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세 번의 도주극...한국판 '프리즌 브레이크' 꿈꾼 김봉현 남매

안아람 2023. 7. 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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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사태' 주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2019년 영장심사 앞두고 5개월간 도주
2022년 보석 후 전자팔찌 끊고 48일 도피
CCTV 사각지대 파악 치밀한 세 번째 시도
탈옥을 소재로 한 미국의 유명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

1조 6,000억 원대 피해를 낸 '라임자산운용(라임) 사태' 주범으로 징역 30년을 선고 받고 수감 중이던 김봉현(49)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탈옥에 실패했다. 지난 4년간 검찰 수사과정에서 두 차례 도주했다 붙잡힌 김 전 회장은 이번엔 장장 A4 용지 27장에 걸쳐 치밀한 탈옥 계획을 세웠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형제의 탈옥을 소재로 한 미국의 유명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그의 도주 행각을 되짚어봤다.


현금 60억 원 들고 도심 활보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지난해 9월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첫 번째 도주는 라임 사태로 구속을 앞둔 때였다. 김 전 회장은 2019년 12월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자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달아났다. 그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서울 종로와 강남 등 도심에 몸을 숨겼다. 도피 기간에는 휴대폰 유심(USIM·범용 가입자 식별 모듈)을 수차례 바꾸면서 수십 대의 대포폰을 쓰고, 택시를 여러 차례 갈아타는 등의 수법으로 수사망을 피해 다녔다. 지인과 연락할 때는 보안이 강점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텔레그램을 사용했다.

도피기간 그는 현금 약 60억 원을 물품보관소와 은신처 등에 숨겨놓고 도피자금으로 썼다. 현금 60억 원을 5만 원 권으로 나누면 무게가 120㎏에 달한다. 그는 체포 후 경찰 조사에서 "현금을 넣은 캐리어를 들고 다니다 허리를 다쳤다"고 말하기도 했다. 부산을 통해 밀항을 시도했지만 수사기관의 포위망이 좁혀오면서 실패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그는 도주 5개월 만인 2020년 4월 지인 명의의 성북구의 한 빌라에서 잠복하던 경찰에 붙잡혔다. 체포 당시에도 위조 주민등록증을 내밀 정도로 뻔뻔했다.


지인 배신에 두 번째 도주도 실패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도주를 도운 조카 김모씨가 지난해 12월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도주에 실패한 김 전 회장은 결국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2021년 7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보증금 3억 원과 주거 제한, 도주 방지를 위한 전자장치(전자팔찌) 부착, 참고인·증인 접촉 금지 등의 조건이 붙었다. 보석기간 중 공범인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이 지난해 11월 징역 20년 확정을 받자 김 전 회장은 다음날 경기 하남시 팔당대교 근처에서 전자팔찌를 끊고 도주했다. 당일 결심 공판 1시간30분을 앞두고 있었다.

이번에도 다수의 조력자가 그의 도피를 도왔다. 그의 조카는 도주 당일 그를 차에 태우고 이동했다. 수사기관에는 동선을 거짓으로 진술했다. 김 전 회장의 친누나는 자신의 지인을 동원해 김 전 회장의 도주를 도왔다. 가족뿐 아니라 지인들도 차량을 제공하거나, 은신처를 구해주는 등 그의 도피를 적극 조력했다. 이들은 그 대가로 사설토토 및 카지노 운영 등 거액의 이권 사업을 약속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은 궁지에 몰리자 배신했다. 김 전 회장의 전자팔찌를 훼손한 혐의로 실형 위기에 처한 조카는 김 전 회장의 지인과 동선 등을 검찰에 알려줬다. 검찰은 김 전 회장 조카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망을 좁혔다. 김 전 회장 측근들은 잇따라 체포되거나 자수했다. 검찰은 이들의 진술을 참고해 김 전 회장의 은신처를 찾아냈다. 김 전 회장은 두 번째 도주 48일 만인 지난해 12월 29일 경기 화성시 동탄의 한 아파트에서 수면 바지를 입은 채로 검찰에 붙잡혔다. 검거 당시 혼자 있던 그는 욕설을 하며 아파트 9층 베란다 창틀을 뛰어넘어 도망치려 했지만 결국 잡혔다.


A4용지 27장 '탈옥계획서'도 무용지물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세 번째 도피를 도운 친누나 김모씨가 6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스1

또 다시 붙잡힌 김 전 회장은 이번엔 공들여 탈옥을 계획했다. 수감 중인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구치소에서 재판과 조사를 위해 서울남부지법과 서울남부지검까지 이동하는 출정 동선을 타깃으로 삼았다. 김 전 회장 일당은 사전에 호송차량의 이동경로는 물론, 법원과 검찰청 건물 조감도와 건물 내 잠긴 문, 후문 개방 여부,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까지 파악했다.

검찰이 확보한 A4용지 27장 분량의 탈옥계획서에는 법원과 검찰청 사이 흡연구역의 위치, 재판 진행 과정에서의 식사시간, 이동할 때 교도관 숫자, 호송차량의 내부 좌석 배치와 창문 위치까지 빼곡히 기록돼 있다. 호송차량 내 자신이 앉을 자리에는 '구출자'라고 표시했다.

탈옥 시나리오도 다양하게 준비했다. 처음에는 서울남부지검으로 조사를 받으러 갈 때 미리 준비한 차로 교통사고를 고의로 낸 뒤 사설 구급차를 이용해 도망칠 계획을 세웠다. 조직폭력배를 고용해 재판에서 난동을 부리게 한 뒤,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도주하는 시나리오도 짰다.

이같은 시나리오를 실행하기 위해 조력자를 포섭했다. 김 전 회장은 같은 구치소 수감자인 '부천식구파' 조직원에게 "탈옥에 성공하면 20억 원을 주겠다"고 매수했다. 외부에서 김 전 회장을 도운 친누나는 조직원의 지인에게 대포폰 마련 비용 등 착수금 명목으로 1,000만 원을 건넸다. 계획한 날짜가 다가오자 김 전 회장은 확실한 도움을 받기 위해 탈옥 성공 시 40억 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범행에 사용할 대포차 구입 명목으로 2,000만 원도 미리 줬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그의 탈옥 계획은 조직원 중 일부가 변심해 검찰에 알리면서 물거품이 됐다. 김 전 회장의 도주를 돕던 친누나는 피구금자도주원조미수 및 범인도피교사 혐의로 체포됐다. 서울남부구치소로 돌아간 김 전 회장은 도주 시도에 따른 징벌위원회에서 '금치 30일' 조치를 받았다. 금치는 14개 징벌 중 가장 무거운 징벌로, 독방(징벌 거실)에 수용되고, 접견과 전화, 공동행사참가 등 각종 처우가 제한된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중형을 저지른 범죄자일수록 구속이나 수감을 면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며 "김 전 회장 역시 '징역 30년'에 대한 압박이 커 탈옥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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