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공인' 받은 깨끗한 공기…울진의 청정 계곡들

이재진 2023. 7. 21.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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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특집] 꼭꼭 숨은 보석 같은 계곡들
왕피천

국내에서 가장 깨끗한 공기를 자랑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슬로건은 '대한민국의 숨, 울진'이다. 지난 2021년 환경부로부터 전국에서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낮은 도시로 선정된 울진은 지난해 '공기 모범도시Good Air City'로 선정돼 가장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국가 차원에서 공인 받았다.

울진은 전체 면적의 85%가 크고 작은 산으로 이뤄져 있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어 곳곳에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계곡들이 꼭꼭 숨어 있다. 올해 한국도 전 지구적 기상이변에서 자유롭지 못할 듯하다. 올 여름은 엘니뇨의 영향으로 예년보다 더운 피서철이 예고돼 있다. 인파에 시달리지 않는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계곡이 도열해 있는 울진으로 가자.

왕피천.

왕피천 | 쉽게 갈 수 없지만 완만한 물길 매력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발원해 울진군 서면과 근남면을 거쳐 동해로 흘러드는 왕피천은 총 연장 68km에 달하는 물줄기다. 오지답게 쉽사리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생각한다면 기대를 접는 것이 좋다. 자가용을 이용해 왕피리나 상천동에서 트레킹을 시작한 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상류인 왕피리 속사마을과 하류인 구산리 상천동 어느 쪽에서 시작하든 다시 간 길을 되밟아 나오는 것을 권한다. 이 두 마을 사이의 거리는 약 5km. 왕복 10km쯤으로 만만치 않다.

왕피천은 하상이 완만하고 길이 잘 나 있어 물을 따라 걸어도 크게 힘들지 않다. 하지만 중간의 비경지대인 용소는 건너기 어렵기 때문에 사면으로 길을 낸 생태탐방로를 타고 우회하는 것이 안전하다. 왕피천 생태탐방로는 계곡에서 약간 떨어진 산자락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가파른 구간도 있지만 계단이나 밧줄을 설치해 크게 위험한 곳은 없다. 하지만 탐방로가 왕피천과 조금 떨어져 있어 중간에 용소로 내려서는 길을 따라 잠시 물가를 걷는 것도 좋다. 왕피천은 맑고 깨끗해 보이지만 상류에 민가가 있어 식수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마실 물을 미리 충분히 준비하도록 한다. 왕피천의 비경지대인 상천동과 속사마을을 왕복하는 데 걸어서 4시간가량 소요된다. 중간에 식사를 하거나 수영하며 더위를 식히는 데 소요되는 시간까지 합하면 하루 코스로 적당하다.

골포천

골포천 | 금강송 어우러진 그림 같은 오지계곡

낙동강 상류의 지류인 '골포천'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골짜기로, 워낙 외진 곳에 있어 이 또한 접근이 쉽지 않다. 계곡 중간에 마을이 있지만 높은 고개를 넘어야 닿을 수 있다. 골포천은 북쪽으로 오미산(1,071.1m)과 백병산(1,036m) 줄기가 둘러싸고 있고, 동쪽은 진조산(908.4m)에서 삿갓재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이 장벽처럼 막아서고 있다. 서쪽으로 터진 골짜기는 낙동강으로 이어진다. 해발 1,000m가 넘는 험준한 산줄기를 깊게 파고든 계곡이 바로 골포천이다.

골포천이 관통하는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 일대는 소광리에 버금가는 금강송 밀집지역이다. 숲에 들어서면 하늘을 향해 곧게 솟구친 붉은빛 소나무들이 눈길을 끈다.

골포천 상류는 계곡미가 뛰어나다. 비교적 넓고 하상이 완만하며 곳곳에 넓은 소와 폭포가 나타나며 자연스러운 풍광을 연출한다. 여러 개의 지류가 합류되지만 수심이 깊은 곳이 거의 없어 무난하게 계곡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단 유난히 뱀이 많은 곳이라 주의가 필요하다. 골포천 트레킹은 전천동마을의 포장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호젓한 임도를 따라 1km 정도 걷다 보면 왼쪽에 넓은 공터와 외딴집이 보이는데 이곳에서 계곡으로 내려서서 물을 따라 걷는다. 수려한 풍광의 오지계곡이 시작된다. 울창한 숲을 가르는 널찍한 계곡에 물이 가득하고, 햇빛을 받은 나뭇잎이 반짝이며 흔들린다. 흰색 자갈이 깔린 계곡 바닥을 따라 무작정 걷는다. 물이 얕은 곳은 그냥 발을 담그며 이동한다. 길이 따로 없다. 골포천은 잔잔한 아름다움을 지닌 골짜기다. 적당한 크기의 바위가 고르게 깔려 있어 편안한 느낌을 준다. 가끔 큰 바위가 나타나지만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아 수월하게 걸을 수 있다.

