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스토킹하는 까치…알고 보면 귀엽지만은 않다

한겨레 2023. 7. 11.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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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애니멀피플] 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
영리하고 영역 주장 강한 까치, 새들에겐 ‘깡패’
기후변화, 천적 부재 등으로 인해 개체 수 증가
고양이의 뒤를 쫓는 까치.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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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까치가 고양이를 희롱하는듯한 영상이 공유되며 화제가 됐다. 울타리 위를 걷던 까치 한 마리가 마치 길고양이를 미행하듯 쫓다가 고양이가 낌새를 알아채고 뒤돌아보면 짐짓 모른 척 딴청을 부리는 것이다. 까치의 이런 행동은 몇 번이나 반복되는데 이 모습을 본 누리꾼들은 흥미롭다는 반응이다.

까치는 영역에 들어온 고양이가 못마땅하다. 무조건 심술을 부린다.

새와 고양이의 포식 관계를 생각하면 입장이 뒤집힌 이 상황이 재밌어 보일 것이다. 까치는 오랫동안 우리 곁의 정겨운 새로 여겨져 왔다. 우리나라 민화를 보면 고양이나 개가 함께 그려진 까치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림의 주된 내용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고양이와 개를 놀려대는 모습이다.

까치는 마을 어귀 전망 좋은 높은 나무 꼭대기 자리 잡고 경계를 하고 있다.
새를 위해 남겨두는 감을 ‘까치밥’이라고 한다.

까치는 사실 영역 욕심이 매우 강하다. 틈만 나면 자신의 영역에서 나가라는 시위를 벌일 정도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말은 이런 까치의 속성을 잘 알던 선조들의 관찰이 드러나는 속담이기도 하다. 마을 어귀에 터를 잡은 까치는 낯선 사람을 보면 영역을 침범한 것으로 판단해 텃세를 부리는 것이다.

민화에 나오는 까치,개, 고양이 우리 일상에 있었던 일이다.

까치가 길고양이 뒤를 쫓아다닌 건 아마도 고양이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잡식성인 까치가 고양이 밥이나 개밥을 훔쳐 먹는 일도 자주 관찰된다.

까치 영역에 들어선 개, 주변을 맴돌며 서성거리는 까치 심기가 불편하다.
고양이가 영역에서 물러설 때까지 따라다니는 까치. 고양이가 뒤돌아보자 딴청을 부린다.
까치가 고양이 뒤에서 소리지 질러 대며 난리를 친다.

이렇게 오랜 세월 친근한 동물이지만 최근엔 맹금류 감소와 왕성한 번식력 탓에 개체 수가 증가해 구박데기로 전락했다. 농작물을 망치거나 훔쳐먹는 등 막대한 피해를 주고, 전봇대에 둥지를 틀어 정전사고를 일으키기도 해 환경부는 2000년 9월 까치를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했다. 더 이상 ‘길조’로 사랑받던 새의 위상은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까치는 세력권 안에서 무리를 이뤄 생활하지만, 먹잇감 앞에서는 생존 경쟁을 치열하다.

까치는 집단행동을 할 줄 아는 매우 영리한 새다. 번식이 끝난 6~8월 무리를 이루고 월동기인 12월에 가장 큰 무리를 이룬다. 땅 위를 잘 걷기 때문에 생활력이 강하다. 주변 상황을 잘 살피며 상대의 행동을 면밀히 파악한다. 고양이나 개, 대형 맹금류 앞에서도 귀찮을 정도로 알짱거리고 눈치를 보며 건드려 댄다. 그러다 한 까치가 공격이라도 당할라치면 주변에 서식하는 모든 까치떼가 몰려와 소리치고 공격하는 일이 발생한다.

흰꼬리수리 눈치를 살피며 꽁지깃을 무는 까치.
독수리 등 위에 올라 겁 없이 촐싹거리는 까치.

영역에 대한 애착과 집착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데 심지어 맹금류를 집단으로 공격하는 과감한 모습을 보인다. 맹금류의 부리는 앞으로 구부러져 있다. 사냥감을 뜯어먹기에는 적합하나 먹이를 쪼아 먹지는 못한다. 까치는 이런 맹금류의 약점을 알고는 적당히 접근하여 뾰족한 부리의 우월함을 뽐낸다.

민물가마우지에게 텃새를 부리를 까치 민물가마우지 눈빛이 매섭다.

맹금류 또한 까치의 부리에 눈을 다칠 위험성을 알고 있는 듯 몸을 사린다. 물론 까치의 자만은 죽음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땅에서는 발재간을 부리기 어려운 맹금류지만, 대신 공중에서는 사냥감을 낚아채는 기술이 뛰어나다.

까치가 우리 눈엔 귀여워 보일 수 있겠지만, 새들에게는 난폭한 새임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야생조류 세계의 깡패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까치는 다른 새들을 공격하고, 둥지를 털어 어린 새끼들을 공격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까치의 공격을 받아 둥지 위에서 떨어진 물까치. 새끼의 눈빛이 안쓰럽고 어미는 애처롭다.
물까치 부부는 죽어가는 새끼를 보며 손 쓸 길이 없다.

얼마 전 까치가 물까치 둥지를 공격해 어린 물까치가 땅으로 떨어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물까치는 집단으로 번식하면서 새끼를 보호하는데 까치에게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일반적인 새들은 생존본능에만 충실한데 까치는 영역 텃세가 지나친 면이 있다.

개체 수가 급격히 불어난 까치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하다. 기후변화로 지난 10여년 간 까치의 번식 성공률은 크게 늘었고, 뛰어난 적응력으로 도심에 자리잡기 시작하며 천적과도 마주칠 일도 줄었다.

까치는 얄미울 정도로 흰꼬리수리를 성가시게 한다.
까치는 물러서지만 집요하게 흰꼬리수리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그러나 대형 맹금류답게 굳건히 자리를 지킨다.

대신 영역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다른 새들에 대한 공격성으로 나타난다. 모든 생물이 마찬가지겠지만 과하면 균형을 잃는 것이 생태계다. 영리한 까치의 텃세가 마냥 귀엽게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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