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김건희 고속도로’이면 장관직 건다고?

박병진 2023. 7. 12.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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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고속도로 사업’ 백지화 선언
권한 남용에 정치적 제스처로 비쳐
의혹 성실 소명하는 게 장관의 도리
더 이상 정책 혼란 부추겨선 안 돼

지난달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참석차 윤석열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다.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신청국 4차 경쟁 프레젠테이션(PT)을 앞두고 숙소 인근 몽소공원(Parc Monceau)을 산책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윤 대통령은 천안함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천안함이 그려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를 본 지지자들은 “이역만리에서 국군을 생각하고 국가안보를 최우선시하는 대통령의 자세가 아주 훌륭하다”며 감격했다. 한편에선 “정무직 대통령이 굳이 국내 정치상황을 프랑스까지 가서 드러낼 필요가 있었느냐”며 따지고 들었다.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 보름 전쯤 더불어민주당이 ‘천안함 자폭설’ 등을 거론했던 이래경 사단법인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을 민주당 혁신위원장으로 선임한 것과, 최원일 전 천안함장에 대한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의 막말을 겨냥한 정치적 행보가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랐다. 민심은 그렇게 시소를 탔다.

물론 윤 대통령이 평소 천안함 로고가 새겨진 옷과 모자를 자주 이용하며 관심을 드러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다. 대통령이 옷차림만으로도 편가르기와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도하지 않았고, 몰랐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기왕에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프랑스를 간 김에 천안함보다는 해운대와 파리 에펠탑이 그려진 모자나 티셔츠로 연출하는 게 더 어울리지 않았겠나. 정치가 아닌 외교의 현장에서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한다면 말이다.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란 말이 있다. 참외밭에서 신발을,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얘기다. 오해받을 만한 행동에 대한 경고다. 대통령의 언행이라고 다를 바 있겠나.
박병진 논설위원
화물연대 파업 강경 대응과 ‘건폭’(건설현장 폭력) 단속으로 주가를 올렸던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요즘 비슷한 행보로 구설에 올랐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을 전면 백지화하겠다고 선언하면서다. 더불어민주당이 고속도로 노선 변경 시도에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일가의 특혜 의혹을 제기하자 차라리 사업 자체를 접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원 장관은 “노선(변경)에 관여한 사실이 있거나 구체적으로 보고받거나 지시받은 게 있다면 장관직뿐만 아니라 정치생명을 걸겠다”고도 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향해서는 “민주당 간판 걸고 한판 붙자”며 격앙된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정무직 장관의 발언 치고는 꽤나 수위가 높다. 누가 보면 여당 대표인 줄 착각할 정도로.

고속도로 건설 노선 인근 지역에 김 여사 일가의 땅이 있다는 정황만으로 민주당이 특혜 운운하며 의혹을 부풀리는 건 분명 정치공세 성격이 짙다. 하지만 원 장관의 백지화 선언도 지켜보기 민망한 게 사실이다. 야당 공세가 아무리 터무니없다 하더라도 주무장관이 책임을 야당에 떠넘기며 국책사업을 돌연 접겠다고 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 권한 남용이자 정치적 제스처로 비쳐진다. 고속도로를 학수고대해 온 지역민들의 희망까지 한순간에 짓밟는 처사다. 고속도로 종점을 변경했는데 그곳에 대통령 영부인 가족 땅이 있다면 누구나 의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오히려 의혹을 성실히 소명하겠다고 하는 게 장관 된 도리 아닌가.

비슷한 전력은 또 있다. 지난 3월 국회 국토위 전체회의 때다. 당시 심상정 정의당 국회의원이 원 장관에게 “제주 제2공항 건설 여부에 대한 주민투표를 수용해야 한다”며 촉구하자 그는 “제주도 의회에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결정권이 있다. 부동의하면 모든 절차가 끝난다”고 답했다. 제2공항에 대한 주민투표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고, 공항 건설과 관련해 제주도의회로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그는 작년 8월에도 1기 신도시 재정비 공약 파기 지적에 “장관직을 걸겠다”고 했다. 걸핏하면 책임을 떠넘기고 자리를 걸겠다는 건 무책임의 표본이다. 구구한 억측만 낳을 뿐이다. 더구나 원 장관은 무책임한 정치적 공방의 해악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아닌가. 맡은바 공무원 소임에 충실하며 더 이상 혼란을 부추겨선 안 될 일이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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