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미용시술 상담 직원이 하루 2~4회 의사소견서 작성한 병원

이상욱 2023. 7. 1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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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측 “예비 진료행위” 주장에 보건당국 “무면허 의료행위” 판단

[아이뉴스24 이상욱 기자]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의 한 병원에서 의사가 상담 직원과 간호조무사 등 비의료인에게 ‘노인장기요양보험 의사소견서’(의사소견서) 작성을 맡기면서 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 법률 위반 의혹이 불거졌다.

17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A씨는 2017년 9월부터 2019년 6월까지 해당 병원에서 미용시술 상담 직원으로 근무했다. 의사 B씨는 2018년 11월부터 자신이 해야 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의사소견서 작성을 A씨에게 맡겼다. 질병명과 질병 상태에 대한 의견, 신체·인지 기능에 대한 의견, 요양보호 제공 수준 측정을 위한 자립생활 가능성에 대한 의견, 특별한 의료 처치·건강관리 필요 항목에 대한 의견 등 4페이지에 달하는 항목이다.

해당 병원 의사소견서 작성은 상담 직원인 A씨가 먼저 모든 항목을 작성하고, 마무리를 의사 B씨가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A씨가 먼저 외래 환자 대기실에서 직접 초진 환자를 문진해 의사소견서를 작성한 후 B씨가 애매한 부분만 작성하는 방식이다. A씨는 해당 병원에서 퇴직하던 2019년 6월까지 하루 2~4건 의사소견서를 작성했다.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의 한 병원 응급실 진료 책상에 의사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기재한 포스트잇 메모가 붙어 있다. [사진=독자]

A씨는 지난 10일 함안군 칠원면의 한 카페에서 만난 본지 취재진에 “B씨가 의사소견서 작성에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네가 (작성)하라. 의사 지시로 하는 거라 괜찮다”며 일방적 지시에 의한 행위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른 의사가 ‘왜 네가 B씨 아이디로 의사소견서를 작성하냐’며 질타했을 때 잘못됐음을 알게 됐다”면서 “당시 병원 내 신분이 흔히 갑을병정 중 ‘정’ 취급을 받은 터라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의료법 제27조 ‘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 조항에 따르면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라도 의료행위를 할 수 없고, 비의료인에게 의료행위를 시켜서도 안 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의사소견서는 장기요양 인정신청자에 대한 객관적인 신체·정신적 질병과 기능 상태의 평가 자료로, 의료법상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의사나 한의사가 직접 작성·발급해야 한다”면서 “의료인이 아닌 미용시술 상담 직원이 작성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B씨는 A씨가 퇴직한 직후부터 이달 초까지 간호조무사 2명에게 외래 환자 대기실에서 의사소견서 작성 역할을 계속 맡겼다고 한다. 해당 병원 사정을 잘 아는 의료계 관계자에 따르면 B씨는 의사소견서 발급을 위해 병원에 방문한 환자에게 간호조무사가 문진과 동시에 의사소견서를 직접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A씨의 경우와 같은 방식이 계속된 것이다. 특히 B씨는 A씨와 2명의 간호조무사에게 자신의 병원 전산시스템(지누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미리 공유하고, 의사소견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 당국은 해당 병원의 이 같은 행태가 의료법 제27조를 위반한다고 본지에 밝혔다. 함안보건소 관계자는 “의사소견서는 반드시 의사만 작성·발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의사소견서 발급에 앞서 특별한 의료 처치·건강관리 필요 항목 등에 대한 의견은 비의료인인 상담 직원과 간호조무사가 아니라 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함안보건소는 병원 측에 과실이 없었는지 조사하고,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으면 행정처분 등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보건 당국은 의료인이 무자격자에게 의료행위를 하게 하면 업무 정지 3개월을 처분할 수 있고, 수사기관에 범법 사실을 고발한다. 함안보건소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파악해 보겠다”고 했다.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의 한 병원에서 의사 B씨가 비의료인인 상담 직원 A씨에게 ‘노인장기요양보험 의사소견서 작성지침’을 공부하라고 보낸 카톡 내용. [사진=독자]

이에 대해 B씨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해당 병원 측은 “예비 진료행위에 해당한다”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병원 측 관계자는 “의사 진료에 앞선 문진 행위는 간호조무사도 의사의 지시하에 할 수 있는 진료 보조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조계는 법원 판례를 근거로 B씨가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시각에 힘을 싣고 있다. 실제로 대법원은 2007년 의사가 간호사에게 진료의 보조행위를 하도록 지시하거나 위임할 수는 있으나,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진료행위 자체를 하도록 지시하거나 위임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한 의료전문 변호사는 “진료의 보조는 의사가 주체가 돼 진료행위를 할 때 의사의 지시에 따라 조력하는 것을 뜻한다”며 “의사가 환자를 전혀 진찰하지 않은 상태에서 간호조무사가 단독으로 진료행위를 하는 것은 진료 보조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가 아닌 상담 직원이나 간호조무사만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뒤 의사소견서를 작성한 것이 사회통념에 비춰 용인될 수 있는 정당 행위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해석했다.

병원 측은 본지 취재가 시작되자 외래 환자 대기실에 의사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기재해 붙여 둔 포스트잇 메모를 제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응급실 진료 책상의 컴퓨터 옆에는 포스트잇 메모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한편, B씨는 해당 병원 원무과 직원에게 산업재해보상보험 요양급여신청 소견서 일부 항목을 작성하게 한 의혹도 받고 있다. 함안보건소는 이 또한 의료법 제27조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함안=이상욱 기자(lsw3032@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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