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 운전’ 상장도 수두룩, 쉬는 날엔 봉사활동”…버스기사 사망에 애통한 동료들

2023. 7. 1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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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오송 지하차도서 버스기사 시신 수습
사망자 10명으로 늘어
동료들 “성실했던 모범사원, 10년 넘게 무사고 운전”
“모범 운전사로 상도 여러 차례 수상”
“택시 기사 시절 어르신 모시며 관광 봉사도”
“어린이존에서 교통 정리 봉사도 자처”
유족들 “아파트 청소하러 이동 중 사고 당해”
“손주들 용돈 쥐어줄 정도로 생활력 강한 분” 애통
여행길·근무 중 청년도 참변
17일 오전 9시께 충북 청주 서원구의 청주의료원 장례식장 내부. 이날 오전 1시25분께 소방당국이 도보 수색 과정에서 세종 방면 출구 앞 100m 지점 기둥 인근에서 이모(58) 씨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이씨의 동료들이 빈소로 모여있다. 김영철 기자

[헤럴드경제=김영철(청주) 기자] “출근 직전에도 서로 ‘안전 운전’ 외치면서 버스 올랐는데….”

17일 오전 충북 청주 서원구의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에는 747번 버스를 운전한 이모(58) 씨의 빈소가 한참 마련되고 있었다. 이날 오전 1시25분께 소방당국이 도보 수색 과정에서 세종 방면 출구 앞 100m 지점 기둥 인근에서 이씨의 시신을 수습하게 되면서 아직 유족들도 장례식장에 도착하지 못했지만, 이씨의 동료 버스 기사들 5명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빈소에 도착한 이씨의 동료들은 모두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이씨와 직원 휴게실에서 서로를 독려하며 버스에 오르던 모습이 생생하다는 게 버스 기사들의 증언이다.

버스 회사 동료인 A(58) 씨는 이씨를 ‘성실한 모범사원’이라고 표현했다. 버스 기사로 근무하기 전 개인택시 운전자였던 이씨는 무사고 실적으로 모범운전상을 받을 만큼 자신의 업무에 책임을 갖고 착실하게 일했다고 했다. 평소에도 남들보다 30분 정도 일찍 출근해 직원 휴게실에 있는 쓰레기를 스스로 정리할 정도로 직원들 사이에서 예의 바른 동료로 알려졌다고 했다.

A씨는 “10년 동안 버스 기사로 근무하면서도 사고를 낸 적이 없었다”며 “(이로 인해) 도지사상부터 시장상 등 수상한 상장만 10개가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에서도 (이씨의) 공로를 인정해 4년 전께 747번 버스를 증차할 당시 새로 배정한 것”이라며 “그 전까지는 저상버스를 운전했는데, (747번 버스) 회사에서 실적과 평이 좋은 운전자들에게 배치할 만큼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근무 날 외에도 시간을 내서 봉사 활동을 꾸준히 다녔다고 했다. 택시 기사로 일할 당시엔 매년 노인 관광객들을 모셨다고 했다. 버스 기사가 된 이후로는 아침마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 정리 봉사를 자처했다.

또 다른 동료인 B(58) 씨는 “타인 위해서 온갖 궂은 일 손수 나섰던 분”이라며 “봉사 정신도 투철해서 이른 아침부터 교통 정리 봉사도 자주 나갔다. 타의 모범이 되던 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고 당일에도 교통 통제로 인해 다른 노선으로 운전한 건데 노선을 위반했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책임감을 갖고 승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 분이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씨의 동료들은 그가 ‘좋은 아버지’로 기억될 만큼 가정에서도 헌신적이었다고 했다. 특히 올 10월에는 둘째 아들의 결혼식을 앞두고 있어 행복한 표정을 자주 드러냈다고 했다. A씨는 “(이씨의) 아들 두 명은 모두 사회에서 어엿한 직장인으로 일하고 있는 만큼, 자식 교육도 잘한 아버지였다”면서도 “근무를 하면서도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를 정성스레 챙길 만큼,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다”고 평가했다.

