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수해복구 현장] 토사 치우고 빨래해주고…“하루빨리 일상 복귀했으면”

서륜 2023. 7. 24.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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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전라지역
범농협·군인·경찰 등 한달음에
침수 비닐하우스 정리 ‘구슬땀’
세탁차량 동원 옷가지 등 빨아
농가들 “다시 일어설 힘 납니다”
충남 논산시 성동면 삼호리 구연육묘장에서 육군 32사단 장병들이 침수 피해로 못 쓰게 된 수박·토마토·오이·양배추 모종을 전량 폐기하고 있다.

중부권을 강타한 폭우가 그치며 피해지역 복구작업에 속도가 붙고 있다. 특히 농촌은 피해가 막심한 농가를 돕겠다며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범농협은 물론 군인·경찰까지 적극적으로 복구 지원에 나서면서 농가들은 조금씩 충격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다음 농사를 기약하며 복구작업 매진=“다 치우려면 인력 10여명을 하루 종일 써야 하는데, 이렇게 와서 도와주니 다시 일어설 힘이 납니다.”

며칠 전만 해도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물폭탄을 퍼붓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땡볕이 내리쬔 20일. 충남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에 있는 고대환씨(72)와 구본근씨(60) 수박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충남세종농협본부, NH농협 논산시지부, 강경농협 직원 35명이 아침 일찍부터 바닥에 널브러져 누렇게 상해가는 수박과 말라비틀어진 넝쿨을 치우고 있었다.

고씨는 폭우로 비닐하우스 14동, 구씨는 6동이 침수되는 막대한 피해를 봤다. 중복·말복을 겨냥해 수박을 재배했는데 한동당 400만∼500만원이 날아간 셈이다.

심재집 전북 익산군산축협 조합장(왼쪽 세번째)과 농협사료, 목우촌 직원들이 수해를 입은 익산시 황등면 신기리 축산농가에서 바닥에 두껍게 쌓인 토사와 분뇨를 치우고 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흐르는 비닐하우스 안은 오전 시간인데도 벌써 30℃를 넘겼다. 한낮에는 40℃를 훌쩍 넘길 태세다. 고씨는 “어제 오후 1시에 비닐하우스 안 온도계를 보니 43℃였는데, 오늘도 그 정도 될 것 같다”며 무더위 속에서 작업에 여념 없는 농협 직원을 걱정했다.

직원들은 먼저 넝쿨과 상한 수박을 수거한 후, 바닥 멀칭비닐에 꽂혀 있던 핀도 뽑았다. 그런 다음 비닐하우스 옆면 비닐을 고정하는 고리도 모두 제거했다. 무더위 속에 작업이 이어지면서 이들의 옷은 땀범벅이 됐고, 이마에도 땀이 비 오듯 쉼 없이 흘렀다. 작업 중간 쉬는 시간에는 얼음물을 연신 들이켰다.

구씨는 “가뜩이나 수해로 손실이 막대한 상황에서 비닐하우스 복구 인력까지 돈 주고 불러야 할 판이었는데, 농협 직원이 본인 하우스처럼 열심히 일해줘 일말의 희망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충북농협본부가 청주시 오송지역에 급파한 세탁차량에서 오송농협 직원과 고향주부모임 회원들이 수재민이 가져온 옷가지와 이불을 빨고 있다. 논산=현진, 익산=박철현, 청주=황송민 기자

◆쉼 없이 돌아가는 세탁차량…얼룩진 마음도 깨끗해졌으면=충북에서 수해를 가장 크게 입은 청주시 흥덕구 오송지역에 특별한 차량이 찾아왔다. 충북농협본부(본부장 이정표)가 17일 진천농협(조합장 박기현)이 운영하는 세탁차량을 급파한 것.

세탁차량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오송읍에 퍼지자 흙탕물을 뒤집어쓴 옷과 이불을 가득 실은 차량이 줄지어 도착했다. 오송농협(조합장 박광순)과 진천농협 직원들은 옷가지를 분류하고 세탁을 시작했다. 하지만 밀려든 옷가지에 세탁기와 건조기 2대로는 역부족이었다.

이때 오송농협 직원이 기지를 발휘해 인근에서 고무통 5개를 구해 와 손빨래를 시작했다. 직원들은 30℃가 넘는 무더운 날씨에도 고무통을 줄지어놓고 빨래와 헹굼을 반복했다. 하지만 넘쳐나는 빨래에 이번에는 일손이 모자랐다.

오송농협은 25년 만에 부활한 고향주부모임(회장 김남욱)에 ‘에스오에스(SOS)’를 보냈다. 고향주부모임 회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와줬다. 이들은 2인 1조로 팀을 짜 오전·오후로 나눠 세탁작업에 적극 참여했다.

옷가지를 찾으러 온 김원기씨(72·궁평리)는 “옷 하나 변변하게 챙기지 못해 고생이었는데, 오전에 맡긴 빨래를 건조까지 완벽하게 해줘 큰 걱정거리를 덜었다”며 “얼룩진 마음도 덩달아 깨끗해진 느낌”이라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군인·경찰 합심해 ‘농촌 지킴이’ 자처=재난과 재해 현장에 반드시 나타나는 이들이 있다. 군인과 경찰이다. 20일 토사가 쏟아져 아수라장이 된 전남 영암군 도포면 봉호리에서는 전남 경찰청 3기동대가 복구작업을 진두지휘했다.

경찰 60여명은 비닐하우스 주변에 쏟아진 토사와 쓸려 내려온 나무를 치우는 작업을 했다. 낮 기온이 30℃를 넘는 무더위에, 물기를 머금어 종아리까지 빠지는 흙 속에서도 쉬지 않고 삽으로 흙과 나무를 걷어내 물길을 만들었다.

전북에서는 육군 35사단 익산대대 장병들이 익산지역 축산농가를 찾아 복구활동에 여념이 없었다. 황등면의 한 축사에서 주변 환경 정리에 구슬땀을 흘린 김충좌 대대장은 “수해로 큰 상처를 입은 주민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 육군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복구작업에 속도를 내겠다”고 힘줘 말했다.

35사단은 이번 전북 호우 피해 복구작전에 병력 1300여명, 굴착기 등 39대를 투입해 익산시 망성면·용안면·용동면 일대에서 활동했다.

범농협도 농촌 피해현장 곳곳을 누볐다. 19∼20일 오전 전북 전주김제완주축협(조합장 김창수), 익산군산축협(〃심재집)과 농협사료(군산바이오·전북지사), 목우촌 김제육가공공장 등이 힘을 합쳐 집중호우 피해를 극복하고자 황등면 신기리의 안종서씨와 함열읍 와리의 김진용씨 축사를 찾아 복구활동을 펼쳤다. 전날에는 전주김제완주축협이 힘을 보탰다.

땀과 토사로 뒤범벅이 된 김기백 익산군산축협 계장은 “일은 고되지만 오늘 흘린 땀방울이 가슴 아픈 농가들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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