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더랜드' 논란, '구멍가게'식 K-문화감수성에 경종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2023. 7. 1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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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JTBC '킹더랜드', 사진제공=엔피오엔터테인먼트, 바이포엠스튜디오, SLL

한국 대중이 외국 콘텐츠를 보며 화를 내던 시절이 있었다. '레옹'으로 잘 알려진 뤼크 베송 감독은 '택시'(1998)에서 교대로 일하는 한국인 택시운전사들이 차량 트렁크에서 잠을 청한다는 설정과 더불어 "나라가 어려워 24시간 일한다"는 대사를 넣었고,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른 '버드맨'(2015)에서는 여주인공이 "망할(fuxxing) 김치처럼 역한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그 때 한국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문화인지 감수성'이 낮은 그들을 질타했다. 그리고 적잖은 시간이 지난 2023년, 현재는 어떨까?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K-콘텐츠가 전 세계에 전파되면서, 우리는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는 모양새다.

12% 안팎의 높은 시청률을 구가하고 있는 JTBC 드라마 '킹더랜드' 제작진은 최근 아랍 문화를 왜곡했다는 지적을 받으며 수차례 고개 숙였다. 7∼8회에는 주인공 구원(이준호)의 친구로 아랍 왕자 사미르가 등장했고, 인도 출신 아누팜이 이를 연기했다. 극 중 세계 부자 순위 13위로 설정된 사미르는 클럽에서 여성들에게 둘러싸인 채 흥청망청 놀며 돈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여주인공 천사랑(임윤아)에게 관심을 보였고, 구원은 사미르에 관해 "바람둥이다" "여자친구가 100명이 넘는다" "이혼도 했을 것이다"라고 견제했다.

물론 이는 재미를 위한 극적 장치다. 재벌 2세인 구원보다 더 돈많은 인물을 통해 구원의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빤한 판타지다. 하지만 그로 인해 짊어질 책임은 컸다. 아랍 문화권의 질타가 따가웠다. 미국 비평 사이트 IMDB에는 "사우디 국민, 무슬림에 관한 모욕이다" "왜 인도 배우가 아랍 왕자 역을 맡느냐" 등의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결국 '킹더랜드' 제작사는 12일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 지역, 지명은 가상의 설정이며 특정 국가나 문화를 희화화 하거나 왜곡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면서 "타 문화권 입장을 고려하지 못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양한 문화권 시청자들이 함께 즐겁게 볼 수 있는 콘텐트를 만들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시청자들께 다시 한번 사과드린시청자들께 불편함을 끼친 점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또한 13일 '킹더랜드' 측은 사과에 이어 클럽, 음주 장면 등을 삭제했다. 홈페이지에는 수정된 영상이 업데이트됐고, 재방송 역시 수정본으로 송출된다.

이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봐야 할까? 업계 관계자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K-콘텐츠 임이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주류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그 책임은 외면하려는 행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4월 방송된 드라마 '보라! 데보라' 의 부적절한 표현에 대한 반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드라마 9회에서는 주인공 연보라(유인나 분)가 외모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독일 나치 정권 하에서 악명 높았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비유 대상으로 삼았다. 연보라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자기 배설물 위에 누워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누군가는 한컵의 물을 받아 반만 마시고 나머지 반으로는 세수했다. 유리 조각으로 식판 뒤 얼굴을 보면서 면도도 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외모를 가꾸고 치장하는 것은 생존의 문제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외국 드라마와 특정 장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고문신을 비유 대상으로 삼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자 제작진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시각으로 언급했어야 했는데, 신중하고 세심하게 고려하지 못했다"면서 "역사적 비극을 가볍게 소비하려는 의도는 결코 없었다는 점 말씀드리며,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냈다.

'수리남', 사진=넷플릭스

이런 왜곡된 시선은 단순한 문화적 논란을 넘어 외교적 문제가 비화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지난해 9월 넷플릭스 '수리남'은 특정 지명을 제목으로 사용하며 이 나라를 마약과 부패에 찌든 국가인 것처럼 묘사했다. 당시 앨버트 람딘 수리남 외교·국제경제·국제협력 담당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수리남'을 언급하며 "우리나라는 마약을 거래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형편없이 묘사됐고(poorly portrayed)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제작자의 표현의 자유는 고려해야 하지만 이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관한 문제다. 드라마로 인해 수리남이 또다시 나쁜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주장하며 항의 서한을 보내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런 특정 국가·인종·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왜곡된 묘사에서 오는 다툼은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퀸 클레오파트라'가 클레오파트라 7세의 일대기를 조명하며 클레오파트라 역으로 흑인 배우를 캐스팅해 논란이 불거졌다. 게다가 픽션이 아닌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반발이 거셌고, 이집트 관광유물부는 "클레오파트라 7세의 피부색이 밝고 그리스계라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이다. 조각품과 동상이 최고의 증거다. 클레오파트라 7세를 흑인으로 묘사한 것은 명백한 역사왜곡"이라고 성토했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다. '픽션'이라는 것을 전제한다면 어떠한 상상력도 발휘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문화 콘텐츠가 글로벌 인식을 바꿔놓을 수 있는 세상이 펼쳐지면서 창작자들의 책임 또한 커졌다. 특히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른 K-콘텐츠는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에 발맞춘 인식이 요구되고 있다. 한국에서 만든 콘텐츠가 삽시간에 전 세계에 전파될 수 있을 만큼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하다면, 그에 걸맞은 문화인지 감수성을 갖추라는 글로벌 시장의 욕구 역시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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