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우리는 도서관으로 여행 간다

현경숙 2023. 7. 1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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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주목받는 이색 도서관 여행 프로그램
연화정 도서관[사진/조보희 기자]

(전주=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전주 학산숲속시집도서관 '문학자판기'에서 '위로' '수필'이라는 항목을 선택했더니 약한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앓았던 백세희 작가의 히트 수필집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중에서 발췌한 글귀가 쓰인 쪽지가 출력돼 나왔다.

전주 시민이 사랑하는 휴식처인 덕진공원 연못 한가운데 지어진 연화정도서관에서는 마치 물 위의 집에 앉은 듯한 착각이 인다.

전주 대표 도서관인 '꽃심'에 들어섰을 때는 도서관답지 않게(?) 시끄러웠다. 입구인 1층이 독서 모임을 할 수 있는 카페, 아이들의 책 놀이터 등 모두를 위한 소통 공간으로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학산숲속시집도서관에 비치된 저자 친필 서명 시집[사진/조보희 기자]

이번 여름엔 북캉스 갈까

한옥, 한식, 한지 등 전통문화의 보고인 전주가 몇 년 전부터 정체성에 '책의 도시'를 더했다. 책 읽기와 여행을 접목한 도서관 여행 프로그램도 생겼다. 도서관들은 예쁘고, 개방적이고, 장서의 주제가 특별하다. 이 도서관들에는 책상이 다닥다닥 붙은 독서실을 연상시키는 학습실이 없다.

학산숲속시집도서관, 연화정도서관, 꽃심은 여행 프로그램에 포함된 도서관들이다. 틈새 음악회가 열리는 금암도서관, 옛 기억을 담은 동문헌책도서관, 관공서 냄새가 나지 않는 전주시청 책기둥도서관, 사진·음악 아트북과 예술 기행 에세이에 특화된 서학예술마을도서관, 이팝나무그림책도서관, 여행자를 위한 한옥마을도서관, 다가여행자도서관,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도 여행 프로그램의 대상이다.

하나같이 공간 혁신과 장서의 특별함이 있는 곳이다. 벌써 여름이다. 카페처럼 편안하고 시원한 도서관은 피서지로서 손색이 없을 듯하다.

연화루에서 휴식하는 이용자들[사진/조보희 기자]

연꽃 속에 피어나는 연화정도서관

조선 왕조의 본향인 전주의 대표 관광지 덕진공원은 단오 물맞이 풍습이 한창일 때 전국 최대 규모의 인파가 모여들던 명소이다. 봄과 여름이면 창포와 연꽃이 호수를 가득 메우는데, 수만평의 연못 수면을 뒤덮는 덕진 연꽃은 특히 유명하다.

연화정도서관은 7∼8월 연꽃의 개화를 앞두고 꽃처럼 피어나 있었다. 이 도서관은 지난해 신축된 한옥 건물이다. 한옥마을로 유명한 전주의 아름다움을 담았다. 서가가 있는 연화당과 휴식 및 행사 공간인 연화루로 나뉜다.

장서는 한국 전통미에 관한 책들을 중심으로 2천300여 권이다. 전시 서가에는 한국 대표작가 작품과 문학상 수상작을 소개해놓았다. '점' '선' '면' '그리고' '여백'이라고 이름 붙여진 5개의 서가는 차례로 ▲ 전주를 소개하는 도서 및 문학책 ▲ 한옥, 한복, 한식, 전통공예, 궁궐, 판소리 등 전통문화를 다룬 도서 ▲ K컬처를 소개하는 외국어 서적과 세계의 주목을 받은 한국 책들 ▲ 한국 그림책 ▲ 한국 고유 정서를 소개하는 아트북을 비치하고 있다.

연화정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덕진 공원[사진/조보희 기자]

선조들이 멋스러운 풍광을 즐기며 시를 읊고 책을 읽었던 것처럼 시민들이 덕진호수를 바라보며 강연, 행사에 참여하거나, 쉬고 담소를 나누는 공간이 연화루이다. 도서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 창은 한 폭의 그림을 담은 액자가 된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경치를 건축물 경관의 일부로 삼았던 한국식 건축 기법인 차경의 본보기였다. 이 도서관의 일일 방문자는 평일 700∼800명, 주말 1천500∼2천500명이며 연꽃 개화 시기에는 3천 명 이상이 몰린다. 책은 자유롭게 뽑아 읽을 수 있고 도서 도난 방지 시스템이 없는데 개관 후 지금까지 잃어버린 책이 한 권도 없다.

