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가 알려주는 명산 기룡산] 어디 숨었다 지금 왔니, 영천의 無名명산

서현우 2023. 7. 17.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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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깔산~기룡산 연계 산행 11km

편집자 주

'알려지지 않은 명산'이란 말은 어떻게 보면 이율배반적이다.

이름 없는 이름난 산名山이다. 문장 자체의 논리적 난해만큼 그 존재를 찾기 어렵고,

또 그만큼 뭇 산꾼들이 갈증을 느끼는 존재다.

월간<산>은 이러한 무명명산들을 독자들의 도움을 통해 하나씩 찾아나간다.

국립, 군립, 도립공원 및 100대 명산에 해당하지 않는 산이면서

또 산행하는 것이 불법이 아닌 산이 대상이다. 직접 제보한 독자와 함께 오른다.

제보는 blackhouse@chosun.com

기룡산 정상의 조망은 그야말로 일망무제다. 동남서북 어디 하나 막힘이 없다. 대구 팔공산 주능선과 보현산, 포항 영일만에 영남알프스까지 그 실루엣이 모두 보인다.

"기룡산? 거긴 차박지였던 곳이잖아요."

기룡산이란 이름을 맨 처음 들었을 땐 강원도 인제 기룡산을 먼저 떠올렸다. 코로나 초기 차박이 성행할 때 캠퍼들로부터 몸살을 앓다가 폐쇄된 활공장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가만 들어보니 경북 영천이었다. 이번엔 또 한참 영천을 생각했다. 나름 전국을 다녔는데 유독 영천은 빼먹었던 것 같다.

"영천을 안 와 보셨군요. 보현산 천문대가 유명하죠."

"아."

머쓱하게 대꾸하며 이제야 대구 옆에 흐릿하게 영천의 존재가 떠올랐다. 남의 고향의 존재를 몰라보는 것만큼 민망하고 죄스러운 게 없다. 제보자는 웃으며 산행 약속을 잡곤 "정상 조망이 끝내주고 정말 멋있는 산"이라는 말과 함께 "고향 산이라 잘 아니 몸만 오라"고만 했다. 전화를 끊고 검색해 보니 한국관광공사는 영천을 '산세가 부드럽고 낮다'고 평가해 두었다. 그렇게 반신반의하며 기차에 몸을 실었다.

최근에 정비된 이정표는 정확한 방향과 거리를 명시하고 있지만, 오래 전에 설치된 이정표들은 대체로 부정확하다.

3시간도 안 걸려 도착한 영천

서울에서 영천은 생각 외로 가까웠다. KTX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간 뒤, 무궁화호로 갈아타고 30여 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순수 이동시간은 3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자그마하고 정겨운 역사를 통과하자 긴 머리를 맵시 있게 묶고 예술인의 풍모를 물씬 풍기는 독자 박창완씨가 맞이해 준다. 서슴없이 건네는 악수엔 힘이 넘쳤다. 그의 차를 타고 기룡산으로 향한다. 내비게이션에는 30분 걸린다고 안내한다.

"영천에서 태어나 자랐고, 철 들고는 대구로 갔어요. 대구에서는 웨딩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1년에 1,000쌍, 하루에 최대 52쌍까지 촬영했었어요. 직원은 22명이었고요. 저도 오전 오후 각 2쌍씩 작업하는 게 일상이었죠.

그런데 매일 스튜디오에서만 갇혀 살다 보니 따분함을 이겨내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나이가 들고 나선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숙박업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해보는 업종이라 첫 1년 6개월은 하루도 쉬지 않고 꼬박 일했었죠."

꼬깔산으로 오르는 길은 급경사는 아니지만 빠듯한 오르막이다.

박씨는 사투리는 꼭꼭 눌러 감춘 서글서글한 말투로 말을 이어 갔다. 영천에 대한 설명도 더했다. 어릴 때와 달라진 게 없다는 것, 3사관학교를 비롯한 군 시설이 있는 군사도시라는 것, 약재가 유명해 지금도 역전에 약재시장이 있다는 것, 예로부터 도살장이 있어 한우가 유명하다는 것 등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어떤가요? 지역 색이라든지 그런 게 있나요?"

그는 과장되게 얼굴을 찡그리며 장난스럽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고집이 진짜 너무 세요. 저도 영천 사람이라 고집 있다는 얘기 듣곤 하는데 여기 토박이들이랑은 정말 비교가 안 됩니다."

순간 그가 처음 숙박업소를 운영할 때 하루도 쉬지 않고 1년 6개월을 일했었다는 말이 뇌리를 스쳤다. 그래서 영천 사람 특유의 고집이란 게 어떤 것인지 헤아려졌다. 그는 그렇게 일하다간 정말 우울증 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나마 덜 붐비는 수요일을 휴일로 정하고 등산을 시작했다. "산이 숨구멍이 됐고 삶이 달라졌다"고도 했다.

