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인생에 정년퇴직은 없다”···마지막 번역 책 내고 별세한 안정효

김종목 기자 2023. 7. 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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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안정효.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 1일 항년 82세로 별세한 번역가 겸 소설가 안정효씨는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모멘토)에서 “글쓰기 인생에는 정년퇴직도 없다. 손가락을 움직여 상상력을 글자로 옮길 기운만 남아 있어도, 글쓰기 활동은 가능하다”고 썼다. “여태까지의 모든 작품을 능가하는 최고의 작품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 걸작을 써야 한다는 오만과 자학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스스로 얻게 되는 홀가분한 자유, 그것은 나이가 터득한 비겁하고도 현실적인 지혜였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예순다섯인 2006년 낸 책이다.

그의 말대로 글쓰기 정년퇴직은 없었다. 그레이엄 그린의 <조용한 미국인>을 번역해 낸 게 올 4월 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번역과 집필에 매달리다 뒤늦게 암을 발견했다고 한다.

고인은 기자였다. 서강대 영문과 졸업 한 해 전인 1964년부터 ‘코리아 헤럴드’ 문화부 기자로 일했다. ‘코리아 타임스’ ‘주간여성’에서도 일했다.

참전 용사였다. 1967~1968년 백마부대로 베트남에 가 복무했다.

대외적 글쓰기 시작은 번역이다. 1975년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번역 활동을 시작했다. 1982년 존 업다이크의 <토끼는 부자다>로 제1회 한국 번역문학상을 받았다. <조용한 미국인>까지 160여권을 우리말로 옮겼다.

소설가로 등단한 건 1983년이다. 베트남 참전 경험을 녹인 첫 장편소설 <전쟁과 도시>(나중 <하얀 전쟁>으로 제목 바꿈)를 출간했다. “베트남전 참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란 평가를 받았다. 1989년 <하얀 전쟁> 영문판을 직접 써 미국 소호 출판사를 통해 발표했다. 1992년 발표한 중편 <악부전>으로 김유정문학상을 받았다. <하얀 전쟁> <은마는 오지 않는다>(1987)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2)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고인은 번역가이자 영어 선생이었다. 서강대 학부와 이화여대 통역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안정효의 영어 길들이기>(1996) <가짜 영어사전>(2002) <안정효의 오역 사전>(2013)을 출간했다.

안정효의 번역 지론 중 하나는 “번역은 원문보다 나을 수 없다”이다. 그는 원문을 충실하게 옮기려고 애쓴 번역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대표작 <월든>을 2020년 다시 번역해 내면서 원제(Walden; or, Life in the Wood)를 살려 ‘월든 숲속의 생활’로 달았다.

직역을 강조한 게 아니다. “번역은 문학이고, 문학은 예술”이라는 것도 지론이다. 그는 “번역을 해내려면, 해당 언어와 그 언어를 낳은 문화를 알고, 두 언어의 구조적인 차이도 알아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상식과 지식을 습득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유족은 부인 박광자 충남대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 딸 안미란 주한독일문화원 강사와 안소근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다. 이들도 번역가다. 빈소는 서울 은평성모장례식장 8호실. 발인은 3일 오전 5시.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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