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심(心心)파적 <41>] ‘60년 전 청년 시절 아버지의 일기장’ 일기의 심리학

김진국 2023. 7. 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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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3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고향 집을 정리할 때, 나는 아버지의 청년 시절 일기장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꾸준히 일기를 쓰셨던 것으로 아는데, 어쩐 일인지 이 한 권만 남아있다. 겉표지는 옛날 조선시대 문집처럼 노란 표지에 실끈으로 묶고 한자로 ‘일기(日記)’라고 명기했다. 역시 한자로 ‘단기 4293년도 경자년’이라는 글과 함께 ‘00시 00동 000번지’라는 당시 주소가 부기되어 있다.

속지는 한지는 아니었지만, 면마다 날짜와 쪽수를 매길 수 있게 되어 있어 일기장으로 사용하신 것 같았다. A4 용지 크기의 속지에, 하루에 한 면을 원칙으로 펜글씨로 단아하게 써 내려갔다. 아버지의 청년 시절이 솔직 담백하게 국한문 혼용체로 기록되어 있다. 특이하게 일기장 속에는 아버지의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성적표가 ‘통신부’라는 이름으로 꽂혀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아버지를 일러 ‘대단히 양순하며, 각 교과 성적이 우수하여 학교의 모범생이 됨’이라고 평가했다.

김진국문화평론가, 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후진국 청년의 취업 분투기

단기 4293년이면 서기로는 1960년이다. 이때는 아버지가 군 복무를 막 마치고 나와 취업을 준비하던 20대 중반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당시 결혼을 먼저하고 형을 낳아 기르던 중에 입대했다고 했다. 그해 연말에 00회사에 취업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말하자면 이 일기는 일제 식민 지배와 전쟁의 아픔을 직접 겪은 한 가난한 후진국 청년의 ‘1년간의 취업 분투기’라고 할 수 있겠다.

1960년 8월 14일 아버지의 일기는 짤막하다. “꿈을 늦게까지 꾸었다. 해몽 못 할 꿈. 길몽이기를 기원한다. 한낮에도 선선한 게 가을 날씨 같다. 더워야 할 계절에 너무 선선하니 곡식에 피해가 클 것 같다.” 취업이 여의찮아 잠자리까지 설치는 불면의 밤도 많았을 텐데, 농민들 농사 걱정까지 하는 청년의 마음 씀씀이가 아름답다.

여기저기 취업지원서를 넣는 중에도,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신세를 지지 않고 처자식을 먹여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단기 일자리라도 구해보려는 젊은 가장의 노력은 눈물겹다. 그런 와중에도 1960년 6월 19일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방한, 그해 11월 미 대통령 선거에서 존 F. 케네디가 당선된 사실과 그에 대한 논평에서부터 단오, 하지 혹은 6·25 전쟁 10주년, 8·15 광복절 등 주요 국경일이나 절기마다 본인의 소회를 솔직하게 적고 있다.

1960년 8월 15일 일기의 일부다. “해방 15주년! 왜놈들의 쇠사슬에서 자유를 되찾은 날! 어언 15년이 흘렀구나…. 그러나 조국이 양단된 채 통일을 못 이룬 것은 민족의 슬픔이요, 오랜 숙원이다. 이날을 당하여 다시 한번 우리의 각오를 새롭게 하며 조국의 앞날에 행운을 기원한다.”

지금은 취업을 준비하는 일개 청년에 불과하지만, 원대한 꿈을 안고 살아가는 우국지사 같은 모습도 보인다. 그날그날 경험한 일들을 펜을 들고 잉크를 찍어가며 일기를 써 내려가는 청년 시절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며 일기장을 읽어 내려가노라니, 어떤 날에는 훈훈한 미소가 지어지고, 어떤 날에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발비 얼마, 양말 세 켤레 얼마, 쌀 한 가마 얼마 하는 일기 속 기록은 당대 생활사 자료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디테일에 강한 리더, 이순신의 ‘난중일기’

아버지의 일기는 내 개인적인 인연과 관련된 매우 사적인 기록물이지만,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는 국보 제76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귀중한 사료다. 난중일기는 워낙 유명해서 많은 사람이 애독해 왔는데, 이를 가장 눈여겨보고 이를 바탕으로 베스트셀러 소설 ‘칼의 노래’를 집필한 사람은 소설가 김훈이다.

