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압 사이에 낀 ‘붙박이 장마전선’… 때린 곳 또 때린다
홍수 피해는 ‘집중호우’가 결정한다. 우리나라는 한 해 강수량이 대부분 여름철(6~8월)에 집중되고, 그중에서도 6월 말 시작해 7월에 끝나는 장마철에 쏟아졌다. 과거 장마는 비구름대가 한반도 남북을 오르내리며 전국에 골고루 비를 뿌렸다. 절대적 강수량은 많아도 빗물이 빠져나갈 시간이 생겨 침수나 산사태 피해가 상대적으로 작았다.
그러나 기후변화 여파로 한반도 강수 형태가 ‘분산형’에서 ‘집중형’으로 변하고 있다. 13일 새로 발달한 이번 장마전선이 대표적이다. 주말 충청·전북·경북권에 폭우가 집중된 것은 장마전선의 비구름대가 남북으로 좁고 동서로 긴 ‘띠’ 모양으로 밀도 높게 형성됐고, 장마전선이 느리게 움직이면서 전선 바로 아래 놓인 지역에만 폭우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번 장마전선은 한랭 건조한 티베트고기압과 고온 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이 강하게 충돌하면서 발달했다. 두 거대 기단이 세력 다툼을 벌이면서 비구름대가 짓눌리듯 응축된 형태로 만들어졌다. 같은 양의 수증기라도 장마전선의 폭이 넓으면 약한 비를 고루 뿌리고, 폭이 좁으면 강한 비를 좁은 지역에 뿌린다. 지금 장마전선은 폭이 좁고 밀도가 높은 만큼 특정 지역에 ‘극한 강우’를 뿌리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장마전선이 정체한 채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 남쪽에 있는 북태평양고기압의 세력 확장 속도가 예상보다 느려 장마전선의 움직임도 둔한 상황이다. 북쪽의 한랭 건조한 기단과 남쪽의 고온 다습한 기단이 서로 밀고 당기는 다툼을 벌여야 장마전선이 남북으로 이동하는데 이번엔 남쪽 기단이 북쪽의 벽을 밀어 올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장마전선의 비구름대가 때린 곳만 또 때리는 집중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14~15일 폭우 피해가 심각했던 충청·경북권이 정체전선의 바로 아래에 있다. 현재 장마전선을 빠르게 이동시킬 요인이 부족해 18일까지 이 지역에 최대 250㎜의 비가 추가로 예보된 상황이다.
이런 양상은 작년 8월 8일 서울에 내린 ‘시간당 141.5㎜’ 집중호우 때와 비슷하다. 장마는 끝났지만 당시에도 폭이 좁게 발달한 정체전선이 서울 동작~강남권 일대 상공에서 움직이지 않으면서 이 지역에 극한 호우를 쏟아냈다. 같은 서울이라도 당시 동북권에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다.
여름 장마 때는 새벽부터 오전까지 강하게 퍼붓는 ‘야행성 폭우’가 나타난다. 밤사이 비구름이 커지는 이유는 낮보다 밤이 고온 다습한 공기가 침투하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남쪽의 북태평양고기압은 한반도 쪽으로 고온 다습한 공기를 공급한다. 그런데 낮엔 강한 햇볕이 지표의 수분을 증발시킨다. 육지 수증기가 상공으로 떠오르며 바다에서 들어오는 공기의 침투를 막는다. 고온 다습한 공기는 낮에 막혀 있다가 밤부터 본격적으로 육지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번 강한 장맛비는 일찌감치 예고됐다. ‘엘니뇨’ 현상으로 동태평양 감시 구역의 해수면 온도가 오른 데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동인도양 및 필리핀해 온도도 뛰었기 때문이다. 바닷물 온도가 오르면 수증기 증발이 많아지고 폭우로 연결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장마가 시작한 6월 25일부터 이달 15일까지 21일 동안 평년 장마철 강수량(356.7㎜)을 크게 웃도는 비가 내렸다. 지역별 강수량을 보면, 수도권에선 서울 동대문구 523㎜, 남양주 603.5㎜에 많은 비가 내렸다. 강원권은 원주(722㎜), 충청권은 청양(913.5㎜), 호남권은 전남 구례(820.5㎜)와 전북 장수(819.5㎜), 영남권은 경북 영주(904.5㎜)와 경남 함양(658.5㎜)에 기록적인 비가 내렸다. 제주 산지엔 1313㎜의 비가 내린 곳도 있었다.
평년 장마 기간은 중부 지방 31.5일, 남부 지방 31.4일, 제주도 32.4일이다. 평년 장마철 강수량은 중부 378.3㎜, 남부 341.1㎜, 제주도 348.7㎜인데 올해는 장마가 시작되고 20여 일 만에 각각 489.1㎜, 473.4㎜, 307.7㎜의 비가 내렸다. 제주는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에 들면서 폭염(暴炎)이 나타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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