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불안 매년 반복?”… 점점 거세지는 여름 폭우에 산지 태양광 인근 주민 우려

세종=전준범 기자 2023. 7. 1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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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강해지는 폭우…산사태 빈발
‘시한폭탄’ 산지태양광 1만5220개
게다가 시설 상당수는 경사도 초과
점검 인력도 부족…불안한 주민들
“야밤에 태양광 발전소 반경 5km 이내 대피시키라고 해서 혼자 말도 안 되게 뛰어다녔다. 폭포수가 내리치는데 내가 업무적으로 죽지 않으려고… 만약 일 터졌다면 난 잡혀갔겠지. 돌이켜보니 진짜 미친 짓이었다.”

최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공무원의 글

장마철마다 전국 산림에 설치된 산지(山地) 태양광 발전 시설에서 산사태 우려가 제기돼 인근 지역 주민이 불안에 떨고 있다. 산지 태양광은 나무를 잘라내고 산비탈에 설치해 지반이 대체로 약하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특정 지역에 확 쏟아지는 국지성 폭우가 잦다. 작년에 안전했어도 올해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여건이란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국 1600곳이 넘는 산지에서 태양광 설치를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정부는 각지의 산지 태양광 시설을 관리·감독할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지도 않다. ‘일단 깔고 보자’는 무책임이 매년 여름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로 돌아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름철 집중호우가 잦은 우리나라 날씨 특성 탓에 산지 태양광 시설 주변에서는 매년 크고 작은 산사태가 발생한다. 사진은 2018년 7월 3일 경북 청도군 매전면 온막리 국도 58호선 옆 야산에서 산사태가 나 산비탈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시설이 무너진 모습. / 뉴스1

◇ 산사태 불안해서 잠 못 이루는 주민들

1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이달 13일 이후 지금까지 집중호우로 전주·전선 등 배전 설비가 손실돼 정전 피해를 본 가구는 4만6946세대에 달한다. 이 중 99.8%인 4만6853세대는 복구 작업이 완료(18일 오전 5시 기준)됐다. 산업부는 “나머지 93세대도 진입 여건 등이 확보되는 대로 신속히 복구하겠다”고 했다. 강경성 산업부 2차관은 “가용 자원을 총동원하고, 피해·복구 현황을 실시간 공유하겠다”고 했다.

정전 복구는 빠르게 이뤄지지만, 국민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산지 태양광 주변에 사는 이들의 근심이 깊다. 경북의 한 산악 지역에 사는 자영업자 김희경(가명)씨는 “예천 산사태 소식을 뉴스에서 접하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내 경우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지 태양광 시설이 있어 우려가 더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 17일 폭우로 경북 예천군 감천면 일대에 산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83가구 143명이 살던 마을의 대부분 시설이 토사에 휩쓸려 망가졌다. 주민 2명은 실종됐다. 수해 당일 현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주민을 위로하며 “몇백 톤 바위가 산에서 굴러내려 온 건 나도 살면서 처음 본다”고 했다. 이 마을 주변에는 산지 태양광 시설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 보니 김씨처럼 걱정하는 국민이 늘고 있는 것이다.

7월 16일 경북 예천군 산사태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이 실종자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산업부에 따르면 작년 6월 기준 국내에서 가동 중인 산지 태양광 발전 시설은 1만5220개다. 또 이와 별개로 사업자가 산지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산지전용 허가를 받은 건수는 지난달 기준 2583건이다. 이 가운데 1628건은 공사에 착수한 상태다. 현 정부 들어 전(前) 정부의 신재생 폭주에 제동을 걸었지만, 여전히 전국 곳곳에서는 태양광 구축을 위한 벌목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 여의도 17.6배 산림 사라진 후폭풍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선언과 함께 태양광 보급 속도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산림 훼손이 급증했다. 정부에 따르면 태양광 설치 목적의 산지전용 허가 면적은 2016년 529헥타르(㏊·1㏊=1만㎡)에서 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1425㏊로 3배가량이 됐다. 2018년에는 2443㏊까지 늘었다. 2017~2020년 서울 여의도의 17.6배에 달하는 5131㏊ 산림이 태양광 시설 후보지가 됐다. 이 기간 벌채된 입목은 259만8000여 그루다.

급격한 산림 훼손은 여름철 집중호우가 잦은 한반도 날씨 특성과 맞물려 매년 산지 태양광 인근 주민의 불안감으로 분출되고 있다. 이 불안감은 종종 현실로 다가온다. 300㎜ 넘는 폭우가 쏟아진 작년 8월 9일 강원 횡성 둔내면 현천1리에서는 무너진 야산에 70대 주민이 숨지는 사고가 났다. 이때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게 산사태 발생 지점 약 2만㎡ 부지에 설치된 대규모 태양광 발전 시설이었다.

그래픽=정서희

산사태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2018년 11월 산지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태양광 시설 설치가 가능한 경사도 제한 기준을 25도 이하에서 15도 이하로 강화했다. 그런데 산림청이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시행령 개정 이후 정부가 허가한 산지 태양광(경사도 제출 대상) 3684건 가운데 경사도 제한 기준인 15도를 초과한 태양광은 전체의 24%(884건)에 달했다.

정부가 경사도 기준을 강화한 다음 허가했는데도 4곳 중 한 곳은 기준을 어긴 상태라는 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건 산지관리법 개정 전에 설치 신청을 한 태양광 시설에 대해서는 정부가 강화된 기준 적용을 면제해 준 탓이다. 경사도 기준을 넘어선 산지 태양광을 지역별로 보면 전남이 344건으로 가장 많았다. 전남 뒤를 경북(152건), 경남(101건), 전북(92건), 강원(75건), 충남(58건), 충북(32건), 경기(28건), 세종(2건) 등이 따랐다.

◇ “인력 부족한데 점검 대상·횟수만 늘어”

산지 태양광 시설을 관리·감독하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도 주민 불안을 증폭시키는 배경 중 하나다. 정부는 매년 산사태 위험성이 높은 설비 위주로 안전 점검을 하고 있다. 작년 기준 전기안전공사 1305개소, 에너지관리공단 654개소, 산림청 320개소 등이다. 하지만 이들 설비를 점검하는 전문인력 숫자는 수십 명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오른쪽)이 7월 12일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한 산지 태양광 발전소를 방문해 주요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 산업통상자원부

원래도 인력이 적은데, 산업부는 지난해 8월 발표한 ‘산지 태양광 안전관리 특별대책’을 통해 “특별 관리가 필요한 산지 태양광을 별도로 선정해 매년 안전 점검을 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2023년부터 이들 설비를 매년 점검하고, 관리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상반기 중으로 모든 검사를 끝내겠다고 했다. 또 산업부는 전체 산지 태양광 설비에 대한 전기안전 정기 검사 주기도 4년 주기에서 2년 주기로 단축하겠다고 했다.

이후 산업부는 올해 2월 산사태에 취약한 태양광 설비 1408개를 선정해 상반기 내내 점검했다. 현장 분위기를 잘 아는 한 정부 산하 기관 관계자는 “담당 인력 숫자에는 큰 변화가 없는데 점검 대상은 급증하고 점검 주기도 짧아졌다”며 “모든 직원이 현장에서 전문성과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인력 자체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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