골포천은 오지산행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 적합한 계곡산행지다. 평소에는 물길을 따라 걸어도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수심이 낮은 편이다. 하지만 폭우가 내릴 경우 지류가 많아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 위험하다. 지형이 험해 탈출도 쉽지 않고 뱀도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안전을 위해 산행 중 스틱이나 신발로 소리를 내며 걷고, 긴 바지와 목이 긴 등산화, 스패츠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구수골

구수골 | 안전시설 잘 갖춰져 가족 피서지로 적합

구수골은 골짜기를 건너는 곳마다 예쁜 아치형 다리가 놓여 있고, 등산로도 잘 다듬어져 있다. 다리 수는 일일이 세기 어려울 정도. 그만큼 계곡 양쪽으로 건너는 횟수가 많다. 스테인리스스틸 난간이 길게 암반 계곡을 따라 이어지기도 한다. 긴 암반 와류나 옥빛의 소가 누워 있기도 한 구수골 풍치는 탄성을 지르게 한다. 구수골은 많은 부분이 옥빛 계류와 암반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다리가 놓였어도 직접 계류 속을 걸어 보고픈 유혹을 느낀다. 폭우가 내려 물이 크게 불어난 경우만 아니면 계곡산행에 무리가 없을 만큼 순하다. 물론 중간에 몇 군데 큰 소를 이룬 곳은 우회해야 한다.

구수골은 울진의 다른 오지계곡에 비해서 접근이 어렵지 않아서 가족 피서에 적합하다. 계곡의 수온이 비교적 높아 아이들 물놀이하기에도 적당하다. 구수골은 눈 속마저 훤히 맑아지는 듯한 착각이 일 만큼 깨끗한 암반으로 길게 이어진다. 오대산 청학동 소금강처럼 희고 깨끗한 암반 위로 맑은 계류가 감돌아 흐르는가 하면, 어떤 곳은 큼직한 호박만 한 바윗덩이들이 널렸고, 한편은 모래톱을 이룬 평평한 곳도 나타난다.

구수곡자연휴양림에 자리 잡고 계곡 상류까지 올랐다가 하산하는 당일산행이 가장 권할 만하다. 구수골의 전체 길이는 약 7km이나, 휴양림에서 4km 상류의 웅녀폭포까지만 갔다가 되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기서 능선으로 올라가 울진 지역 특유의 금강송 군락지를 보고 내려오는 것도 좋다.

중림골

중림골 | 산길 거의 없어 개척산행 각오해야

울진군 금강송면 왕피리 통고산(1,066m)에 위치하고 있으며 들머리인 금강송면 햇네마을까지 가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금강송면에서 구불구불한 콘크리트 산길을 따라 16km, 한 시간을 차로 들어가야 초입인 햇네마을주차장(금강송면 한내길 317)에 닿는다. 무릎 이하로 수심이 낮은 왕피천을 횡단하면 중림골 입구. 중림골은 통고산이 거느린 계곡 중 가장 길다. 산길이 거의 없으므로 개척산행이 기본이며 계곡을 끝까지 따라 오르면 능선의 937.7m봉에 닿는다.

거리에 비해 시간 소모가 커 당일에 오르기가 쉽지 않고, 길 찾기에 극도로 주의해야 한다. 잘못 들기 쉬운 지계곡 입구가 널려 있고, 잘못 들어간 계곡도 때 묻지 않은 미모의 골짜기가 많아 홀린 듯 조난당하기 쉽다. 수심이 깊은 곳은 드물지만, 발을 담그지 않으면 지나기 까다로운 곳이 여럿 있어 처음부터 발 담그고 텀벙텀벙 걷는 것이 중림골을 즐기는 노하우.

왕피천 상류인 이곳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오지계곡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 산의 계곡을 생각하고 찾았다간 큰 코 다칠 수 있다. 제대로 된 산길과 이정표가 없어 순전히 지도와 나침반, GPS에 길 찾기를 의존해야 한다. 초보자보다는 개척산행 경험이 있는 독도 능력을 갖춘 중상급자를 위한 모험적인 계곡 탐험지다.

코발트빛 바닷물 뚝뚝…울진 바다가 풀어놓는 '황홀'

남효선 시인·언론인

조선조 최고의 문사이자 정치가였던 송강松江 정철鄭澈은 관동팔경의 으뜸인 울진 망양정에 올라 생선 비늘처럼 반짝이는 은빛 바다와 흰 구슬을 쏟듯 쏴아 쏟아지는 맑은 햇살을 보며 '하늘 끝을 끝내 보지 못해 망양정에 오르니 /바다 밖은 하늘이니 하늘 밖은 무엇인고/가득 노한 고래 누가 놀래기에/불거니 뿜거니 어지러이 구는지고/ 온 산을 깎아내어 천지 사방에 내리는 듯/ 오월 장천에 백설은 무슨 일인고'라며 감탄했다.

울진의 여름은 바다로부터 온다. 7월 울진은 푸름의 세상이다. 산천은 짙은 녹색의 세상을 만들고 바다는 투명한 속살을 오롯이 드러낸 에메랄드빛이다. 송강 정철이 망양정에 올라 노래했듯 울진의 바다는 '파도가 백설처럼 부서지고 너울거리는' 쪽빛이다. 단연코 여름 바다의 압권은 서해보다는 동해, 그중에서도 송림과 은빛 모래와 바다의 푸른 갈기가 어우러진 남북 117km의 울진 바다이다.

