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층 아파트도 뚝딱 조립…‘해체 이동’까지 가능한 모듈러주택

최종훈 2023. 7. 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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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혁신 아이콘 급부상
게티이미지뱅크

모듈러 주택은 혁신 아이콘이 될 수 있을까?

대표적인 스마트건설기술의 하나인 모듈러 공법을 적용한 모듈러주택에 대한 업계와 시장의 관심이 높다. 모듈러주택은 내진에 강한 철골구조체에 벽체, 창호, 전기배선, 배관, 욕실, 주방기구 등 자재와 부품의 70~80%를 공장에서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설치하는 주택을 말한다.

이런 주택 생산방식은 공기를 단축하고 건축 폐기물을 최소화할 수 있는데다, 에너지 사용 및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소음·진동·분진 등 환경문제도 비껴갈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또 건설업의 당면 문제로 떠오른 기능인력 고령화와 숙련공 부족 등에 대응할 수 있고 건설 현장의 고질적 문제인 안전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정부가 공공주택 사업에 모듈러주택을 도입하는 실증사업을 벌이고 있고 건설업계도 앞다퉈 모듈러 관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까닭이다. 국회에서도 모듈러주택 건축 지원을 위한 관련법 논의가 진행 중이다.

■ 13층 아파트에 모듈러공법 첫 적용

최근 모듈러 산업계에서는 시장을 선점하려는 대형 건설사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달 27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에 모듈러 아파트인 ‘용인 영덕 경기행복주택’을 준공했다.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발주한 이 행복주택은 13층 높이에 총 106세대로, 국내 모듈러주택 가운데 최고층이다. 건축법에 따라 13층 이상 건물은 3시간 이상의 내화 기준(화재시 버틸 수 있는 시간)을 갖춰야 하는 등의 이유로 그동안 모듈러 주택은 12층을 넘지 못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처음으로 이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012년부터 모듈러 건축에 대한 연구개발과 시공 역량 확보를 위해 노력해왔다”고 밝혔다. 일찌감치 모듈러 건축 기술에 투자한 터라 공법 등에 대한 역량이 다른 건설사에 앞서 있다는 취지다. 현재 이 회사는 서울 구로구 일대에서 174세대 규모의 행복주택을 모듈러 공법으로 짓는 ‘가리봉 시장부지 복합화 민간참여 공공주택사업’에도 참여 중이다. 12층 높이인 이 행복주택이 완공되면 서울시내 최고층·최대 규모 모듈러주택이 된다.

그래도 국내 모듈러 건축의 선두주자로는 포스코이앤씨(E&C·옛 포스코건설)가 꼽힌다. 2003년 서울 신기초등학교 부속동을 시작으로 평창동계올림픽 기자단 숙소(미디어 레지던스), 엘에이치 백령도 공공실버주택 등 국내 업체 가운데 가장 많은 모듈러 사업 실적을 보유하고 있어서다. 최근 국내 최고층(12층) 모듈러 기숙사인 광양 기가타운을 준공했다. 포스코이앤씨의 자회사 포스코에이앤씨(A&C)는 지난해 11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국내 최대 규모 모듈러주택사업인 ‘세종 6-3 생활권 통합공공임대주택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포스코그룹 계열사들은 역할을 분담한 원팀으로 뭉쳐 모듈러 시장을 공략한다. 포스코이앤씨가 시공능력을 바탕으로 공공·민간 모듈러 사업을 수주하면 포스코가 개발한 우수한 강재(철골)를 활용해 포스코에이앤씨가 설계·제작 기술로 모듈러 건축물의 완성도를 높이는 전략이다.

