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출발지 영어유치원]②월 200만원 등골 휘어도…공교육 불신에 영유 몰려가는 학부모들

홍다영 기자 2023. 7. 20.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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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 유치원은 거의 무료, 사립유치원도 10만원대 들지만
월 200만~300만원 내고 영어유치원 보내는 부모들
‘일반 유치원·어린이집에서 영어 못 배운다’는 게 이유
어릴 때 영어 실력 갖추고 입시 준비 본격적으로 하려는 의도도

최근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가 입시학원은 물론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이른바 ‘영어유치원’ 편법 및 불법 행위에도 칼을 빼들었다. 자녀를 무조건 의대로 진학시키려는 ‘의대 광풍’이 사교육 시장의 종착점이라면, 4세 전후로 시작하는 영어 유치원은 사교육의 출발지로 볼 수 있다. 조선비즈는 사교육의 시작점인 영어유치원의 운영 현황과 문제점에 대해 집중 조명한다.[편집자 주]

올해 4년제 사립대 등록금은 평균 757만원이다. 한 학기에 378만원으로, 수업하는 기간으로만 계산하면 월 100만원쯤이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유아들이 다니는 이른바 ‘영어유치원(유아 영어학원)’ 학원비는 월 200만원 수준이다. 반면 정부 지원을 받는 일반 사립 유치원은 학부모 부담이 월 16만원 수준이고, 국·공립 유치원은 월 7000원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

학부모들이 대학 등록금의 두 배, 사립 유치원의 12배나 되는 학원비를 부담하면서 자녀를 유아 영어학원에 보내는 배경에는 불안·불신이 있다. ‘내 아이만 뒤쳐질 것 같다’는 불안, ‘공교육으로는 영어를 제대로 배울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신이다. 어릴 때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뒤,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수학 등 주요 교과목 선행학습으로 명문대에 보내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영어 교습비 100만원대, 교복·가방·교재비 붙으면 월 300만원

교육부가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전국 유아 영어학원 847개를 전수조사한 결과 평균 학원비는 월 175만원이다. 학원법상 각 교육청이 정한 기준에 따라 1분당 교습비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교습비 자체는 영어학원과 같다. 서울 강남·서초 지역의 교습비(1분당 266원)를 적용하면 월 교습비는 144만원(하루 4시간 30분 수업, 월 20회 등원)이다. 그러나 급식비와 재료비, 교통비 등이 포함돼 학원비가 비싸진다는 게 교육부 설명이다.

‘비싸도 100만원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높은 유명 유아 영어학원은 학원비가 더 비싸다. 읽기·쓰기를 잘 가르쳐준다고 알려진 서울 서초구 A 유아 영어학원에 5세 아이가 다니려면 최초에 240만원을 내야 한다. 교습비와 급식비가 163만원이고, 통학 버스비가 10만원, 교복비·체육복비가 17만원, 가방·실내화 주머니·색연필 등 물품비가 40만원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학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정규 수업을 진행한 후 오후 3시부터 4시20분까지 방과 후 수업을 하는데, 수강료는 1회당 2만5000원이다. 한 달에 대략 50만원 정도를 추가로 내야 하는 셈이다. 여기에 학기마다 수십만원씩 별도로 교재비를 내야 한다. 이렇게 들어가는 금액을 합치면 아이 한 명을 유아 영어학원에 보내는 데 300만원 정도 든다. 그렇지만 이 학원은 입학시험을 통과한 학생들만 골라 받을 정도로 학부모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서울 강남구 B 유아 영어학원은 첫 달의 경우 월 266만원이 든다. 교습비와 급식비가 206만원이고, 그밖에 학원 버스비가 10만원, 초도 물품비가 50만원이다. 교재비 수십만원은 별도다. 강남구 C 유아 영어학원의 교습비와 급식비는 월 190만원대다. 학원 버스를 이용하면 하루 8000원씩 교통비가 추가된다. 월 20회 이용 기준 200만원 넘게 든다. 인천 D 유아 영어학원은 3개월 기준 495만원을 내야 한다. 교습비 381만원, 급식비 45만원, 교재·도서비 54만원, 학원 버스비 15만원이다.

지난 2월 6일 이주호 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이 유보통합 추진을 앞두고 현장을 방문해 목소리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 송파구 송파위례유치원을 찾은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조선DB

◇”공교육 믿다가 내 아이 뒤쳐질까봐”…정부도 일반 유치원 영어 교육 지원 나서

자녀를 일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면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데 학부모들이 비싼 학원비를 내면서 유아 영어학원에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 변호사 모임(새변)’이 자녀 영어 교육에 관심이 있는 학부모 60여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자녀를 유아 영어학원에 보낸 학부모 50명은 가장 큰 이유로 ‘일반 어린이집 및 유치원의 커리큘럼(교과 과정)과 운영이 만족스럽지 않아서’(45%, 중복응답 가능)를 꼽았다. 이어 ‘유아·초등 기간 영어에 능숙해지고 중학교부터 수학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서’(39%), ‘영어 놀이 학교나 영어 유치원에 다니지 않으면 어린이집·유치원에 다니며 동시에 영어 학원을 다녀야 하므로’(28%), ‘공교육 학습 과정인 누리 과정에 영어 교육 과정이 없어서’(16%) 순이었다.

현재 누리과정(3~5세 공통 교육과정)은 놀이 중심으로 짜여져 있고, 영어는 초등학교 입학 후 본격적으로 배운다. 교육부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지난 6월 발표한 사교육 경감 대책에 일반 유치원에서 영어 등 수요가 높은 방과 후 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30대 학부모 C씨는 “공교육만 믿다가 내 아이만 뒤쳐질까봐 걱정되는 마음에 유아 영어학원을 선택했다”고 답했다. 다른 30대 학부모 D씨는 “(아이가) 두 가지 언어를 상호 작용하며 배우는 것을 선호한다”며 “어린이집이나 일반 유치원의 커리큘럼이 다양해지면 보낼 의향도 있다”고 했다.

교육부가 지난 5월 자녀를 유아 영어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를 면담했을 때, 이 학부모는 “(유아 영어)학원은 강사 1인당 학생 수가 적어서 꼼꼼한 교육·돌봄이 가능하고, 시설 등 교육 여건이 쾌적하다”고 했다. 그러나 유아 영어학원에 만족하지 못하는 학부모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변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6%는 “유아 영어학원의 비용과 운영, 교육에 전반적으로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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