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양평 고속도로, 양서면·강상면 ‘종점 변경’ 그리고 의혹들

손봉석 기자 2023. 7. 2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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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 주민들이 설치한 서울~양평 고속도로 백지화 철회를 요구하는 현수막. 손봉석 기자



“서울 양평 고속도로를 휘게한 국정농단의 힘”(열린민주장), “양평 고속도로 변경안 그대로 착공하라”(우리공화당), “12만 양평군민의 숙원 서울~양평 고속도로 백지화 철회하라”(양영군 호남향우회 일동) “양평군의 단 하나의 염원 서울~양평고속도로 개통”(사단법인 양평친환경인증법인 대표이사)

지난 22일 경기도 양평군에는 특혜 의혹과 고속도로 백지화에 대한 우려가 뒤얽힌 현수막들이 곳곳에 나부끼고 있었다. 양평역 주변에는 야당과 시민단체 주장을 바탕으로 한 도로 변경 의혹을 지적하는 문장이 많았다. 반면 군청 주변에는 의혹 여부를 떠나서 사업 시행을 요구하는 주장이 많았다. 남한강변 주변에는 의혹이나 비리를 비판하기보다는 ‘정치권’를 비판하고 지역개발을 빨리해 달라는 취지로 읽히는 내용이 이어졌다.

이는 2031년에 개통될 예정이던 서울~양평 고속도로가 대통령 처가 부동산 특혜 의혹으로 인해 사업 확정 및 시기가 불투명한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사업계획이 수립된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경기도 하남시 감일동에서 양평군 양서면까지 27㎞ 구간을 관통하는 왕복 4차선 고속도로 건설사업으로, 국도 6호선의 교통량을 분산하기 위해서 추진됐다. 첫 단계로 2017년부터 2019년 국토부 ‘광역교통 2030’까지 양평 두물머리 인근 양서면을 계속 종점으로 정했던 이 고속도로 노선은 2021년 4월에는 예비타당성 조사도 통과했다. 사업 취지에는 양서면을 종점으로 하면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두물머리 지역 교통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점도 포함됐다.

양평군청 인근에 설치된 서울~양평 고속도로 관련 현수막들 . 손보석 기자



그런데 지난해 7월1일 민선 8기로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 군수가 취임한 후 양평군은 같은 달 18일 국토부로부터 ‘노선 검토 요청’을 전달받았다. 이후 군 측은 8일 만에 강상면 종점안이 포함된 3가지 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올해 5월 8일에 종점을 바꿔 양평군 강상면으로 변경한 ‘서울~양평 고속국도 건설사업 결정 내용’이 공개됐다. 주변 교통망 정체를 완화하고 교통수요 확보가 가능하다고 변경 이유를 전했고, 환경문제 등도 고려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기존 노선보다 2.2㎞가 늘어나고 사업비도 1000억원 정도 증액된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서 국토부 타당성 조사까지 마무리한 상태에서 도로 건설사업 종점이 바뀐 것은 드문 사례라는 지적도 일각에선 나왔다. 또 양평군에서도 “경제성을 재분석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토부에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갑작스러운 노선 변경 과정에서 주민들과의 협의 절차도 없었고, 교통량 분산에도 큰 도움이 안 된다는 비판까지 이어졌다. 실제로 바뀐 종점으로 인해 전체 노선 중 약 55%가 변화 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지역 정가 한 유력 인사는 “기존 노선을 흔들게 되면 십몇 년 해왔던 환경영향평가 등 여러 절차들을 처음부터 다시 하게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양평역 인근에 설치된 서울~양평 고속도로 의혹을 제기한 현수막. 손봉석 기자



이런 상황에서 언론과 정치권에서 새로 종점으로 낙점된 강상면 지역에 축구장 3배 넓이(2만2,663㎡)의 땅을 윤석열 대통령의 처가 식구들이 소유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 토지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재직 시절에도 명의신탁 의혹이 불거진 곳이다. 따라서 윤 대통령 처가에 고속도로 건설에 따른 개발이익을 주기 위해 노선을 바꾼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윤 대통령의 장모 최씨가 소유한 양평읍 백안리 일대 농지를 다른 사람이 경작하고 있는 것도 알려졌다.

이런 과정에서 의혹을 수습하고 사업 변경에 대해 해명해야 할 정부는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키는 행보를 보여줬다. 종점안 변경 시점이 2022년 7월에서 5월로 바뀌는가 하면, 결정 두 달 전인 3월부터 민간 용역업체가 타당성 조사를 벌인 끝에 강상면을 최종안으로 제시했다고 해명했다.

양평역에 설치된 고속도로 건설 관련 의견을 담은 현수막들. 손봉석 기자



또 주무부처인 국토부 원희룡 장관은 지난달 29일에는 국회 국토위에 출석해 “실무 부서의 의견일 뿐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라며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특혜 의혹 등 관련 이슈가 계속 이어지자 이달 6일에는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의 ‘백지화’를 선언했다. 스스로 ‘전면 재검토’를 언급하다 일주일 만에 돌연 ‘백지화’를 직접 선언한 것이다. 원 장관은 “차라리 다음 정부가 하라”는 등 거친 말도 쏟아냈다.

원 장관은 그동안 “노선 변경 전까지 윤 대통령 처가 식구들의 부동산이 강상면에 있는지 몰랐다”는 주장도 했다. 그는 사업 전면 중단을 말하는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의 땅이 그곳에 있다는 걸 사전에 알았다면 정치생명을 걸겠다”고도 말했다. 이에 대해 한준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강상면 병산리에 있는 김 여사 땅의 지가 상승 문제를 지적했다”며 “당시 원 장관도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고 반박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양평 땅 관련 의혹이 이어지자 지난 9일 “국토부가 알아서 해야 할 문제”라며 “향후 어떻게 될지는 여야가 논의하는 게 옳다”는 입장을 보였다.

지난 22일 양평군청 앞에서 지역 시민단체가 투영한 고속도로 사업 진행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손봉석 기자



관련 이슈들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환경영향평가는 진행된 바가 없고,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사업 결정 내용’이 공개된 것이 아니라 ‘서울-양평 고속국도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 항목 등의 결정내용’이 공개가 된 것으로 전략환경영향평가 항목을 결정하는 내용인데 사업이 결정된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으며 시종점이 바뀌는 것은 드문 사례가 아니라는 내용의 보도참고자료를 지난 14일 배포했다”고 입장을 전했다.

이번 논란은 결국 고속도로 종점인 강상면 일대에 대통령 처가 식구들의 토지가 있다는 것이 의혹의 본질이다. 즉 사업 검토 이후 2021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마칠 때까지 계속 양서면에 있던 종점이 윤석열 정부 집권 후 강상면으로 갑자기 바뀐 타당한 근거를 내놓으면 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연합뉴스



하지만 대통령 처가가 수년 동안 토지 지목을 ‘임야’에서 대지·창고용지·도로로 변경하고 등록전환을 해 개발을 준비해 온 정황이 이미 드러났다. 게다가 종점 변겅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양평군 도시건설국장 A씨가 이전에도 대통령 처가가 연루된 ‘공흥지구 사건’과 관련해 공문서 위조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의혹을 가라앉히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혼란에 휩싸여 있지만, 취재 중 만나 지역주민들은 적어도 두 가지에는 뜻을 같이하고 있었다. 하나는 어서 논란이 수습돼 고속도로가 빨리 생겼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백지화’를 주장한 원희룡 장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매우 강했다는 점이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변경안을 지지하는 보수정당 현수막. 손봉석 기자



양평군 남한강변에 설치된 현수막들



손봉석 기자 paulso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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