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룩뱀, 박새 인공둥지를 습격하다

2023. 7. 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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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뱀이 박새 인공둥지에서 머리를 내밀어 주위를 살펴보고 있다. / 박원배 객원기자



지난 7월 1일 필자가 활동하는 시민탐조클럽 여름 연수회가 1박2일 일정으로 열렸다. 장소는 경기도 양평군 지평 농막. 필자가 운영하는 곳이다. 농막엔 올 초 인공둥지를 4개 설치해놨다. 그중 2개는 4월에 곤줄박이와 박새가 1차 부화를 마치고 따로따로 떠난 상태였다. 또 하나의 둥지에 6월 중순 박새가 2차 번식을 해서 알을 9개나 낳았다. 그 둥지 속에는 벌써 알이 부화해 새끼들이 살고 있었다. 박새 부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둥지를 들락날락하며 애벌레를 물어다 먹였다. 시민탐조클럽 회원들은 나무 그늘에 앉아 박새 부부의 육추(부화한 가금의 새끼를 키우는 일) 모습을 평화로이 지켜보고 있었다.

박새 새끼 9마리 든 둥지 침입

박새 부부는 5~10분 간격으로 교대로 새끼들에게 먹이를 날라다 주었다. 엄마 박새가 둥지에서 나올 땐 하얀 물체를 물고 나왔다. 새끼의 배설물이다. 배설물을 둥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내다버리는 어미의 지극정성이다. 배설물이 둥지에 남아 있으면 천적들이 냄새를 맡고 접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때였다. 이호실 회원이 “앗, 뱀이다!’ 하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뱀이 순식간에 둥지 속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깜짝 놀라 달려갔다. 어찌해야 하나.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사실이라면 어떻게 뱀을 쫓아버릴 것인가, 머릿속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박새 새끼 2마리를 삼키고 둥지에서 나오는 누룩뱀 / 박원배 객원기자



정신을 차린 후 둥지 밑동을 두드렸다. 사실 확인이 필요했다. 아뿔싸, 정말이었다. 좀 있으니 뱀이 둥지에서 머리를 내밀고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뱀이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다급한 마음에 다시 둥지를 두드렸다. 성가셨는지 이번엔 뱀이 스르르 둥지 밖으로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누룩뱀이었다. 누룩뱀은 숲에 흔히 사는, 독이 없는 뱀이다. 주로 새나 들쥐를 잡아먹으며 산다. 독사가 아니라는 점은 다행이었지만, 문제는 9마리의 부화한 새끼들이었다. 둥지에서 나오는 뱀의 배가 벌써 불룩했다. 몇 마리인지는 모르지만 이미 삼켰다는 뜻이다. 지켜보는 내 마음이 타들어 갔는데, 박새 부부는 오죽했으랴. 둥지 주위를 날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뱀 주위를 근접 비행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상대는 무서운 뱀이었다. 선뜻 공격하지도 못하고 속만 끓이고 있었다.

나머지 7마리 어린 새야, 잘 자라거라

둥지를 뜯고 살펴보니 박새 새끼 7마리가 살아 있었다.

집게와 잠자리채를 가져와 뱀을 사로잡았다. 뱀을 그대로 놓아주면 언제 다시 침입해 나머지 새끼를 다 잡아먹을지도 모를 일. 뱀을 어찌하면 좋을까. 탐조 회원들은 뱀을 살려주라고 했다. 그래. 뱀, 너도 먹고살기 위해 한 짓인데…. 그게 자연의 이치였다. 그렇다고 해도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고민을 하다가 길 건너편으로 한참 걸어가 누룩뱀을 숲에 놓아주었다. 물론 “우리 농막에 다시는 오지 말거라” 하고 말하는 건 빼놓지 않았다.

인공둥지 근처에 놓아둔 물그릇에 물을 마시러 온 박새 / 박원배 객원기자



급한 불을 끄고 나자 미뤄뒀던 걱정이 다시 찾아왔다. 박새 둥지 속 새끼들은 과연 무사할까. 이 인공둥지는 새가 드나들 수 있는 구멍만 뚫어놓았을 뿐 문이 따로 없다. 새끼들의 생사를 확인하려면 어쩔 수 없이 지붕을 뜯어내야 했다. 둥지 안을 보니 7마리가 꼼지락거리며 살아 있었다. 아,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들만큼은 어떻게든 뱀으로부터 지켜주고 싶었다. 마늘 망에 마늘 대와 산초 줄기, 잎을 넣어 둥지 주위에 달아두었다. 뱀이 독한 냄새를 맡으면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누룩뱀에 크게 놀란 박새 부부는 한동안 먹이를 물고 와서도 좀처럼 둥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위를 배회했다. 아무래도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20여 분이 지나고 나서야 이전처럼 둥지 구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새끼들에게 다시 먹이를 먹이는 모습이 보였다. 열흘쯤 뒤면 새끼들은 다 자라 둥지를 떠난다. 둥지에서 나와 숲을 마음껏 훨훨 날아다니는 어린 새의 모습을 상상하며 난 다시 즐거운 상념에 빠져들었다.




박원배 주간경향 객원기자·자연환경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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