바다를 끼고 가없이 펼쳐진 백사장을 따라 걷다 보면 아무 데서나 송강 정철이 '오월 장천에 내리는 백설'로 노래한 은빛 바다와 조우한다.

동서트레일 울진 시범구간을 걷고 있는 손병복 울진군수 (사진 맨앞줄 왼쪽)와 관계자들.

한반도 東西 잇는 트레일, 울진에서 첫삽

울진~태안 잇는 849㎞ '동서트레일' 시범 구간 개통

한반도 동쪽과 서쪽 849㎞를 연결하는 숲길이 처음 열린다. 산림청과 경북도 울진군은 지난 6월 1일 경북 울진군 근남면 한티재 정상에서 '동서트레일' 시범 구간 개통 행사를 열었다.

동서트레일은 경북 울진군에서 충남 태안군까지 이어지는 걷기길로 산림청과 경북·충남·충북·대전시·세종시 등 시도 5곳이 힘을 합쳐, 한반도 동쪽 울진 금강소나무숲과 서쪽 태안 안면도 소나무숲을 서로 연결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총 사업비 604억 원이 투입되며 2026년 전 구간이 열린다.

시범구간 개통 행사.

이 길은 광역 자치단체 5곳 내 시·군 21곳, 읍·면·동 87곳에 걸쳐 있다. 구간당 평균 15㎞, 총 55구간으로 나뉘고, 평평한 숲길뿐 아니라 언덕길, 산길 등 다양한 코스로 구성된다. 탐방객이 쉬어갈 수 있는 거점 마을 90개를 지정하고, 야영장 43곳도 만들 예정.

동서트레일 내에서 경북도가 차지하는 구간은 275㎞. 전체 구간의 3분의 1이자, 광역 단체 5곳 중 가장 길다. 경북도내에서는 울진, 봉화, 영주, 예천, 문경, 상주 6곳. 이번에 시범 개통된 울진 구간은 옛날 동해안 지역에서 과거 시험 보러 한양으로 가던 첫 번째 4.4㎞ 고갯길이다. 총 55개 구간 중 가장 마지막 구간이자, 동쪽 첫 번째 구간인 셈.

산림청 관계자는 "마을 주민들이 길을 열어 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사업"이라며 "옛 사람들이 다니던 길을 이어 만든 것일 뿐, 억지로 나무를 베어내 만든 길은 거의 없다"고 했다.

망양 해변.

'오월 장천에 내리는 백설' 망양望洋

조선조 숙종 임금이 어제시御製詩를 내려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로 칭한 울진 망양정에 오르면 울진의 젖줄 왕피천과 동해 푸른 바다가 서로 나들며 가슴을 섞는 황홀을 만날 수 있다. 망양정 앞바다를 끼고 파도가 빚은 해안도로를 따라 기성 망양 갯바위에 서면 은빛 바다만큼 상큼한 추억이 한아름 밀려온다. 기성 망양리에 조성된 '울진대게' 조형물 포토존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사진찍기 좋은 녹색 명소'로 지정된 곳이자 '오징어풍물거리'로 지정된 울진군의 특화 먹거리 명소이다.

에코힐링로드. 하트해변 품은 죽변스카이레일.

왜구 막던 대나무숲, '에코힐링로드'로

울진대게와 울진문어, 가자미의 주산지인 죽변항을 에워싼 '죽변대가실 대숲'과 죽변등대는 일상에 찌든 가슴속 멍울을 단번에 씻어주는 청량제이다.

선인들이 왜구의 침탈을 막기 위해 죽변곶 절벽에 심은 죽전竹箭(화살촉 만드는 대나무)숲이 제 몸을 흔들어 들려주는 댓잎 서걱이는 소리에는 한반도와 울릉·독도를 온전히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의 웅혼한 혼이 묻어 나온다.

고려조 당시 왜구의 침탈을 막기 위해 가꾼 '죽변 대가실 대숲'은 국토수호의 역사적 현장에서 시리도록 눈부신 쪽빛 바다를 한눈에 조망하는 '에코힐링로드'로 거듭났다.

해질녘 대숲 오솔길은 댓잎과 여름 바다가 한데 어울려 만드는 '천상의 소리 길'로 변신한다.

최근 드라마세트장과 하트해변을 품고 바다 위를 달리는 '죽변해안스카이레일'이 조성돼 '핫플'로 세인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죽변등대 일원서 발굴된 8,000년 전 유적은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신석기 유적 중 가장 오래된 초기 신석기 유적으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조금 더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른 아침 죽변항에서 바다가 풀어놓은 싱싱한 삶의 현장을 만날 수 있다. 평생 바다와 함께 자식을 키우고 가족을 건사해 온 죽변항 사람들이 풀어놓는 은빛 바다처럼 투명하고 싱싱한 노동의 가치는 가히 울진 죽변항에서만 볼 수 있는 삶의 성찰이다.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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