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특별하게 앉혀놓고 죽인 것일까 [본헌터③]

고경태 기자 2023. 7. 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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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논픽션 : 본헌터③] 나는 A4-5다
키 165cm에 18~22살, 군용 버클과 군화, 그리고 주동자급 대우
나를 처음에 마주한 사람들은 표정까지 보일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살아있는 사람처럼 쪼그려 앉아있었기 때문일까. 실의에 빠진 사람처럼 고개를 처박고 있었기 때문일까. 사진 진실화해위 제공
*편집자 주: ‘본헌터’는 70여년 전 국가와 개인 사이에 벌어진 집단살해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이야기다. 아무데나 버려져 묻힌 이들과, 이들의 행방을 추적하며 사라진 기억을 찾아나선 이들이 주인공이다. 매주 2회, 월요일과 수요일 인터넷 한겨레에 올린다. 극단 신세계가 글을 읽어준다.

나는 A4-5다.

왜냐고 묻지 마라. 붙인 사람 마음이다. 처음으로 사람의 조각이 발견된 날, 그 자리에 폴대가 꽂혔다. 나와 동료들이 묻혔던 곳의 라인이 포착된 뒤, 폴대가 있는 곳부터 1m 단위로 구역이 나뉘었다. A1구역에서 나는 4m 북쪽으로 떨어진 A4구역에 있었다. 그리고 서쪽에서부터 다시 번호가 매겨졌다. 내 앞에 누워있던 4명의 동료는 각각 A4-1, A4-2, A4-3 A4-4가 되었다 나는 맨 끝에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A4-5다.

나를 처음에 마주한 사람들은 표정까지 보일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살아있는 사람처럼 쪼그려 앉아있었기 때문일까. 실의에 빠진 사람처럼 고개를 처박고 있었기 때문일까. 살가죽이 모두 벗겨진 육탈된 해골에서 어떻게 표정이 보인다는 말인가. 억울해 보인다고 했다. 슬픔과 절망이 뼈에서도 투시된다고 했다. 웃기지 마라.

나와 동료들이 발견된 곳은 길이 30m, 폭 7m의 야산 기슭이었다. 깊이와 폭이 각각 50㎝인 교통호가 남북으로 이어졌다. 2~3m 간격으로, 돌출된 참호가 동쪽과 서쪽에 있었다. 나는 동쪽으로 튀어나온 참호 안에서 발견되었다. 내 머리는 북서쪽을 향해 있었다. 산 정상을 등진 상태였다. 두 손은 모인 채였다. 그 위에 통신선이 감겨 있었다.

다른 동료들은 죄다 나를 마주 보고 있다가 눈을 감은 것 같다. 그들은 두 줄이었다. 그들의 손도 통신선으로 묶였다. 옆으로 누운 8자 모양의 줄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연결된 각 통신선의 길이가 50㎝였다. 나와 동료들은 손이 묶여 이곳에 끌려왔다. 산속 깊이 들어오지도 않았다.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도로에서 50m 거리도 안 된다. 그때는 자동차가 안 다녔겠지. 도대체 왜 손이 묶인 채 여기에 왔는가. 왜 나만 방향이 달랐는가. 왜 나만 쪼그려 앉았는가. 추리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나는 특별했다. 73년 전 이 산에 끌려온 인물 중에 가장 먼저 처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중요한 사람이었다. 놈들에게 미움을 살 짓을 했던 것일까. 놈들은 나를 주동자급이라고 판단했던 것일까. 그래서 방향을 달리해 나만 참호 안에 특별하게 앉혀놓고 죽인 것일까.

숨을 멈추기 전 내 손목을 강하게 조이던 통신선. 73년 동안 주검이 되어서도 나를 억압한 이 굵은 통신선. 사진 주용성 작가 제공

내가 쪼그려 앉아있던 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물건들이 나왔다. 미국제 M1 소총 탄피 5개가 나왔다. 북한제 모시나강 소총 탄피 2개가 나왔다. 분류가 안 되는 탄피 2개도 나왔다. 조각난 탄창 1개도 나왔다. 나를 분석한 전문가는 무릎과 가슴에 총을 맞은 것 같다고 했다. 허벅지와 정강이가 만나는 연결 부위 위아래에서도 총탄 자국이 많이 발견되었다. 머리뼈에서는 총탄 자국이 나오지 않았다. 나의 몸통은 무차별 난사 당했다. 갈비뼈와 등뼈가 파손되었다. 발가락뼈도 끝이 부서졌다. 그럼에도 내 뼈는 206개가 다 나왔다. 부분적으로 파손되었을 뿐이다. 이렇게 온전한 형태로 노출되고 수습된 경우는 전례가 없다고 했다.