최근 자회사 ‘자이가이스트’를 통해 목조 모듈러주택 시장에 본격 진출한 지에스(GS)건설은 철골 모듈러 기술 개발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달 철골 모듈러의 ‘내화시스템’을 개발해 특허 등록을 마치고, 현장에서 조이는 작업 없이 모듈 간 접합 가능한 원터치형 ‘퀵 커넥터’를 자체 개발해 특허출원과 한국지진공학회 기술 인증서를 받았다. 기존 철골 모듈러에 사용된 석고보드를 이용한 내화 기술은 각각의 독립된 모듈을 제조해 철골에 석고보드로 둘러싸는 방법으로 시공성이 매우 떨어지고, 원가가 많이 들어 상용화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반해 이번에 특허를 받은 공법은 모듈과 모듈이 만나는 하부에 내화뿜칠이 돼있는 내화보드를 부착해 3시간 동안 내화성능을 확보, 고층 철골모듈러 건물 상용화에 한발 다가서게 됐다. 최근에는 경기 용인에 위치한 기술연구소에 철골 모듈러를 설치하고 층간소음, 기밀 등 주거성 향상을 위한 관련 연구도 진행 중이다.

삼성물산은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프로젝트 등 해외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네옴 프로젝트의 ‘더 라인’에 모듈러 유닛 방식의 건물을 배치할 계획인데, 삼성물산은 사우디 현지에서 이에 필요한 모듈러 제작공장을 설립하고 직접 생산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지난 1월 사우디 국부펀드(PIF)와 모듈러 협력을 위한 상세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왼쪽부터) 국내 최고층 모듈러 공동주택 ‘용인 영덕 경기행복주택\

■ 모듈러주택 촉진 위한 제도개선 시급

현재 국내 모듈러 시장은 걸음마 단계다. 한국철강협회가 집계한 모듈러 건축 시장규모(공사비)는 2019년 357억원, 2020년 500억원, 2021년 1767억원, 지난해 1757억원 등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는 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2021년 기준 모듈러주택 시장규모는 약 310억원으로, 전체 주택건설시장의 0.66%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에 반해 유럽·북미 등 해외에서는 이미 전체 건설시장의 약 20~25%를 모듈러 건축이 차지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서민주택 건설물량의 25%는 모듈러주택으로 짓고 있고, 일본만 해도 연간 신축 주택물량의 15% 수준(12만~15만호)이 모듈러주택으로 제작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전문기관 ‘마켓앤마켓’은 글로벌 모듈러 건설 시장은 2020년 823억 달러(약 105조원)에서 2025년 1088억 달러(약 139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 업계에서는 빠르게 증가하는 1~2인 가구의 소형주택 수요에 대응해 신속하게 공급이 가능한 모듈러주택의 성장 잠재력을 주목하고 있다. 해체 이후 이동 설치가 가능하고 90% 이상 재활용이 가능한 철골 구조 활용을 통해 기존 건설방식 대비 탄소배출량을 44% 줄이는 등 건설산업의 혁신을 이끄는 동력도 있을 것으로 본다. 현재 국내 폐기물 발생량 중 건설폐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46%인데, 모듈러주택은 해체 후 6%만 폐기처리된다.

정부는 모듈러주택 확산을 유도하기 위해 용적률, 건폐율, 높이제한을 최대 15%까지 완화해주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현재 소규모 공사가 이뤄지는 모듈러주택의 건축비는 일반 철근콘크리트 공법에 견줘 30% 가량 높아,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업계의 시장 진입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게 국토부의 판단이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정부는 또 올해 말까지 모듈러 공법 등 스마트 건설기술에 대한 원가 산정 기준도 마련할 계획이다. 발주자가 적정 비용을 총사업비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모듈러주택에 대한 인센티브도 필요하지만 새싹기업을 포함한 중소 건설업체들이 모듈러 제작·조립 등 시공실적을 쌓으며 전문건설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K-모듈러 건축 활성화 전략 세미나’에서 ‘모듈러 산업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주제로 발표한 유일한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모듈러 건축 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건설산업기본법상 전문공사인 건축물조립공사의 업무 영역에 모듈러를 포함시키고 모듈러에 가산점을 주는 발주 및 계약제도 개선, 설계·시공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정책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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