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어캣·라쿤·부엉이가 한 집 살림하게 된 사연?...야생동물구조센터의 힘겨운 여름나기

구아모 기자 2023. 7. 15.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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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출신 미어캣·너구리
두 번 구조 된 흰꼬리수리 사연
충남 야생동물구조센터 가보니
한살배기 어린 수컷인 미어캣 ’꾸꾸‘.몽구스과 동물인 미어캣은 남아프리카에 서식하며 굴을 파고 무리 생활을 한다. 외래 야생동물은 우리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외래야생동물보호소에서 임시로 보호한다. /구아모 기자

최근 찾은 충남 예산군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있는 ‘유기외래야생동물보호소’. 보호소 안에 들어가자 한 살배기 미어캣 ‘꾸꾸’가 반가운 듯 사람에게 몸을 연신 부벼댔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정이라고 했다. 미어캣들은 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서식하는데, 꾸꾸는 센터 인근 광시면의 상가에서 일주일간 배회했다고 한다. 근처 가게 사장들이 챙겨주는 먹잇감을 받아 먹으며 지내다가 구조돼 지난 4월부터 이곳에 들어오게 됐다. 박진아 재활관리사는 “이곳에 머무는 첫날부터 사람을 크게 경계하지도 않고, 만질 수 있을 정도로 살가운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반려동물로 키우다 유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충남 예산 광시면 인근 민가에서 배회하다가 지난 4월 구조된 꾸꾸./구아모 기자

꾸꾸가 살고 있는 바로 옆방에는 라쿤인 ‘김쿤’ ‘이쿤’ ‘박쿤’ ‘최쿤’이 살고 있다. 너구리와 비슷한 생김새지만, 미국 전역과 캐나다 남부에 서식하는 외래종이다. 이들 모두 ‘이색 동물 체험카페’ 같은 곳에서 기르다가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최쿤이 있는 방에 들어서자, 최쿤은 몸통을 위로 한껏 치켜세우고 경계하는 태세를 취했다. 그러다간 풀숲을 지나쳐 굴다리처럼 되어있는 놀이용 시설물 뒤에 완전히 몸을 숨기기도 했다. 라쿤에 다가가면 깊게 할퀼 수도 있어 조심히 접근해야한다고 한다. 얼핏 보면 귀여운 생김새에 잊기 쉽지만, 이들은 엄연히 북미대륙의 야생에서 강인하게 자라는 동물인 탓.

이색 동물 체험 카페에서 자라다가 버려진 라쿤. /구아모 기자

흰꼬리수리·수리부엉이...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도 모인다

미어캣과 라쿤 같은 외래동물뿐만이 아니다. 이 야생동물구조센터엔 고라니·너구리같이 친숙한 동물은 물론, 흰꼬리수리·독수리 등 각종 천연기념물에 멸종위기종인 수리부엉이도 살고 있다. 2500㎡ 면적의 센터엔 현재 230개체의 동물이 머물고 있다. 야생동물센터는 환경부와 각 시도 지자체에서 직영 또는 위탁으로 운영하는데, 밀렵 등의 사고나 감염병 등의 이유로 질병에 걸리거나 상처를 입은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다. 마지막으로 재활 및 야생 적응 훈련 등을 거치고 나서야 최종적으론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낸다.

수리부엉이의 모습. 수리부엉이는 주로 차량, 유리창, 전선과 충돌하는 사고로 부상을 입는다고 한다./구아모 기자

여름은 야생동물 구조 센터가 가장 바쁜 계절이다. 늦봄과 초여름에 번식하는 야생동물의 새끼들이 가장 많은 탓. 센터 관계자는 “어미를 잃고 방황하는 새끼나, 인위적인 사고나 감염병 등의 이유로 질병에 걸리거나 상처를 입은 야생동물이 제일 많은 계절”이라고 했다. 여름에 한 주에 구조하는 동물 수만 평균 120여 마리. 지난 한해 이 센터에서 구조한 동물이 2525마리인데, 통상 매해 구조하는 동물 중 절반 꼴로 여름에 구조된다고 한다.

미어캣부터 독수리, 올빼미까지, 종을 초월한 동물들이 한 집 살림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각양각색 사연을 가진 야생동물들이 임시로 머무는 충남 야생동물 구조센터에 다녀왔다.

