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비용 명세서]① 코로나 후 일제히 두 자릿수 오른 예식장 대관료...‘깜깜이’ 영업에 소비자만 운다

이현승 기자 2023. 7. 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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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청년들 ‘결혼 장애물’ 첫번째 예식비
가격 천차만별에 코로나 거치며 두 자릿 수 인상
책정 기준, 인상 이유 ‘깜깜이’
인생에 한 번 뿐이라서, 남들 다 하니까 결제
고사 위기 예식장 운영업체들, 흑자 전환

지난 4월 한 달간 혼인 건수는 1만4475건으로,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같은 달 기준)를 기록했다. 터무니없이 높은 결혼 비용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부담으로 여기게 만든 요인 중 하나다. 허례허식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 특유의 결혼 문화에 프러포즈부터 결혼식에 이르는 각 단계마다 통과의례처럼 치러야 하는 각종 이벤트가 젊은 층의 트렌드가 되면서 결혼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업계의 상술과 소셜미디어에 결혼 사진을 올리며 과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예비 부부들에게 지갑을 열라고 부추긴다. 조선비즈는 기형적인 결혼 비용이 나오게 된 이유를 결혼 준비 과정을 따라가며 하나씩 소개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30대 직장인 정은수 씨는 4월 결혼을 앞두고 지난해 서울 강남구의 한 예식장 견적서를 받아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 결혼한 언니가 같은 예식장에서 받은 견적서상 금액이 3400만원이어서 그 정도로 예산을 잡아뒀는데 600만원 넘게 올라 4030만원이란 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홀 대관료가 450만원에서 550만원으로, 꽃장식 비용이 500만원에서 580만원으로 올랐고 1인당 식비가 7만5000원에서 9만원으로 인상됐다. 정 씨는 “담당 직원한테 왜 이렇게 많이 올랐냐고 물어보니 각종 물가와 인건비 인상분을 반영했다고 하는데, 직원도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는 눈치였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인한 집합 금지가 해제된 작년 하반기부터 예식장 운영업체들이 예식비를 너도나도 두 자릿수 올렸다. 덕분에 2020~2021년 영업 적자를 면치 못했던 업체들은 작년을 기점으로 적자 폭을 크게 줄이거나 흑자 전환했다. 하지만 불가피하게 결혼을 미뤘던 신혼부부들은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씩 오른 영수증을 맞닥뜨리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수천만원이 들어가는 예식비가 어떤 기준으로 책정되는지, 왜 갑자기 수백만원씩 오르는지 ‘깜깜이’ 인 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생의 한 번뿐’이라는 결혼식의 특수성과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과시 문화가 합쳐지면서 서비스 공급자와 구매자 간 관계가 역전된 독특한 시장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 웨딩업체 웨딩홀에서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다. / 뉴스1

◇ “1000만원대부터 4000만원대까지” 천차만별 예식비

조선비즈가 서울 강남·종로·여의도 등에 위치한 일반 예식장 30곳의 내년도 기준 예식비를 조사한 결과 낮게는 1000만원대부터 4000만원대까지 가격대가 천차만별이었다. 예식비는 크게 ▲홀 대관료 ▲홀 꽃장식 비용 ▲1인당 식비 ▲그 외 부대비용(연주, 사회, 축가, 사진 촬영, 메이크업, 폐백 등) 등으로 구성된다. 개별 항목 모두 예식장에 따라 차이가 컸고 같은 예식장이어도 신혼부부들이 선호하는 시간대 예식일수록 대관료가 비쌌다. 가령 주말 아침·낮 시간 예식비를 저녁보다 10~20% 높게 책정하는 식이다.

조사한 예식장 대부분이 코로나 이전보다 예식비를 인상했다. 서울 강남구의 A 예식장은 2019년 400만원이었던 홀 대관료를 500만원으로 올렸다. 영등포의 B 예식장은 대관료는 300만원으로 유지했지만 꽃 장식 가격을 700만원에서 800만원으로 올렸고 식대도 1인당 6만5000원에서 8만원으로 인상했다. 중구의 C 예식장은 대관료를 2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꽃 장식값도 50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식대도 4만원에서 5만원으로 올렸다. 웨딩홀 관계자들은 공통적인 가격 인상 이유로 인건비와 생화·음식 원부자재 가격이 올랐다는 점을 들었다.