꼬깔산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영천호.

'영천 고집'으로 넘은 첫 고비

들머리인 운곡저수지 인근의 공터에 차를 대고 산행을 시작한다. 매년 11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입산 통제한다는 안내문을 지나자 꼬깔산 등산로 안내도가 나오고 주차금지 플래카드가 이를 마주보고 있다.

"여기가 길이에요."

플래카드 바로 뒤편을 자세히 보니 수풀 사이로 계단의 흔적이 엿보였다. 벌써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꼬깔산까지는 끊임없는 오르막이다.

"먼저 꼬깔산부터 오르고 기룡산으로 갈 겁니다. 운곡저수지 길로 기룡산부터 갈 수도 있는데 거긴 된비알이 원체 심하고 낙엽도 많이 쌓여 있어서 이 편이 더 쉬워요."

분명 더 쉬운 길이라지만, 마냥 쉽지는 않다. 묵은 묘 하나를 지나자 엄청난 급경사는 아니어도 계속 체력을 깎아먹는 비탈길이 나온다. 서두르지 않고 꾸준하게, 끊임없이 발을 옮기는 게 가장 빨리 오르는 법이다. 뚝심 있게 '영천의 고집'을 따라 부려 본다. 쉬고 싶다는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된다. 신갈나무 위주의 참나무가 많아 좀처럼 시원한 조망도 기대하기 어려워 일단 올라야 한다. 등산로는 간혹 나뉘거나 사라지는데 하얀색 안전로프를 따르면 대체로 맞다.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이 거의 없는 것을 보니 잘 알려지지 않은 산임은 확실했다.

"신갈나무가 왜 신갈나무인 줄 아세요? 예전에 보부상들이 이 신갈나무 잎을 짚신 깔창으로 써서 신갈이라 부르게 됐다고 해요. 야외에서 웨딩 촬영을 할 때 신랑 신부들이 나무에 대해 더러 물어볼 때가 있어서 공부해 뒀었거든요. 저기 부처손이 있네요? 영천이 약재로 유명하다고 했죠?"

꼬깔산 정상에는 오석 정상석이 들어서 있다. 조망은 없다.

고개를 푹 처박고 한 번 힘을 몰아넣고 나자 등산로 오른쪽에 들어선 큼지막한 바위가 보인다. 바위 표면에는 자그마한 부처손이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었다. 불사초, 장생불사초 등으로도 불리며 동의보감에 따르면 항암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부처손을 건드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바위 위로 기어오르자 남서쪽 삼매리 방향으로 탁 트인 전망이 나온다. 기룡산을 향해 낙대봉을 거쳐 올라가는 능선의 기세가 힘차다. 5분쯤 더 걸어 올라가니 이번엔 영천호가 들여다보이는 포인트가 나온다. 영천호는 1980년 준공된 영천댐으로 형성된 호수다.

"이 물이 포항제철로 가서 쇳물이 됩니다. 호수를 따라 십리벚꽃길도 있어요. 정말 예쁜데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죠."

예로부터 기룡산 자락은 명당으로 여겨져

나란히 쓰러진 고사목 세 그루를 넘으면서 꼬깔산을 향해 마지막 스퍼트를 낸다. 1km쯤 남은 정상에 접근할수록 길은 좁아지고 가팔라지며 희미해진다. 서로 말을 잃고 묵묵히 몸을 밀어 올린다. 500m를 남겨놓고 신선암에서 올라오는 갈림길 이정표를 만난다. 이 길은 성곡리 방면으로 나 있는데 차량 회수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 잘 사용되지 않는단다. 해당 들머리에는 경북유형문화재인 강호정, 오회공종택, 하천재, 사의당, 삼휴정, 오회당 등 영천댐 건설로 수몰직전 옮긴 조선시대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힘들여 도착한 꼬깔산 정상에는 아무런 조망도 없이 오석 정상석만 하나 있다. 영천호 반대편에서 바라보면 그 모양이 꼭 꼬깔 같다고 한다. 정상석은 2005년 자양초등학교 총동창회에서 세운 것으로 뒷면에 영천댐으로 수몰된 모교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글이 새겨져 있다. 자양초등학교는 수몰 이후 자양면사무소 뒤로 이전했다가 폐교됐다. 현재는 영천시오감공예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기룡산 일원은 신갈나무와 굴참나무 위주의 참나무가 대부분이다.

