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매장 2위' 서울…'인스타 허세'인가 '가치 소비'인가

김예원 기자 김기성 기자 2023. 7. 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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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만? 빈티지·향수도 즐긴다"…부산 합치면 명품 매장 5% 한국에
"다변화된 자기 표현으로 봐야" vs "과소비 등 부추길 수도"
7월19일 서울 중구의 한 백화점에서 사람들이 명품 구매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2023.7.19/뉴스1 ⓒ News1 김기성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김기성 기자 = 19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백화점.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명품 매장이 늘어선 1층엔 곳곳에선 대기줄이 눈에 띄었다. 명품 매장이 몰린 이곳은 카드지갑, 가방 등 제품을 사기 위해 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다른 층보다 유동인구가 많았다.

가방 구매를 위해 A 브랜드 매장 앞에서 대기 중이던 50대 직장인 엄모씨는 "주위를 둘러보면 가방부터 옷, 구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명품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며 "유행도 크게 타지 않고 수리, 교환 등도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으니 다들 하나씩은 구매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일상이 된 명품 소비가 전세계 명품 업계 판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의 명품 매장은 221개로 일본 도쿄(234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샤넬 등 명품 탄생지인 프랑스 파리(165개)보다 더 많은 셈이다.

백화점 등 매장에서 브랜드 로고 가방을 구매하는 '전통적' 방식뿐만 아니라 화장품 등 스몰 럭셔리(20만원 안팎의 사치), 단종된 빈티지 디자인 구매 등 명품 구매가 정체성 표현 중 하나로 자리잡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일각에선 명품 소비의 활성화가 경제적 양극화가 심한 한국 사회에서 과소비를 부추기고 일부 계층에 열패감을 안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 시내 한 백화점에서 시민이 화장품을 고르고 있다.. 2023.4.16/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이날 서울 중구 인근에 위치한 또다른 백화점. 화장품, 향수 코너가 주로 모여있는 매대 곳곳엔 직원 도움으로 제품을 체험하거나 이를 구매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제품당 10~30가지 색상이 구비된 립스틱 매대 등을 구경하며 맞춤형 제품을 고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명품 소비에 과시적인 측면이 있다는 점에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그 이유가 브랜드 제품 구매의 전부는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향수를 시향해보던 20대 대학생 이모씨는 "날씨나 약속 분위기에 따라 향을 달리 할 정도로 관심이 많은 편"이라면서 "비싼 브랜드 향수일수록 독특한 잔향이 남는 등 만족스러웠던 경험이 많다. 과시보다는 가치에 맞는 돈을 지불하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사치'보다는 '자기 표현'의 방식으로 명품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중고 명품 거래도 활발하다. 20대 직장인 황모씨는 명품 중고거래 앱이나 빈티지 마켓 등을 통해 반지, 팔찌 등 액세서리를 구매하는 게 취미다. 단종된 디자인을 값싼 가격으로 쉽게 구할 수 있어서다.

황씨는 "명품 브랜드의 경우 대부분 역사가 길어 빈티지 제품들도 독특하고 예쁜 디자인들이 많다"며 "단종된 디자인의 경우 내가 가진 제품이 오직 하나밖에 없거나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명품 로고보다는 희소성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갤러리아백화점의 불가리 매장.(갤러리아백화점 제공) 2021.5.2/뉴스1

전문가들은 이같은 명품 소비의 일상화에 대해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질좋은 제품을 향한 열망과 젊은층 위주로 정체성 표현에 대한 욕구가 높아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한국인의 경제적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젊은 층 위주로 자기 표현의 욕구가 활발해지면서 나타나는 소비 현상"이라며 "모바일 플랫폼 등 거래 접근성도 낮아진 것도 한몫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김재휘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로고 가방에서부터 화장품 등 작은 소품에 이르기까지 명품이 유행하는 양상을 살펴보면 결국 자기 표현의 욕구와 맞닿아 있다"며 "단순히 과소비로만 보고 지탄하기보다는 각자가 처한 경제적 여건에 맞게 표현 수단이 다양해진 것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선 명품 소비의 만연화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사회적 박탈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늘날 명품을 통한 자기표현은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진다.

비교문화가 자리잡은 한국 사회에서 명품 전시에 과도하게 노출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과소비를 조장하거나 그럴 여건이 안되는 이들의 소외감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동료와 매대를 구경하던 30대 직장인 조모씨는 "주위에 절반 정도는 의류, 가방 등 값비싼 명품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며 "다들 사니까 따라산다고 한다. 각자 경제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물건을 사는 게 당연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의 경우 젊은 세대로 갈수록 경제적 여건에 따른 분화 정도가 심한 편"이라며 "모든 사람들이 일상적인 명품 소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SNS 등을 통한 명품 전시에 꾸준히 노출되면 사회적 무력감, 과소비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kimye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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