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수의 골프 오디세이 <139>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과 이스미골프클럽] 일본 발판 삼아 성장한 한국 골프…이제는 일본서 대회 연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2023. 7. 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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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5일부터 18일까지 일본 지바현 이스미골프클럽(파73)에서 한국프로골프(KPGA)투어와 일본프로골프투어(JGTO)가 공동 주관한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총상금 10억원)이 열렸다. 이 대회에는 KPGA 코리안투어 시드 우선순위 60명, 일본투어 시드 우선순위 60명, 지난해 이 대회 상위 입상자 5명, 추천 선수 14명 등 총 149명이 나섰다.

이 대회는 일본 땅에서 한국의 하나금융그룹이 대회를 주최하고, 미국과 일본에서 25개 골프장을 운영하는 유신일 한국산업양행 회장이 자신이 보유한 골프장 이스미골프클럽을 대회 코스로 무료 제공해 열린 기념비적인 대회였다. 지난해 신한금융그룹이 KPGA 코리안투어, 일본프로골프투어, 아시안투어 세 개 투어 공동 주관으로 일본 나라현 고마컨트리클럽에서 신한동해오픈을 연 데 이어 한국 기업이 2년 연속 일본에서 골프 대회를 연 것이다.

골프 불모지였던 한국의 골프 선수들은 일본을 발판 삼아 세계무대로 도약했다. 한국 남자 골프의 개척자 최경주(53)는 1999년 일본에서 2승을 거두고 그해 겨울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해 2000년 한국 선수로는 처음 PGA투어 무대를 밟았다. 2009년 PGA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에게 역전승을 거두고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한 양용은(51)도 일본투어에서 4승을 거두고 PGA투어에 진출했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 마스터스 무대를 밟은 한장상(82)부터 일본투어에서 두 차례 상금왕을 차지한 김경태(37), 일본투어에서 꿈의 58타 기록을 세우고 PGA투어에 진출한 김성현(25)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한국 선수가 일본에서 활약했다.

여자 선수들은 일본투어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한국 여자 프로골퍼 1호인 고(故) 구옥희 전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회장을 시작으로 수많은 선수가 일본에 건너가 승전보를 전했다. 안선주(36·28승), 신지애(35·27승), 전미정(41·25승), 구옥희(23승), 이지희(44·23승) 이보미(35·21승) 등 20승 이상 거둔 선수만 6명이다.

한국 골프의 공습에 일본 열도가 위기감을 토로한 적도 있다. 2010년과 2011년 일본 남녀 골프 투어 상금왕을 모두 한국 선수가 차지했다. 2010년엔 김경태와 안선주가, 2011년엔 배상문과 안선주가 상금왕에 올랐다. 당시 일본 교토통신은 배상문이 일본투어 상금왕을 확정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한국 선수 2년 연속 1위, 일본투어는 발판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주변 국가의 강호들이 모여드는 일본투어의 환경은 자랑해도 좋겠지만, 간단히 (미국투어로 가는) 발판이 되는 것 같아서 착잡하다”며 일본 골프계의 답답한 심경을 드러냈다. 일본 골프계에서는 한국 선수들의 강세로 스폰서들의 후원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았다.

1 유신일 한국산업양행 회장은 2005년 이스미골프클럽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 무료로 코스를 제공했다. 사진 민학수 기자 2 양지호와 아내 캐디 김유정. 사진 KPGA

하지만 한국이 경제성장을 이루고 골프에 대한 투자가 커지면서 오히려 한국 기업이 일본에서 대회를 여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선수들 반응은 좋았다. 베테랑 박상현(40)은 “일본에서 한국 기업이 대회 타이틀 스폰서를 맡아 대회를 여는 모습은 드문 일이었다”며 “한국 선수에게 자긍심을 주고 일본 선수들도 코리안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과 함께 경기할 수 있어 반갑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 고 했다. 일본의 장타왕인 가와모토 리키는 “한국 선수들은 샷도 좋고 비거리도 엄청나다. 처음엔 의사소통이 잘 안됐지만, 영어와 일본어, 한국어를 섞어가며 날씨와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경기했다”며 “코리안투어에 초청받거나 참가할 기회가 있으면 참가하고 싶다”고 반겼다.

국내 기업이 일본 시장 개척을 위한 스포츠 마케팅 차원에서 골프 대회를 활용하는 사례도 드러났다. 김영주 하나은행 ESG 기획부장은 “이번 대회는 2008년 한중 투어 KEB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을 계승한 대회로 올해는 JGTO가 참가해 한·중·일 경계를 허무는 아시아 최고의 메이저대회를 목표로 재출범했다”며 “앞으로도 스포츠를 통한 동북아시아의 우정과 화합에 도움 되고 싶다”고 밝혔다. 하나은행 신광호 과장은 “도쿄를 포함해 오사카와 후쿠오카 등 일본 내 대도시에 지역별 거점 점포를 열어 한국계 기업뿐만 아니라 현지 기업을 상대로 투자금융 자산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고 전했다.

선수들에겐 서로 장점을 배울 기회가 된다. 지난해 신한동해오픈 이후 9개월 만에 일본에서 대회를 치른 고군택(24)은 “일본 선수들과 경기해 보니 쇼트게임이나 퍼팅 등 만회 측면에서 배울 점이 많다. 경기 속도도 빨라 집중력과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 된다. 다음에 일본에서 대회가 열리면 또 참가할 것”이라고 했다.

코리안투어 장타왕 정찬민(23)과 1·2라운드를 같은 조로 경기하며 한일 장타자 대결을 벌인 가와모토는 “정찬민과는 동갑내기여서 대화를 많이 나눴다. 비거리가 정말 어마어마하더라”며 “9월 한국에서 열리는 신한동해오픈에 참가해 또 한 번 선의의 경쟁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한 양지호(34)는 “한국과 일본 선수 모두 한일전을 하면 좀 더 집중하게 되고 서로 우정을 쌓을 기회도 된다”며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 이스미골프클럽은 투어 상금 액수 10억원가량에 해당하는 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어 코스 수준에 맞추기 위해 코스를 개선하고 대회 기간 영업 비용을 포기했다.

이번 대회는 동·남·서 등 세 개 코스 27홀에서 전장이 긴 홀들을 섞어 18홀 코스로 바꿨다. 코리안투어 사상 최초로 파73으로 세팅됐다. 연습 그린도 네 개가 있고, 250야드에 이르는 드라이빙 레인지도 있다. 드라이빙 레인지 옆에는 쇼트게임과 벙커 연습장이 따로 구비돼 있다. 대회를 위해 특별히 만든 건 아니고 기존 이용객에게도 무료로 개방하던 곳이다.

이스미골프클럽은 유신일 한국산업양행 회장이 2005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유 회장은 골프 카트와 골프 코스 관리 장비로 사업을 시작해 일본에서 10개의 골프 코스를 인수했고, 미국에서도 PGA웨스트를 비롯해 15개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한장상 프로를 비롯해 많은 한국 선수가 일본에서 실력을 키우고 상금을 벌었다”며 “한국의 경제력도 크게 성장한 만큼 한국 기업들이 대회를 연다면 일본인에게도 많은 공감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기업이 일본에서 대회를 연다면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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