꼬깔산을 넘자마자 길은 한결 편해진다. 약간의 오르내림을 반복할 뿐 급경사도 없고 길도 단단하다. 이제 좀 산을 즐기려는 찰나 대구 방면의 하늘이 심상치 않다. 진한 먹구름이 지평선을 슬금슬금 채워간다. 괜히 간혹 들리는 비행기 소리가 천둥소리인 것만 같다. 기룡산 일원에도 곧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잡힌 탓에 걸음을 서두른다.

꼬깔산에서 기룡산으로 이어진 능선은 굴참나무와 신갈나무가 우거져 있다. 산세를 보니 능선부는 참나무가 우점했고, 용화리 마을로 내려서는 지능선 끄트머리에만 소나무가 군락을 이뤘다. 간혹 기룡산이 얼마 남았는지 알려주는 옛 이정표들을 지나치는데 정확도가 엉망이다. 이에 화난 산꾼이 있었던 건지 상당수가 부서진 채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기룡산도 꼬깔산과 마찬가지로 정상에 접근할수록 길이 가혹해진다. 또 한동안 말을 잃고 한 시간쯤 치고 오르니 정성스럽게 돌담이 쌓인 무덤이 나온다. 정상이 가까워졌다는 표식이다.

"여기까지 무덤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정말 무덤이 많은 산이네요."

"옛날 조상님들은 기룡산 일원을 명당으로 여겼다고 하더군요."

기룡산 정상.

가팔환초부터 동해까지 한눈에 보여

갑자기. 정말 갑자기다. 나무가 가라앉고 바위가 쑥 솟아올라 돌아보니 걸어온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나무 잔가지를 액자삼아 용화리를 한 번 굽어본다.

이윽고 치고 오르며 만난 기룡산 정상은 감동적이다. 남쪽으로는 꼬깔산에서 이어진 능선과 운곡저수지로 가라앉는 하산길이 마치 두 마리 용의 등줄기처럼 빼어나다. 더 멀리 남서쪽은 '가팔환초'라 불리는 가산, 팔공산, 환성산, 초례산 능선이 아스라하다. 북쪽 보현산 정상에는 보현산천문대가 앙증맞다. 흐렸던 날씨가 정상 등정을 축원하듯 잠깐 구름을 열어줬기에 만날 수 있었던 시원한 경치다.

"어때요? 제가 말했죠. 진짜 멋있고 좋다고요. 날씨가 좋으면 동쪽으로는 포항 영일만도 보여요. 동해가 보인단 거죠."

"그런데 왜 이토록 안 알려졌을까요?"

"아무래도 기룡산 주변에 위세가 좋은 산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보현산이 원체 유명하고, 팔공산도 지척이잖아요. 또 경북 산꾼들의 중장거리 산행 코스인 '자도봉어' 환종주 길도 옆에 있어요. 자옥산, 도덕산, 봉좌산, 어래산을 잇는 길인데 여기도 인기가 높죠."

잠시 앉아서 숨을 돌리는데 저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이신영 사진기자에게 "날씨가 걱정이다"라고 말하니 "안 그래도 아까 물어봤는데 천둥이 아니라 인근 포 사격장 소리라고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문답을 듣던 박창완씨가 고개를 홱 돌린다.

"이건 천둥 맞는데요?"

"예?"

기룡산 정상 직전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용화리 일대. 사진 정면 양 능선 상에 등산로가 있어 원점회귀할 수 있다.
기룡산 정상 직전 전망바위.

갑작스런 소나기에 묘각사로 긴급탈출

금세 먹구름이 정상을 향해 사방팔방에서 덮쳐온다. 원래 계획은 기룡산 서쪽 능선을 타고 운곡저수지로 원점회귀하는 것이었으나 묘각사 탈출을 염두에 두기로 했다. 정상에서 바로 묘각사로 떨어지는 0.9km 길이 있지만 일단 비가 물러가는 요행을 믿고 기존 코스로 밀고 나갔다. 박씨는 "이 길로 가도 1.4km 앞에 묘각사로 가는 갈림길이 있으니 그때 다시 상황을 보자"고 했다.

요행은 없었다. 700m쯤 진행하자 이젠 쉬지 않고 천둥이 치며 심지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마음이 급한 탓에 도중에 등산로를 잃기도 했지만, 육안으로 보이는 능선으로 억지로 길을 이어 묘각사로 서둘렀다. 갈림길에서 묘각사까진 0.8km다. 묵은 낙엽에 미끄러지듯 달리니 이내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탈출극을 벌인 탓에 땀과 비로 푹 젖은 몸으로 묘각사 경내에 들어선다. 총무보살님이 다가와 따뜻한 커피를 건넨다. 월간<山>에서 왔다고 하니 "묘각사는 항상 열려 있으니 언제든 쉬다가도 된다고 등산객들에게 전해 달라"며 빙긋 웃는다.