모두를 위한 책 놀이터

자료실과 열람실로 나눠지고 공부만 하던 막힌 공간을, 트여 있고 아늑하고 편안하게 이용하는 장소로 도서관의 개념을 바꾼 사례가 전주시립도서관 꽃심이다. 방과 방 사이에는 문이 없다.

그래서 지상 4층, 지하 1층, 연면적 4,042㎡인 이 도서관은 훨씬 크고 넓어 보인다. 별도의 열람실이 없고 북카페처럼 꾸며진 자료실 군데군데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을 뿐인데도 열람석은 200개를 훌쩍 넘는다.

이용자들로부터 특별히 사랑받고 지지받는 공간은 '트윈 세대' 전용인 '우주로1216'이다. 트윈 세대는 틴에이저와 어린이 사이에 낀(between), 12∼16세 학생들을 지칭한다. 이곳에는 어른이나 12세 미만 어린이가 들어갈 수 없다. 취재, 견학 등 특별한 경우에는 이 공간을 사용 중인 트윈 세대들로부터 양해를 얻어야 입장할 수 있다.

'우주로1216'에서 만들기에 열중하는 트윈세대[사진/조보희 기자]

'우주로'는 '우리가 주인인 공간'을 뜻하는데 트윈 세대는 이곳에서 '우주인'이 되고 도서관 운영자들은 '지구인'(지켜주고, 원하는 것을 구해주는 사람)이라고 불린다.

우주로1216은 소통공간인 '톡톡존', 뛰거나 굴리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쿵쿵존', 무엇이든 만드는 '슥슥존', 혼자의 시간을 곰곰이 만끽하는 '곰곰존'으로 구성돼 있다. 학교와 집 외에 갈 곳이 별로 없는 트윈 세대들은 설문조사에서 우주로1216을 찾는 이유로 '엄마 아빠 없이 나만 올 수 있어서'라는 답변을 가장 많이 했다고 한다.

학산과 맏내호수가 어우러진 숲속 시(詩) 도서관

학은 소나무에만 앉는다고 한다. 소나무가 잘 자란 학산에는 예전에 학이 많았다. 학산을 뒷배로 하고 맏내호수를 앞마당처럼 두른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은 시와 숲을 담은 힐링 공간이다. 시집 전문 도서관으로, 2천700여 권의 시집을 보유하고 있다.

문학 출판사들이 발간한 시 선집, 외국어 원서 시집, 주제별 시집, 한국 대표 시인들의 저자 친필 사인 시집 등을 비치하고 있다. 다락 형식인 2층에서는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시화집을 만날 수 있다.

시인 초청 강연회 때는 20명 안팎인 모집 정원을 초과할 정도로 참석 신청자가 많다.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 시인이 명예 도서관장이다. 가까이에 아파트 단지와 산책로가 있어 도서관 규모에 비해 방문객이 상당히 많은 '작지만 강한' 도서관이다.

학산숲속시집도서관[사진/조보희 기자]

주목받는 도서관 산업

국내 최초인 도서관 여행 프로그램은 '구석구석 하루코스' '쉬엄쉬엄 반일코스' '야간코스' 등으로 나뉜다. 하루코스의 경우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꽤 오래 도서관에 머물며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야간코스에는 전주야시장 자율여행, 한옥마을밤산책이 프로그램에 포함돼 있다.

전주 도서관들을 견학하는 타 시도, 기관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혁신을 벤치마킹하기 위해서다. 도서관 여행 프로그램도 타지역 출신 참여자가 약 70%를 차지할 정도로 각지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전주시는 도서관 공간 및 정책 혁신 성공에 고무돼 도서관 관련 사업의 산업화를 시도 중이다. 지역 출판인 양성, 출판물 제작 지원, 독립출판박람회 개최, 동네 책방 네트워크 운영, 책 축제, 책 문화와 여행 연계 등을 통해 책 문화를 산업으로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도서관이 산업의 중심이 될 수 있을까. 도서관 혁신이 책 읽기와 사랑으로 이어진다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3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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