터에는 커다란 할미꽃이 먼 데 바라보고 섰다.

"이곳은 무덤이 금기인데 누군가 묘를 썼군. 묘비명 김성산金城山."

옆에서 웃지만 정상 표지석이 꼭 비석을 닮았다. 산꼭대기에 조상 묘를 쓰면 만석꾼이 되고 산 아래 마을은 3년 동안 가뭄이 든다는 전설이 있다. 금성산 화산회토火山灰土 영향을 받아 주변의 마늘은 '금마늘'로 유명하다.

조문국의 자취, 가뭄 심하면 묘를 팠다

'조문 전망암'에 서서 산 아래 내려다보니 금성 탑리 벌판이 시원하게 펼쳐졌는데 붉은빛 농토의 흙들이 탐스럽다. 곳곳에 에메랄드빛 요정의 샘을 그린 듯한 저수지. 의성에 크고 작은 저수지가 아흔아홉 개 있다는 말이 실감 난다. 초록에 둘러싸인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눈길을 돌려 보니 봉긋봉긋 수많은 무덤이 누워 있다. 조문국 사적지다. 저 멀리 왼쪽부터 팔공산, 시계방향으로 금오산, 비봉산, 속리산, 소백산 자락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11시 45분 지금부터 소나무와 바위 능선길인데 드물게 신갈·물푸레나무, 숲의 중층에는 노간주·진달래·싸리나무, 하층식생은 산조팝·기린초·사초·둥굴레들이 어울려 산다. 10분 걸어 갈림길(용문정 1.4·용구무 샘터 1.1km) 지나고 금방 해가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 코를 실룩거리니 기분 좋은 냄새, 지오스민이다. 처음 비 내릴 무렵, 소나기가 쏟아질 때 산길에서 나는 독특한 흙냄새. 정서적 안정과 우울증·아토피 치료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비봉산 정상.

정오 지나 봉수대를 바라보다 곧바로 수정사 갈림길(못동길 제오리 1.7·수정사 2.8·봉수대 0.3·노적봉 갈림길 1.7km). 노적봉 가는 능선 주변에 비석 깨뜨린 흔적이 있는데 파묘의 산물일 것이다. 한때 금성산은 암장이 잦았다. 무덤 쓰고 3달3년3대째에 복이 든다는 것. 이른바 '333의 대복', 반면 산 아래는 가뭄이 생긴대서 매장을 금했지만 몰래 묘를 쓰자 가뭄이 극심했던 1973년 대대적으로 파헤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능선길 왼쪽을 바라보니 오른쪽으로 제오리, 의성 읍내가 훤하다. 소나무 숲이 우거져선지 연신 거미줄이 얼굴에 달라붙는다. 스틱으로 걷으며 걸어도 매한가지. 12시 30분 빽빽하게 들어찬 소나무 밀림지대 부처손 자생지, 철계단 지나고 호젓한 산길 30분 더 걸어 비봉산 갈림길(수정사 1·비봉산 정상 0.8·노적봉 갈림길 0.4·금성산 정상 3.6km)에 섰다. 여기서 수정사로 바로 내려가면 1km 거리다. 완만한 오르막길인데 은근히 힘에 부치는 구간이지만 온갖 식물들이 만든 숲속의 주인 실사리·삽주·둥굴레·산쑥·사초·고사리·산오이풀, 이들을 헤아려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용이 승천한 용문.

비봉산 산조팝나무 바위길

며칠 비가 내렸는데 또 흐렸다. 하늘과 숲도 어두워졌다. 오후 1시20분 미역줄·청시닥나무 위로 어느덧 비봉산 정상(금성산 정상 4.4·수정사 갈림 1·비봉산 갈림 0.8km)에 닿는다. 해발 671m 우뚝 솟은 산이 마치 봉황이 날아가는 형상. 여기서 가늠해 보니 비봉산이 좌청룡, 금성산은 우백호가 되어 수정사를 호위하는 형국이다.

비봉산 정상에서 산행 날머리 감시탑까지 구간은 대개 바위 능선으로 오르내림이 많아 몇 개의 등성이를 넘어야 한다. 20분 남짓 걸어가자 수정사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바로 내려가면 수정사, 환종주 코스는 계속 직진해야 하는데 피라미드 같은 산이 앞에 턱 버티고 섰다. 까마득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오를 수 있다. 내리막 능선길마다 빗물에 의해 퇴적층이 생겨 계단처럼 멋스러운데 아쉬운 것은 금성산주차장까지 거리 표시가 없다.

바위 능선길에 뻐꾸기 소리는 속세를 떠난 듯 아득하고 오른쪽 발아래 기와지붕이 빤히 보이는 수정사 절집이다. 노란 기린초꽃은 한창 피고 있지만 산조팝나무꽃은 벌써 지고 없다. 하얀 꽃 피는 산조팝은 깊은 산 바위틈에 1m 정도 자란다. 줄기는 커다란 포기로 갈라져 활처럼 휘고 묵은 가지와 둥근 잎은 붉은 갈색빛을 띠므로 고결하게 보인다.

국보 탑리오층석탑(분황사 모전탑과 함께 통일신라 전기양식).

오후 2시경 평원 같은 능선 바위에 서서 멀리 바라보니 최고의 조망지점이다. 왼쪽으로 희미한 팔공산 언저리, 가음저수지, 그러다 금성산 쪽으로 용문, 의성 읍내, 뒤돌아보면 여인의 턱으로 불리는 바위산. 금성산은 소나무길, 비봉산은 5월에 산조팝나무 꽃필 무렵이 일품이다.

오후 2시 50분, 감시탑에 제압당한 경치가 아쉽다. 망루처럼 생긴 저 꼭대기에서 산불감시를 하는 초소일 것이다. 재난방지가 풍경에 우선하니 어쩌랴, 팥배나무 이파리는 짙고 산벚나무 버찌는 벌써 빨개졌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면서 오른쪽으로 이국적인 거대한 바위산, 조문국이 쌓은 산성이 쇳덩이처럼 견고했다는 의미에서 쇠울산성, 금성金城산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어도 일행이 내려오지 않아 바위산에서 눈을 떼니 기린초와 고들빼기 노란 꽃 덕분에 소나무 숲이 환해졌다. 구절초·꽃싸리·산쑥, 오후 3시 20분 주차장으로 돌아오자 애처로운 산비둘기 소리는 계곡 물소리에 이내 묻혀 버렸다.

산행길잡이

금성산주차장 ~ 산성 터 ~ 용문바위 ~ 금성산 정상 ·봉수대(영니산) ~ 비봉산·감시탑·금성산주차장

※ 환종주 9.9km, 5시간 정도, 금성산주차장 주차료 없음, 수도 사용 가능.(원점회귀 후 차를 타고 수정사까지 둘러보면 피로를 줄일 수 있다)

교통

중앙고속도로 의성IC → 5번국도 의성 방향 4km 진행, 구미리에서 우회전 → 927번 지방도, 금성면 탑리 도착 → 춘산, 현서 방면의 68번 지방도로 → 산운생태공원(옛 산운초교)으로 좌회전

※ 내비게이션 → 의성군 금성면 수정사길 221(주차장).

숙식

금성면 탑리, 의성 읍내에 여관, 다양한 식당이 많다. ※ 탑리 논산 칼국수, 춘산 막걸리를 많이 찾는다.

주변 볼거리

탑리오층석탑, 조문국 사적지, 문익점 면작비, 공룡 발자국 유적, 빙계계곡 등.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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