17일 오전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해양경찰 대원들이 도보수색을 하고 있다. [연합]

한편 사고가 난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에서는 지난 15일 오전 8시 40분께 인근 미호강 제방이 터지면서 유입된 하천수로 시내버스 등 차량 15대가 물에 잠겼다.

사고 직후 현장에서 9명이 구조됐고, 17일 오전 11시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10명이다.

구조당국은 지하차도 내부의 물이 어느 정도 빠졌다고 판단, 이날 오전 0시9분께부터 도보 수색을 실시했다. 가장 깊은 지하차도 중앙 부분엔 아직 물이 많이 차 있어 인력을 투입하지 못하고 계속 배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근무·여행길 중 희생된 시민들
지난 16일 충북 청주시 서원구 하나병원 정문.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로 인한 사망자를 실은 구급차가 연속적으로 병원에 도착하고 있다. 김영철 기자

‘청주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의 수색작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현장에서 수습된 희생자들을 위해 마련된 빈소에선 유족들의 애통함이 이어졌다. 희생자 가운데에는 고령에도 이른 아침부터 청소 작업을 하러 출근 길에 오른 이들부터, 여행길에 오르던 중 참변을 당한 청년들도 있었다.

전날 오후 4시께 충북 청주시 서원구 하나병원 장례식장에는 20·30대 희생자가 안치돼 있었다. 이들은 여행길을 오르거나 회사 일정을 마친 뒤 이동 중 참변을 맞았다. 이번 사고 희생자 안모(23·여) 씨의 경우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 위해 청주에서 오송역으로 이동 중에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친척 C씨는 “(안씨가) 침수 당일 친구 여럿이서 여행을 가던 중에 사고를 당했다”며 “아침에 소식을 전해 듣고 병원에서 가족들과 하염 없이 기다렸다”고 털어놨다.

유족들에 따르면 30대 사고 희생자 조모(32) 씨는 생일을 맞이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변을 당했다고 했다. 조씨의 아버지인 D씨는 “(조씨가) 주말임에도 창업박람회를 방문했다고 들었다. 쉬는 줄 알았지만 주말에도 출근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소 인성이 좋아 어른들 사이에서도 잘 자랐다고 평가 받는 아이였다”며 “한참 사회에 진출해 적응할 나이었는데…”라며 말을 아꼈다.

같은 날 오후 7시께 충북 청주 서원구 개신동에 위치한 충북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 희생자 2명이 안치돼 있었다. 빈소 바깥은 "어머니"라고 흐느끼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몇몇 유족들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여전히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일부 유족은 아직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파트 미화원으로 일하는 백모(72·여)씨는 이날도 청소 작업을 하러 이른 아침부터 747번 버스를 타고 출근길에 올랐지만 버스가 우회하는 바람에 사고를 당했다.

백씨의 사위 E(42) 씨는 지난 14일 백씨가 가족과 연락이 끊겨 같은 날 오후 실종 신고를 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 백씨의 위치가 사고 지점으로 확인돼 노심초사했지만, 결국 현실을 마주해야했다.

E씨는 “금요일(14일) 아침까지 아내와 통화가 닿았다"며 "이후 연락이 닿지 않아 불안한 느낌을 안고 실종 신고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백씨가) 침수 현장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제(15일) 이른 오전에 현장을 갔지만, 지하차도에 물이 범람해 사고 현장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고 말을 흐렸다.

백씨와 함께 버스를 탄 박모(76·여) 역시 같은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가 사고를 당했다. 유족들은 박씨가 고령에도 꾸준히 일을 나갈 만큼 생활력이 강한 분이라고 했다. 박씨의 아들 F(53) 씨는 “(박씨가) 평소 번 돈으로 손주들에게 용돈도 줄 만큼 자식들에 대한 애착이 컸다. ‘놀면 뭐하냐’는 말을 자주 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정도로 자식들에게 사랑이 넘쳤던 분인데. 아이들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슬퍼하고 있다”고 전했다.

yckim645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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