흙 덕분이었다. 내 육신을 채운 흙은 고운 모래질이었다. 습기가 덜했고, 물기가 잘 빠졌다. 내가 쪼그려 앉아있던 곳 위의 땅은 노란색에 가까웠다. 이 구역의 땅이 다 그렇지는 않았다. 나를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에 있던 동료들은 흐르는 물에 뼈가 많이 훼손됐다. 흙을 털 때 뼈가 부스러져 없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206개의 뼈가 모두 나온 동료는 20명이었다. 나머지는 절반 이상의 뼈가 부식되거나 사라졌다. 허벅지나 정강이만 나온 동료들도 있었다.

쪼그려있던 나는 일어서는 대신 206개로 분리되었다. 이렇게 온전한 형태로 노출되고 수습된 경우는 전례가 없다고 했다. A4-6은 존재하지 않는다. 발굴단원들이 실수로 5를 6으로 바꾸어놓았다. 사진 진실화해위 제공

내 자리에서는 사각의 군용 혁대 버클이 나왔다. 손바닥보다 작은 옷가지가 나왔다. 구멍이 두 개인 단추가 세 종류가 나왔고, 무궁화 같은 꽃무늬 단추 2개도 나왔다. 단추를 끼우는 옷을 두 개 이상 입었다는 이야기다. 고무로 된 밑창이 발견됐는데 군화 신발 조각이라고 했다. 군화의 줄을 끼우는 구멍 두 개도 나왔다. 고무창 양쪽을 헝겊으로 댄 북한 인민군 군화(쯔게다비)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내가 특별했을 가능성은 더더욱 커졌다. 군용 버클과 군화라니. 왜 나는 그걸 허리에 차고, 발에 신었던 것일까.

나의 몽타주를 그려본다. 머리뼈 계측 자료에 따르면, 얼굴이 넓적하고 코는 길쭉하고 좁다. 눈은 찢어졌다. 코가 길쭉하다는 것은 남방계통이 아닌 북방계통이라는 것을 말한다. 남방형은 코가 옆으로 넓적하고 위아래가 짧다고 한다. 북방계는 얼굴이 타원형으로 길고 정수리가 돌출해 고구마형 얼굴이라 부른다고 했다.

나 A4-5에게서 나온 유품들이다. M1탄피와 단추, 버클, 옷 조각 등이 나왔다. (A4-6은 존재하지 않는다. 발굴단원들이 실수로 5를 6으로 바꾸어놓았다) 사진 진실화해위 제공

나의 나이는 최소 18살, 최대 22살로 판정되었다. 아래턱뼈에서 이빨이 솟아난 정도와 닳은 정도, 머리뼈의 이음새, 사지뼈 골간의 붙은 정도를 종합하여 감식한 결과다. 골반과 머리뼈, 사지뼈 그리고 엉치뼈의 특징으로 보건대, 나는 또한 남자였다. 내가 아직 많은 일을 하지 않은 나이라는 걸 허벅지뼈가 증명했다. 허벅지뼈의 고관절 부위가 좌우로 넓고 앞뒤로 좁으면 일을 많이 한 상태라고 했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치아 상태가 고르고 나쁜 편이 아닌 걸로 보면 영양 상태도 좋다고 했다. 허벅지뼈를 기준으로 키는 165㎝로 계측되었다. 1950년대 한반도 이남 지역 20대 남성의 평균 키는 161~163㎝였으니 나는 큰 편에 속한다. 한국전쟁 때 미국의 영현부대가 함수방식에 근거해서 주검의 키를 계측하던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한지에 싸인 채 플라스틱 통에 담겼다. 명찰을 달고 성재산 입구 컨테이너에서 대기를 했다. 사진 고경태

결론적으로 나는 건강한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키도 크고 영양 상태도 좋은 걸로 보면, 나는 빈한하지 않은 집안에서 괜찮은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앞길이 창창한 꽃다운 청춘이었다. 그 청춘은 피어나기도 전에 이 산기슭에 파묻혔다. 그 시점은 언제였던가.

굴삭기를 앞세워 나를 찾으려 산에 왔던 사람들은 옛날 자료를 뒤졌다. 나와 동료들의 가족을 수소문했다. 살아남은 이들의 증언을 청취했다. 우리들 곁에서 쏟아져 나온 다양한 유품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그날을 1950년 10월의 하루로 추정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이제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글쓴이 소개
사회부 기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맡고 있다. <유혹하는 에디터>, <굿바이 편집장>, <대한국민 현대사>라는 책을 썼다. 2000년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관한 미국 비밀문서를 최초 보도했고 <베트남전쟁 1968년 2월12일> 한국어판과 일본어판, 베트남어판을 냈다. 베트남전에 이어 이번엔 한국전쟁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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