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부활’ 순직 조종사, 엄마도 국민도 울었다
16년이 지났어도 아들은 27세 청년 모습 그대로였다. “엄마, 인철이요. 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요.” 생전과 다름없는 아들의 표정과 말투에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인철아, 보고 싶었어.”
국방홍보원은 5일 인공지능(AI)으로 복원한 고(故) 박인철 소령(추서·공사 52기)이 어머니 이준신씨를 만나는 유튜브 영상을 공개했다. 박 소령은 2007년 서해 상공에서 KF-16 요격 훈련 중 사고로 순직했다. 그는 1984년 F-4E를 몰고 팀스피릿 훈련에 참여했다가 순직한 고 박명렬 소령(공사 26기)의 외아들이다.
아버지의 꿈을 마저 이루겠다며 공군사관학교를 거쳐 조종사가 된 아들이 순직한 나이는 27세. 국립서울현충원 아버지 묘 앞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한 뒤 50여 일 만에 사고를 당했다. 서른한 살이던 남편을 잃고 네 살 때부터 홀로 키워낸 외아들이었다. 아들 박 소령은 집안 반대에도 공사에 진학했다. 그 아들마저 남편의 뒤를 따르자 이씨는 평생을 그리움 속에 살았다.
촬영은 현충일 전날인 지난달 5일 진행됐다. “조종사 훈련을 받으면서 제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엄마도 잘 아시잖아요. 저는 원하던 일을 해서 여한이 없어요.” 화면 속 박 소령은 이렇게 말했다. AI가 되살린 아들의 얼굴에 이씨는 조금 놀란 표정이었지만 이내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어머니의 얼굴은 그리움으로 사무쳤다. 이씨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살아있는 아들과 대화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얼마 전 사별한 아내를 AI로 재회하는 남편의 사연을 접한 이씨는 ‘우리 인철이를 저렇게라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본지 통화에서 말했다. AI는 고인이 생전 남긴 음성·영상·사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부활’을 시도한다. 국방부 정신전력문화정책과 이선미 중령은 “부자(父子) 파일럿 순직은 2007년 당시엔 화제였지만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니 또 잊히고 있더라”며 “이들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생각에 AI 복원을 기획했다”고 했다.
촬영 현장엔 박 소령과 공사 시절 ‘삼총사’였던 동기 김상훈·이두원 중령도 동참했다. 박 소령이 동기들에게 “그땐 뭐가 그리 재밌었는지 매일 웃었지”라고 하자 40대 중령들은 미소 지었다. 10분 남짓한 재회는 이들에겐 너무 짧았다. 다시 헤어질 시간. “갑작스럽게 인사도 못 드리고 가서 속상했는데 이렇게라도 만나서 좋았어요.” “인철이가 짧게 엄마 곁에 있다가 갔지만 엄마 아들로 같이해줘서 행복하고 고마웠어.” 박 소령이 “사랑해요, 엄마”라고 하자 이씨는 “엄마도 많이 사랑해”라고 했다.
박명렬·박인철 부자는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에 나란히 누워 있다. 2009년 ‘유용원의 군사세계’와 한국국방안보포럼 회원들이 성금을 모아 공사 캠퍼스에 부자 파일럿을 추모하는 ‘기인동체’(機人同體) 흉상을 세우기도 했다. 현충원 두 무덤엔 ‘호국부자의 묘’라는 비석 아래 박명렬 소령 순직 후 부모가 새긴 비문(碑文)이 있다.
‘그리워라 내 아들아 보고 싶은 내 아들아/자고 나면 만나려나 꿈을 꾸면 찾아올까/흘러간 강물처럼 어디로 가버렸나.’ 세월이 흘러 AI의 도움으로 그 한(恨)은 티끌만큼이나마 풀리게 됐다. 이씨는 “마음이 아파 촬영을 승낙하기도 쉽지 않았다”며 “그래도 멋진 내 아들, 이렇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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