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콩 심으랄 땐 언제고”…침수 피해조사는 소극적 ‘분통’

이상희 2023. 7. 16.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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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역 대체작물 재배 농가]
전북 6월말 호우 피해 2610㏊
뿌리 상해 날 좋아져도 회생 희박
“품목 다변화, 중장기 방안 필요”
농식품부, 생계비지원 등 계획
전남 보성군 득량면에서 논콩을 재배하는 김성근씨가 비어버린 논을 허탈하게 바라보고 있다. 김씨는 6월초 이곳에 콩을 심었지만 최근 집중호우가 이어지면서 습해로 콩이 녹아내리는 피해를 입었다.

장마가 길어지고 집중호우가 반복적으로 이어지면서 농가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물빠짐이 좋지 않은 논에 벼 대신 심은 콩·옥수수 등의 대체작물 피해가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식량작물 자급률을 높이고 쌀 생산을 조정하려는 정부 시책에 따라 논에 대체작물을 심었는데 정작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피해조사 등에 소극적이라 농가에서는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물에 잠긴 농작물, 뿌리 상해 재기 어려워=“올해 콩농사는 다 망쳤어요. 이미 뿌리가 다 상했다니깐. 다음주까지 계속 비가 온다고 하는데 하릴없이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야 할지 원….”

13일 전북 김제시 죽산면의 죽산콩농업법인 앞에 재배교육을 받으러 온 농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이 자리에서 농민들은 “요즘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논콩 발육 상태가 심각하다”며 허탈해했다.

교육을 주관한 한은성씨는 “오늘 순고르기 실습작업을 하려고 했는데 제대로 난 순이 거의 없어 이론수업밖에 못하는 상황”이라며 “현재 대부분 논콩에 뿌리가 없어 앞으로 날씨가 좋아져도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면 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죽산면에서 콩농사를 짓는 한 농가는 “6월말 갑자기 비가 쏟아졌는데도 원평천에 수문이 열리지 않아 불어난 물에 잠기면서 피해를 본 농가들이 많다”며 “정부가 논콩을 장려해 동참했는데 침수된 논을 보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고 말했다.

부량면에서 10㏊ 콩농사를 짓는 최재호씨(53)는 재배면적 중 40%가량 피해를 보았다. 그러면서 “10년간 콩농사를 지어왔는데 올해처럼 작황이 나쁜 적이 없었다”면서 “5월 중순에 심었으니 지금쯤이면 콩이 어른 무릎까지 자라 순고르기로 바빠야 하는데 습해로 생장이 더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고개를 떨궜다.

올해 벼 대신 콩농사를 시작한 조성래씨(56·부안군 하서면)도 피해를 봤다. 그는 “6월에 콩을 심었는데 긴 장마 탓에 콩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녹아내렸다”면서 “콩 대신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할지 막막할 뿐”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6월말부터 집중호우가 반복된 전남 보성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3일 간격으로 폭우가 쏟아지면서 콩 싹이 아예 녹아내린 논이 부지기수다.

득량면에서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조합원들과 함께 논콩 23㏊를 재배하는 김성근씨(54)는 “밭콩은 좀 상태가 나은데 논콩은 다 비슷한 상황”이라며 “콩을 잘 키워보겠다고 3월부터 퇴비도 주고 트랙터로 논 주변을 정비해서 수로도 뚫어놨는데 이 지경”이라고 말했다. 원래는 논두렁에 장대처럼 큰 풀을 베느라 하루 종일 바빠야 하는 시기인데, 콩이 다 녹아버렸으니 뭣하러 풀을 베나 싶어 내버려두고 있다고 했다.

겉으로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 논도 실상 피해가 컸다. 군데군데 콩이 자라나 논 일부가 초록색으로 덮였지만 그도 전체 논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주변 농가들은 “그나마 살아남은 것도 키가 15∼20㎝밖에 안되고 가지도 적어서 제대로 클지 의심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논에 심은 다른 대체작물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옥수수농가 선현문씨(27)는 “지금쯤이면 옥수수가 1m 정도로 자라야 하는데 거의 크지 못했고, 최근에는 잎과 줄기가 녹아버렸다”면서 “이 정도면 갈아엎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 상황이 나아질 기미도 찾기 어렵다. 비가 그친 뒤 기온이 크게 오르면 물을 머금고 있던 콩 줄기가 마치 끓는 물에 데친 것처럼 흐물흐물해지다가 누렇게 변하기 십상이다. 농가들은 득량면 일대의 논콩 면적 절반 정도가 피해를 본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심으라 했건만, 피해조사는 지지부진=이처럼 피해가 심각한 수준인데도 지자체에서는 피해조사에 소극적이라며 농가들은 강하게 비판했다.

김씨는 “면사무소에도 전화하고 군에도 찾아갔는데 피해조사는커녕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더니 며칠 전에서야 부랴부랴 피해 접수를 하기 시작했다”면서 “벼는 문제가 생기면 바로 조사도 하고 대책도 세우는 것과 비교하면 대체작물은 완전히 찬밥”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문제는 앞으로도 비가 더 올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했는데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동훈 국산콩연합회 사무국장은 “밭에 비해 논에 심은 콩 피해가 더 심한 것은 논이 상대적으로 물빠짐이 안 좋은 데다 콩은 습기에 약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쌀 생산조정 등을 목적으로 농가에 대체작물을 심으라고 독려만 할 것이 아니라 논콩 등의 침수 피해가 되풀이될 수 있는 만큼 대체작물 품목 다변화, 재해에 따른 구제책과 같은 중장기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편 전북도에 따르면 6월말 호우 피해 신고 마감일인 13일 오전 9시 기준 논콩 피해면적은 부안 1559㏊, 정읍 509㏊, 김제 338㏊ 등으로 집계됐다. 6월말 집중호우로 침수된 논콩 피해는 2610㏊에 달해 다른 농작물과 견줘 피해가 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정밀 조사를 거친 후 농작물 피해가 구체적으로 확인되면 ‘농어업재해대책법’에 따라 피해농가에 농약대·생계지원비 등을 마련해주고 피해가 큰 농가에는 농업정책자금 상환연기나 이자 감면 혜택도 준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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