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시간에 뛰어서 배고프다는데…‘아동학대’ 아닌가요?” 민원에 위축되는 교사들 [긴급점검]

김희원 2023. 7. 23.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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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하면 학대, 못 하면 방임…“할 수 있는 게 없다”
“아이 문제는 교사 무능 탓” 민원으로 ‘담임 교체’도
“신고 두려워 아이들 적극 교육할 수 없는 현실 슬퍼”
“문제 해결하며 성장해야…학부모 민원은 기회 박탈”
<사례1>
 
“선생님, 대체 체육시간에 뭘 하는 거죠? 우리 아이가 급식을 먹었는데도 체육 활동 때문에 집에 와서 배가 고프답니다. 이거 아동학대 아닌가요?”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인 A교사는 한 학부모로부터 이런 문자를 받고 당황했다. 체육시간에 학생 체력 증진을 위해 각자 하고 싶은 운동을 해보도록 지도했는데, 열심히 운동장을 걷고 집에 간 학생이 배가 고프다고 하자 학부모가 항의한 것이다. 
 
이런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A교사는 “자기 아이가 힘든 수업, 자기 아이가 속상해지는 활동은 하지 말라는 학부모들의 민원은 수없이 많다”면서 “이에 상처받은 교사들은 적극적인 교육활동을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체육 시간에 축구를 하는 학생들 모습. 연합뉴스
<사례2>
 
경기도 한 초등학교의 B교사는 언어폭력 문제로 학교에서 유명한 아이의 담임이 됐다. 여교사들이 해당 학생을 감당하기 버거워해 남교사인 B교사가 맡은 것인데, 해당 학생과 부모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욕설한 아이를 지도하면 다음날 학부모로부터 ‘아이의 마음이 다쳤다’며 따지는 문자를 받는다. 심지어 부모는 아이의 특수성은 부정하면서 “욕을 한다고 해서 친구들이 다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애가 얼마나 힘들면 욕을 하겠나. 그럼에도 아이의 마음을 살펴주지 않는 것은 교사의 방임, 직무유기”라고 담임을 탓했다.
 
문제 학생을 적극적으로 지도할 수도 없는 B교사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무력감을 호소했다.
 
2년차 초등교사의 극단적 선택에 전국 교사들이 분노하는 까닭은 숨진 교사가 겪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악성 민원과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특정 학교, 일부 교사들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23일 세계일보에 학교 현장의 실태를 제보한 교사들은 “언론에 공개된 사례들이 별로 충격적이지 않다. 바로 오늘도 내가, 내 동료 교사가 겪은 일”이라면서 “현장에선 훨씬 심각한 일이 비일비재하며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입을 모은다.
23일 서울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마련된 한 초등학교 사망 교사 분향소에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사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붙어 있다. 뉴시스
◆베테랑 교사도 못 피하는 ‘민원’ 스트레스

교사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문제 학생보다 문제 부모들이다. 

경기도 12년차 초등교사 C씨는 “자기 아이의 몸과 마음이 불편해지는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부모들이 많고, 그것을 교사에게 항의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가 됐다”면서 “모든 학부모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10년 전보다 크고 작은 민원이 많아졌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교사에게 직접 연락할 방법이 많아진 점, 교사를 보호해 줄 법적 장치가 없어 학교가 웬만하면 민원을 들어주는 점도 민원이 늘어난 이유로 꼽힌다.

초등교사들이 가장 기피하는 1학년의 경우 학부모들이 어린이집 보육교사에게 부탁하듯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된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5년차 교사 D씨는 “수업 중간 아이의 약을 먹여달라거나, 볼일을 볼 때 뒤처리까지 부탁하는 경우가 있다. 수시로 이런 전화와 문자를 받아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며 “이런 민원 때문에 1학년은 보육과 돌봄이 주가 되어버렸고 사실상 교육과정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최근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한 초등학교 교사를 추모하는 검은 리본을 달고 있는 교사들. 뉴스1
1학년 때 시작된 학부모 민원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짝을 바꿔달라는 민원은 ‘애교’ 수준이다. 대전의 5년차 교사 E씨는 “악성 민원을 넣는 특정 학부모가 있으면 그 아이가 있는 곳이 매해 기피 학년이 된다”며 “경력이 많다고 해서 더 잘 견딜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20년차 베테랑 교사도 운이 없으면 악성 민원 학부모를 만나 무력감에 빠지고 고통받는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악성 민원 학부모를 만나게 되는 것을 ‘교통사고’에 비유하기도 한다. 의지와 상관없이 당하며 심각한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교사가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다 일을 쉬거나 교직을 떠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기도 신도시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최근 한 학급의 담임이 교체되면서 휴직했다. 해당 학급 학부모가 교장실에 담임교체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는데, 그 이유는 ‘우리 아이가 문제행동을 한 이유는 담임의 생활지도가 부족해서이니 교사 자질이 없는 담임을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학교 10년차 교사 F씨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문제로 한 학급 담임이 교체되는 등 매년 한 번씩은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전했다.
◆교사에게 감정 풀고 책임 전가…“우리도 사람”

일부 부모들의 잘못된 사랑은 아이가 친구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문제 상황에서도 자기 자식만 감싸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경기도의 4년차 초등교사 G씨는 “최근 교실에서 커터칼을 휘두르던 5학년 학생을 교사가 붙잡고 말린 아찔한 상황이 있었다. 그런데 부모는 교사가 아이를 잘못 지도한 탓으로 돌리더라”면서 “학생을 십수년 키운 것은 부모인데 왜 학생이 잘못한 것이 부모가 아닌 교사탓이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학생간 갈등·폭력 사건에서 가해학생의 부모가 아이를 혼내지 않고 교사를 나무라는 경우도 많다. “우리 아이의 잘못만은 아닌데 왜 차별하냐” “왜 우리 아이 마음은 생각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교사에 책임을 돌리는 태도는 피해자 부모에서도 나타난다. “아이들이 싸울 때 교사는 안 보고 뭐했나” “교사 자격이 없다”고 다그친다. 

B교사는 “부모님들의 속상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교사에게 쏟아내면 정말 힘들다”면서 “교사들도 사람이고 그런 압박을 견디는 법을 배운적 없는 사람들”이라고 토로했다.
23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추모객들이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뉴시스
학생을 지도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교사들이 ‘아동학대’로 신고 당하는 일도 허다하다. 전국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교사가 아동학대로 신고당한 사례는 1252건에 달한다. 기소도 되지 않은 경우가 절반 이상(53.9%)인 데다 실제 유죄로 판결된 경우는 거의 없지만 학부모와 법적 다툼을 벌여야하는 교사는 상당한 정신적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하면 주변 교사들은 위축되고 무력감에 빠진다. 울산의 4년차 초등교사 H씨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오해를 풀어주고,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을 진행하는 모든 순간 ‘혹시 이 행위 때문에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 하며 아이들을 대한다”면서 “사랑하는 우리반 아이들이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가르침과 사랑을 주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무섭다”고 말했다.

모든 문제를 민원으로 해결하려는 일부 학부모들의 태도는 교사의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방해하고,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해당 학생의 성장 기회도 박탈한다. 

E교사는 “갈등이 생기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대화하고 설득하고 양보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성장하는 것인데 과도한 학부모 민원은 이런 기회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라면서 “무조건 교사에게 직접 해결을 요구하고 아이가 조금도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하려는 세태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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