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비용 명세서]② “아직도 쇄골, 승모근, 솜털 관리 안 했다고요?” SNS가 부추기는 몇 백만원대 ‘신부 관리’

이현승 기자 2023. 7. 1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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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 관리는 ‘필수’...승모근·쇄골·솜털 등 별별 관리 성행
업체들 “돋보여야죠” 100만원짜리 시술 권유
SNS 후기 글 보고 혹하는데... 알바 고용하기도

지난 4월 한 달간 혼인 건수는 1만4475건으로,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같은 달 기준)를 기록했다. 터무니없이 높은 결혼 비용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부담으로 여기게 만든 요인 중 하나다. 허례허식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 특유의 결혼 문화에 프러포즈부터 결혼식에 이르는 각 단계마다 통과의례처럼 치러야 하는 각종 이벤트가 젊은 층의 트렌드가 되면서 결혼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업계의 상술과 소셜미디어에 결혼 사진을 올리며 과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예비 부부들에게 지갑을 열라고 부추긴다. 조선비즈는 기형적인 결혼 비용이 나오게 된 이유를 결혼 준비 과정을 따라가며 하나씩 소개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블레이드(칼날)로 얼굴 솜털을 제거하시면 신부 화장할 때 들뜸이 없어요.”

6일 경기도 용인의 한 피부관리 전문 매장. 결혼식이 3개월 남았다고 하자 직원이 ‘스킨플래닝’이라는 이름의 솜털 제거 시술을 권유했다. 총 2회에 16만원인 이 시술은 요즘 예비 신부들의 필수 코스가 됐다. 솜털을 제모해 피부 결을 매끄럽게 만들면 화장품이 잘 흡수된다고 했다. 직원은 “방송에서 연예인들 피부가 깐 달걀처럼 반들반들하게 나오는 이유”라며 시술을 적극 추천했다.

이날 기자가 경기도와 서울 강남구, 마포구 등 유명 피부과와 체형관리 전문 매장 등을 돌며 예비 신부를 대상으로 한 관리 상품을 문의하자 관계자들은 ▲쇄골 관리 포함 전신 마사지 상품 170만원(10회) ▲피부색을 밝게 하고 피부 속에 물광을 채워주는 상품 150만원(10회) ▲등 색소 침착 완화 레이저 시술 50만원 ▲승모근 보톡스 18만원 ▲솜털 제모 16만원 등을 추천했다. 전부 다 받을 경우 400만원이 넘는다. 이런 관리는 불과 10여 년전까지만 해도 유명 연예인들이나 받는 것이란 인식이 팽배했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관리 전후를 비교한 인증샷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마포구 아현 웨딩거리의 한 웨딩드레스 판매점에 웨딩 드레스가 전시되어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이런 트렌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건 아니다. 상품을 결제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굳이 이런 관리까지 받아야 하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내년 결혼을 앞둔 오희진 씨는 “어차피 메이크업 전문가가 화장을 해주고 사진 촬영을 하고 나서 포토샵으로 수정도 가능하기 때문에 솜털 제거까지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인스타그램에 확실히 효과가 있다는 식으로 추천하는 글이 올라오고 다른 예비 신부들이 후기를 올리면 나 혼자 뒤떨어지는 것 아닌가 싶어 결제하게 된다”고 말했다.

◇ “인생에 한 번인데 돋보여야죠” 100만원 넘는 시술 권하는 업체들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식전 관리 상품은 수십 가지에 이른다. 기자가 만난 피부과, 체형 관리 전문 숍의 상담 직원들은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에서 주인공이 돋보여야 되지 않겠냐”며 1회당 10만원이 넘는 시술을 평균 8~10회 결제하라고 제안했다.

그래픽=손민균

서울 마포구의 한 피부과에선 ▲피부 리프팅·필링(피부 탄력을 높여주고 각질 제거·150만원) ▲등 제모 및 관리(90만원) ▲피부 톤업(피부색을 밝게 만들어 주는 시술·60만원) ▲얼굴 보톡스(22만원) ▲승모근 근육 이완 주사(9만원) 등의 시술을 추천했다. 마포구의 또 다른 피부 관리 전문 숍에선 쇄골 관리를 통해 얼굴이 작아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1회 17만원, 총 170만원짜리 패키지를 추천했다.