꼬깔산에서 기룡산으로 가는 능선은 대체로 길이 분명하고 평탄해 걷는 맛이 났다.

묘각사는 1,400년 전인 신라 선덕여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묘각사가 지어졌다는 소문을 들은 동해 용왕은 달려와 의상대사에게 법문을 청해 들었다. 그리곤 감복해 승천하며 감로를 뿌려 극심했던 가뭄이 해소됐고, 산에는 기룡騎龍이란 이름이 붙게 됐다고 전해진다. 또 극락전 마당에는 진신사리가 모셔진 5층 석탑이 있다. 작은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니 2개의 작은 사리가 보인다.

"갑자기 소나기가 왜 내리나 했더니, 여기서 가뭄을 해소해 준 용왕에게 기우제도 자주 지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며 기룡산을 올려다보자 거대한 용 같은 구름이 달려와 휘감더니 덮어버린다. 잠시 처마 밑에서 숨을 돌리다 빗살이 잠시 약해진 틈을 타 임도 따라 마무리 하산을 결행한다. 시멘트 도로인데다 숲이 우거진 것도 아니라 "더 이상 취재할 만한 것은 없겠다"며 사진기자가 카메라 렌즈를 덮는다. 그 말과 동시에 충분히 자비를 베풀어줬다는 듯 소나기가 눈도 뜨지 못할 정도로 왈칵 쏟아 붓는다. 지나가던 묘각사 불자가 애처로운 몰골의 우리를 향해 차를 멈춰 세운다. 못 다한 용은 다음으로 남겼다.

묘각사 극락전과 진신사리가 모셔진 5층 석탑.

산행길잡이

전반적으로 등산로가 드문드문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독도에 유의해야 한다. 다만 샛길이 거의 없고 능선만 따르면 되기 때문에 길을 잘못 들어도 금방 올바른 등산로를 찾을 수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운곡저수지 기점에서 출발해 낙대봉을 거쳐 기룡산에 오른 뒤 꼬깔산으로 하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초반 된비알 구간에 낙엽이 많이 쌓여 있어 어려움이 크므로 꼬깔산부터 오르는 것을 추천한다.

산행 도중 묘각사를 연계하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정상에서 묘각사로 내려섰다가 절 서쪽 골짜기를 따라 능선으로 올라탄 후 운곡저수지로 가는 것이 가능은 하지만 비효율적이다. 차로 묘각사까지 갈 수 있으므로 산행을 마친 후 따로 시간을 내는 것이 낫다. 묘각사와 용화리를 잇는 도로는 매우 지루해서 걸을 만하지 않다.

또한 일부 지도에서 운곡저수지 앞 삼거리에서 무덤을 지나 바로 능선으로 오르라고 표기돼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운곡저수지 오른쪽에 제대로 된 등산로가 있다.

교통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영천버스터미널(영천역에서 하차했을 경우 앞 사거리 영천공설시장 정류장)에서 용화리 방면으로 운행하는 버스를 타면 된다. 가장 들날머리 가까이 접근하는 건 자양1 버스(06:15, 09:50, 11:50, 14:00, 15:50, 18:50)로 용화리 마을회관에서 내리면 된다.

이외에 443(20:00), 450(11:10, 17:00), 450-2(07:40), 451(12:35) 버스가 인근 용화 입구를 경유한다. 들날머리에서 다소 멀지만 배차 간격이 긴 시골 특성 상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자차를 이용할 경우 주차할 공간이 매우 협소하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인근의 버려진 집 주차장이나 운곡저수지 안쪽 공터 등에 차를 댈 수 있는 공간이 일부 있다.

숙식(지역번호 054)

영천은 육회가 유명하다. 도축장이 있어 연중 신선한 육류를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유명 육회 프랜차이즈 편대장영화식당(334-2655)이 바로 이 영천에서 시작됐다. 육회 2만 3,000원, 육회비빔밥 1만9,000원. 된장찌개는 기본으로 나온다.

삼송꾼만두(333-8806) 역시 영천에서 시작된 만두 프랜차이즈다. 오로지 군만두 하나만 판다. 속이 꽉 차 있는 옛 감성의 군만두라 인기가 많다.

들날머리 인근에 숙소가 없어 시내로 나와야 한다. 영천시내와 기룡산 사이에 있는 나인틴스 호텔(331-0019)은 각종 숙박예약 앱에서 영천 내 평가가 가장 좋은 모텔로 꼽힌다. 깔끔하고 위생적이며 조용한 점이 특징이다.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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