그래픽=정서희

예식장을 비롯한 웨딩업계에서 서비스 공급자와 구매자인 예비 신혼부부의 관계는 신혼부부들이 일방적인 약자가 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식장부터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 대여·메이크업), 프러포즈, 예물·예단 등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업체 간 가격과 서비스를 비교·검증하는 대신 업체들의 요구에 끌려다닌다. 가격이 어떻게 책정되는지도 모르고, 서비스에 불만이 생겨도 후기를 통해 평가하는 당연한 구매 과정이 이뤄지지 않는다. ‘일생에 한 번뿐인 행사를 잘 치러야 한다’는 강박감이 정보의 비대칭을 눈감게 만든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뤄지는 과시성 인증 문화도 결혼 과정에서의 과다한 지출을 부추긴다. 남들은 이렇게 화려하게 하는데 나만 초라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일종의 고립공포감(FOMO·Fear of Missing out,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작용하는 것이다. 지난해 결혼식을 올린 윤정민(34) 씨는 “인스타그램이 모든 걸 망친다”며 “결혼반지를 맞추는데 프러포즈 링을 왜 따로 사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앞서 결혼한 (신부) 친구들이 호텔에서 프러포즈를 받고 반지를 따로 선물 받은 인증샷을 올린 걸 보고 부럽다고 얘기하니 안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예식장은 숫자 자체가 줄어든다는 점도 배짱 영업을 가능케 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국세청에 따르면 예식장 수는 2018년 951개에서 작년 750개로 21% 줄었다. 이 중에서 시내 중심가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고 신랑·신부가 돋보이면서 하객들이 만족할 만한 내부 인테리어,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예식장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예비 신혼부부들은 예식장 계약에 앞서 사전 견학 신청을 하는데, 인기 있는 예식장의 경우 하루 수십 통 전화를 걸어야 겨우 연결이 될 정도다.

업체들이 마치 첩보 작전을 하듯 예식비를 철저하게 대외비로 유지하는 것도 예비 신혼부부들의 선택을 어렵게 만든다. 통상 예식장 운영업체들은 사전 견학 신청을 통해 직접 대면 미팅을 하러 오는 사람들에게만 구체적인 가격 정책을 공개하고 있다. 이때 견적서에 명시한 가격에서 협상을 통해 추가 할인을 해주는데, 어떤 기준으로 어떤 항목이 할인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신혼부부들이 대부분이다. 이달 서울 영등포의 한 예식장에서 결혼하는 김인선 씨는 “식대를 제외한 예식비가 1350만원에서 580만원으로 할인 됐는데 어디서 어떻게 금액이 줄어드는지 모르고 계약서에도 나와있지 않다”며 “결혼식 비용은 검색해도 잘 안 나오고 꽁꽁 숨겨 놓아서 상담해야만 알려주는 정보가 많아 투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도 예식비와 관련한 정보를 얻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십만명이 가입한 포털 사이트 커뮤니티에서도 개별 예식장의 상세 견적서는 물론 총비용을 공개하는 사람은 없다. 업체에서 비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후기를 남겨야 총 비용 일부를 돌려주는 할인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동종업체 간 가격을 비교하고 서비스를 경험한 뒤 검증하는 시스템 자체가 정착될 수 없는 환경이다. 작년 인천에서 결혼한 김경민 씨는 “인터넷 쇼핑을 할 때도 가격이 다 공개돼 있는데 예식장은 투어를 잡고 가야만 견적을 알려준다”며 “계절별로, 날짜별로, 시간대별로 대관료와 식대가 전부 제각각이라서 도대체 어떻게 책정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코로나 때 적자 보던 예식장 운영사들, 일제히 흑자 전환

코로나 기간 정부의 집합 금지 조치로 예식이 줄줄이 취소되며 매출, 영업이익 모두 급감했던 예식장 운영업체들은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그래픽=정서희

서울 강남구와 성동구 등에서 예식장을 운영하는 D사는 작년 매출이 전년 대비 56% 늘어난 335억원을 기록했고 2021년 98억원의 영업 적자를 냈다가 작년 흑자 전환했다. 또 다른 서울의 예식장 업체 E사도 매출이 58% 증가해 637억원을 기록했고 169억원에 달하던 영업손실이 41억원으로 급감했다. 예식장을 포함한 컨벤션센터를 운영하는 F사는 매출이 2019년 514억원에서 2020년 309억원으로 줄었다가 작년 494억원으로 뛰었다. 2020~2021년 적자 전환했다가 작년 흑자로 돌아섰다.

이렇다 보니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예식장 운영업체들이 코로나 기간 봤던 손실을 메우기 위해 무리하게 가격 인상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3월 서울 강남구에서 결혼한 신지호 씨는 “물가 인상을 감안해도 서비스 수준을 높인 것도 아니고 총비용을 20%씩 올리는 업계가 또 있을까 싶다”며 “코로나 기간 정상 영업을 못 했던 항공사가 티켓값을 인상하듯 예식장 운영업체들도 3년간의 손실을 보전받으려 배짱 영업에 나서는데도 아무도 감시하거나 말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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