김훈은 말한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중에 난중일기를 남겼다. 그의 기록 정신은 치열하다. 그는 빠뜨리지 않고, 그는 중언부언하지 않았다.” 김훈은 충무공의 글쓰기를 이렇게 평가한다. “이순신의 문장은 수사를 배제한다. 그는 매일매일 바다의 날씨를 꼼꼼히 살폈고 적과 아군의 형편을 기록했다. 그의 글은 무인다운 글쓰기의 전범이라 할 만하다.”

충무공이라는 16세기 조선에 살았던 한 해군 제독의 일기가 작가 김훈의 혼을 쏙 빼놓은 듯하다. 그는 충무공의 글쓰기에 대해서 여러 장소에서 여러 차례 말했다. “난중일기의 놀라운 점은 무수한 디테일이었는데, 이를 통해 그의 리더십이 정확한 숫자, 사실에 입각한 전략을 구상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난중일기는 사상서가 아닌 전쟁 중의 기록인데도, 인간적인 번뇌와 그를 이겨내는 과정이 잘 쓰여있다.”

1592년 2월 4일 난중일기 내용이다. “동헌에 나가서 공무를 본 후에 북봉의 연대(煙臺)를 지은 곳으로 올라갔다. 지은 곳이 매우 훌륭해서 무너질 리가 만무했다. 이봉수가 부지런히 일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루 종일 구경하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내려왔다. 해자 구덩이를 순시했다.” 김훈의 말처럼 중언부언하지 않고 무미건조할 정도로 간결하다.

하지만 1597년 4월 13일 모친의 부고를 접한 충무공은 슬픔을 숨기지 않고 이렇게 썼다. “조금 있다가 종 순화가 와서 어머님의 부고를 전했다. 뛰쳐나가 뛰며 뒹구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하다. 곧 해안으로 들어가니 배가 벌써 와 있었다. 길에서 바라보는,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이야 어찌 이루 다 적으랴.”

문제 표현하는 일기, 감정 발산의 출구

“신화는 집단의 꿈이며, 꿈은 개인의 신화다.” 심리학자 카를 융은 자신의 이 말을 검증하려는 듯 생전에 5만 개 이상의 꿈을 분석했다고 한다. 카를 융을 사숙(私淑)하던 청년 시절의 나는 매일 밤 꾸는 꿈을 기록하는 일기를 쓴 적이 있다. 나는 매일 한 쪽씩 쓸 수 있는 다이어리를 구입해서 꼬박 3년간 ‘꿈 일기’를 썼다. 나처럼 나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한 수단으로 꿈을 분석하기 위해 꿈을 토대로 일기를 쓰는 사람이 있듯이, 사람들이 일기를 쓰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기를 쓰는 것은 정신 건강에 좋다고 심리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첫째, 타인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고 분노와 좌절 같은 강렬한 감정을 발산할 수 있다. 자신의 경험을 어떤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안전한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치유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글쓰기에도 도움 된다. 엄마 배 속의 태아 시절부터 무덤에 묻히기까지 철저하게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스트레스받지 않고 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일기라는 비밀이 보장되는 은밀한 도구를 잘 활용하면, 즉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글쓰기 자체에 집중하면 사고 과정을 개선할 수도 있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도 있다. 셋째, 사건과 활동을 기록하는 일기는 성공을 기록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일기를 쓰는 과정에서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성찰할 수 있고, 미래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배울 수 있다. 특별히 긍정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회고하는 것은 자존감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어떤 심리학자의 말이다. “일기 쓰는 행위는 삶의 본질을 담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자아로 나아가는 관문이다. 일기를 쓰는 것은 우리가 막연한 불안, 스트레스, 우울감을 해소하는 데 분명히 도움 된다.” 그의 말은 어떤 문제를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떤 형식으로든 문제를 표현하는 것인데, 일기를 쓰는 것은 이러한 ‘표현적 글쓰기’의 대표라는 것이다.

나는 요즘 종이로 된 일기장에 따로 일기를 쓰지는 않는다. 휴대전화 속의 잘 알려진 앱을 이용한 간단한 메모 형식의 일기를 쓰는 정도다. 더구나 휴대전화에 내장된 전자펜을 이용해 필기하는 기능도 있으니 불편함도 없고, 검색 기능까지 있어 정말 편리하다.

그래도 60여 년 전 아버지의 체취가 담긴 일기장을 읽노라니, 국보급 유물을 발굴한 고고학자 같은 두근거림이 있었다. 서재 한구석으로 잠시 밀려난 만년필이 꽂힌 다이어리를 다시 한번 만지작거린다. 다시 종이 일기를 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어나는 내 마음속의 전쟁을 정리하는 일기는 그야말로 나만의 난중일기가 아니고 무엇이랴. 여름날의 오후에 더위를 식히는 시원한 비가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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