강남구의 피부과에선 예비 신부를 대상으로 한 ‘웨딩 패키지 상품’을 권유했다. 패키지는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구성할 수 있는데 피부 재생 및 톤업 레이저 시술(200만원)과 등 관리( 50만원) 등이 포함된다. 상담 직원은 “요즘 신부들은 피부 결을 개선하거나 톤업(피부색을 하얗게 하는 것) 하는 시술을 많이 하고 어머니와 함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드레스 라인’이라는 이름의 경락·피부 관리 상품도 인기다. 웨딩드레스를 입었을 때 마치 연예인처럼 이상적인 몸매로 보일 수 있도록 관리해 주는 것이다. 업체에선 목과 등, 팔뚝 등이 날씬해 보일 수 있도록 마사지하거나 레이저로 피부색을 환하게 만들어 준다고 홍보한다. 업체마다 가격은 5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천차만별이다.

식전 관리가 신부의 영역이란 얘기도 이제 옛말이다. 신랑을 대상으로 한 피부·두피 관리 상품도 수십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경기도 분당의 한 마사지 전문 숍 관계자는 “요즘은 웨딩 촬영과 본식을 앞두고 색소 침착, 기미, 주근깨, 여드름 흉터를 없애거나 모공 크기를 줄이고 피부색을 밝히는 시술을 찾는 남성들도 많다”며 “요즘 젊은 층은 더 이상 결혼식이 신부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행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식전 관리 부추기는 SNS 후기 글…할인 내걸어 솔직한 평가 실종

예비 신랑·신부들은 식전 관리를 부추기는 건 SNS라고 입을 모았다. 인스타그램에서 신부 관리를 검색하면 20만개 가까운 후기 글이 나온다. 이런 후기 글에선 부정적인 평가는 찾아볼 수 없다. 업체들이 SNS에 후기를 남기는 대가로 할인을 해주거나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긍정적인 리뷰를 쓰도록 평판 관리에 나서기 때문이다. 오직 칭찬뿐인 후기 때문에 예비 신혼부부들은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곳이 없고 합리적인 지출을 하기가 힘들다고 한탄한다.

“드레스 라인 관리 고민 중인 분들, OOOO 추천 드려요. 가성비도 좋고 무엇보다 시술 전후 비교해 보시면 후회 안하실 거예요.”

지난 4월 결혼한 김윤정(30) 씨는 서울 강남구의 한 체형 관리 업체가 언급된 네이버 블로그 후기 글을 보고 구체적인 견적과 서비스 수준, 결과물 만족도 등을 문의하기 위해 작성자에게 쪽지를 보냈다가 “사실은 돈 받고 쓴 글”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다시 후기 글을 꼼꼼히 살펴봤지만 ‘결과가 너무 만족스러웠다’, ‘직원 분들도 친절하다’ 등 제3자가 보면 누구나 실제로 이용한 사람이 쓴 것이라고 오해할 만한 문장들이 있었다.

그래픽=손민균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각종 식전 관리 업체를 비롯해 예식장 등 웨딩 업체는 SNS에 후기 글을 올릴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하거나 홍보대행사를 통해 웨딩 관련 인터넷 카페에 ‘침투’할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다. 아르바이트생 1명이 많게는 십수 개에 달하는 인터넷 아이디로 카페에 가입해 등업(회원 등급 업그레이드)을 한 뒤 마치 업체를 직접 이용해 보거나 상담을 받아보니 추천할만하다는 취지의 홍보 글을 수십 개씩 올리는 식이다. 정작 글쓴이는 결혼을 준비하거나 결혼을 한 적도 없는 사람이다. ‘거짓 추천 글’을 보고 덜컥 계약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추천 글에는 업체의 장점과 가격정보를 제공하는 글 외에도 업체 내부 모습이나 관계자들이 일하는 사진까지 함께 올라간다. 업체 또는 홍보대행사가 촬영한 사진들을 아르바이트생에게 건네면, 아르바이트생이 직접 업체에 방문한 것처럼 후기 글 등을 쓰는 방식이다. 글쓴이가 직접 촬영한 듯한 사진을 본 신랑·신부들은 돈을 받고 쓴 글임을 알지 못하는 한 속을 수밖에 없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직접 홍보 글을 쓰기도 하지만, 홍보대행사가 미리 써서 넘겨준 원고를 그대로 업로드만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상품을 구매한 사람들도 SNS나 인터넷 카페에 솔직한 후기를 남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업체에서 결제금액에서 10~20% 할인해 주는 조건으로 카페에 후기 글을 남겨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작년 말 결혼한 김윤아(34) 씨는 “알아봤던 식전 관리 업체 대부분이 계약 조건으로 특정 카페에 후기를 남기면 10% 캐시백(현금을 돌려주는 것)을 내걸었다”며 “음식 배달시킬 때 리뷰 이벤트(후기를 남기면 서비스를 주는 것) 나쁘게 쓰는 사람이 어딨나. 업체에서 대놓고 요구하지 않아도 대부분 좋게 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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