지난 6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진행한 구조 현황표./충남야생동물센터

다친 날개로 푸드덕 거리고, 치료해주는데도 할퀴려는 동물들

이 센터의 최종 목표는 이 야생동물들을 무사히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구조하는 동물들에겐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언젠가 야생으로 돌아갈 사이이기 때문. 센터에선 다친 부분은 치료하고, 때론 수술도 집도한다. 날개 죽지가 부러졌던 새에겐 다치기 이전처럼 날아오를 수 있도록 재활 훈련도 진행한다.

다친 부위에 소독을 진행하는 수의사의 모습. /구아모 기자

야생성을 가진 동물들은 몸 한 군데가 성치 않은데도, 재활관리사들과 수의사들의 손길을 애써 피하려고 바둥거렸다. 발바닥 부근에 부상이 있던 흰뺨검둥오리를 붙잡고 수의사 두 명이 상처를 소독하자, 흰뺨검둥오리는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천적에 저항하는 양, 애써 날개를 푸두득 거렸다. 한쪽에선 재활관리사가 개선충(옴)에 감염돼 피부가 벗겨진 너구리에게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시야를 가리고 몸통을 단단히 붙잡은 채로 작업을 진행했는데, 그러지 않으면 날카로운 발톱에 긁히기 때문이다.

개선충(옴)으로 피부병이 걸린 너구리에게 피부약을 바르는 모습./구아모

모든 동물이 센터에서 떠나가 야생으로 돌아가진 않는다. 야생으로 방생할 수 없는 상태여서 이 센터에서 영영 같이 지내는 동물들도 있다. 숫자로만 분류되던 동물들에게 불러 줄 이름을 붙이는 것도 그때다. 현재 센터에는 너구리, 올빼미, 벌매, 독수리, 흰꼬리수리 등 야생성을 잃거나, 영구적인 신체 손상을 입은 동물들이 살고 있다.

열세 살 너구리 ‘짬이’. /구아모 기자

이중 ‘짬이’는 충남 센터의 터줏대감. 너구리는 7~8년이 평균수명인데 그를 한참 웃도는 열세 살이다. 짬이의 어미가 비운 틈에 일반인이 몇 개월간 짬이를 기르다가 버렸는데 야생성이라곤 완전히 사라져서 도무지 바깥 자연환경에서 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흰꼬리수리 알비/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밀렵꾼에게 총상을 입어 구조센터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어느덧 7년째 센터에 머무는 흰꼬리수리 ‘알비’이야기다. 알비는 2015년, 충남 서산에서 밀렵꾼의 총에 맞은 채 발견돼 구조됐다. 11개월간의 치료와 재활 끝에 야생에 방사했지만, 이 센터에 다시 돌아온 것은 채 3개월 만이었다. 또 다시 밀렵꾼에게 총상으로 추정되는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오른쪽 날개를 도려내야했다. 날개 한쪽이 없는 새가 자연에서 생존할 확률은 전무한 상황, 결국 ‘15-009′라는 숫자로 불리던 흰꼬리수리는 알비라는 이름을 가진 채 센터에서 다른 동물들과 한솥밥을 먹게됐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비율 40%

충남 구조센터에서 구조한 동물 중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비율은 약 40%. 전국의 다른 센터에서도 야생동물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비율은 35% 남짓이다. 애초에 생사의 경계에 있는 상태에서 들어오는 동물들이 많아 구조 현장에 도착한 순간 이미 폐사해 있거나, 구조 된지 24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있다.

구조센터 직원들의 치료와 재활을 위한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을 목격하는 경우도 다반사. 여름엔 몰려드는 동물 구조 신고와, 매주 새로 머물게 된 동물들 치료와 배식 작업 등에 분주하다. 센터에 근무하는 재활관리사 6명과 수의사 3명이 이 일을 해낸다.

박진아 재활관리사는 “야생동물은 어느 곳에나 있지만, 다칠 때야 그제서야 눈에 띈다“며 ”각양각색의 사연으로 이 곳에 오는 동물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제 발로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충남야생동물센터 관계자가 일일관리표를 보며 사육상태 등을 점검하고 잇다. /구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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