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전 가뭄, 이번엔 물난리 “날씨 너무하네”
지난달 30일 전북 김제시 봉남면의 한 고추밭 고랑에는 물이 흥건했다. 장마 초입인데 벌써 홍수 걱정이다. 지난 4월 이곳을 찾았을 때는 최악의 가뭄으로 땅이 바싹 말라 있었다. 농민 김모(81)씨는 “석 달 전까지만 해도 기우제라도 지내야 하나 했는데 이젠 비가 그만 좀 왔으면 좋겠다”며 “도대체 날씨가 왜 이러냐”고 했다.
기후변화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이 심상치 않다. 가뭄과 홍수라는 극단적 강수 현상이 한 해에 동시에 나타나는 등 전례 없는 날씨가 계속 등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호남권은 올봄만 해도 최악의 가뭄으로 6~7월 모내기 물 부족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주 장마가 시작되자마자 곳곳에서 물난리를 겪고 있다. 작년 10월부터 올 4월까지 6개월간 광주·전남 누적 강수량은 205.4㎜로 평년(296.8㎜)의 69% 수준에 그쳤다. 그런데 지난달 25~30일 광주 지역에만 416.5㎜의 비가 퍼부었다. 반년간 내린 비의 두 배 넘는 비가 일주일 만에 내린 것이다. 4~5일 전국에 장맛비가 다시 내리면 남부 지방에 또다시 시간당 50㎜ 이상 강한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됐다. 이 정도면 앞이 보이지 않는 수준이다.
이날 광주광역시 남구의 한 논에선 일주일 전 모내기를 마쳤다는 3~4㎝ 자란 어린 모가 물에 뜬 채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누렇게 썩어 말라붙은 모도 보였다. 농민 박모(74)씨는 “지난해는 가뭄으로 수확량이 평소보다 15~20% 정도 줄었다”며 “올해는 폭우로 농사 망치게 생겼다”고 했다. 4대강 정비 사업을 한 광주 승촌보(洑) 인근 하천은 빗물이 금세 빠져 15~20㎝ 자란 모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물이 빠지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어린 모는 벌써 비 피해를 당한 것이다. 호남권 농민들은 석 달 전만 해도 단비에 “만세”를 외쳤지만 지금은 비가 그만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섬진강 수계 동복댐 저수율은 지난 4월 18.28%로 14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지만 장마 초입인 지난달 29일엔 저수율이 70%를 넘어섰다. 장마가 시작된 25일 저수율(30.8%)이 나흘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높아진 것이다. 시간당 강수량 50㎜가 넘는 집중호우가 기록된 일수는 40년 전(1973~1982년)엔 연평균 12일이었지만 최근 10년간은 연평균 21일(2013~2022년)이 돼 2배 가까이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 피해가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가뭄과 홍수 등 극단적 강수 현상이 더 심화할 것이란 분석이다. 기상청 보고서는 “2026~2050년 한반도 강수량의 변동성이 커져 양극단의 기상 현상이 현재보다 빈번해질 것”이라고 했다. 특히 올해는 엘니뇨 현상으로 남부 지방 폭우가 예상된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온난화가 심해질수록 엘니뇨 같은 현상이 더 강하고 자주 생길 가능성이 높다”며 “강수량이 많아져 홍수 피해가 커지는데 (온난화로) 증발량도 덩달아 증가하면 토양은 더 건조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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