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자의 숨트뷰]자율주행차 운전 기사라고요?

구희령 기자 2023. 7. 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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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암 '유료 자율차' 1년 반
두 손 놓고 카톡 하며 운전하고
끼어들고 빵빵대도 '데이터' 수집
베테랑 자율차 운전사의 정체는?

“으아, 피곤하다. 차가 알아서 운전 좀 해줬으면!”
“왜 운전면허 안 따느냐고? 조금만 있으면 운전할 필요 없는 세상이 온다던데?”

자동차에게 온전히 운전을 맡기고 사람은 맘 편히 앉아서 가는 상상이 정말 먼 미래가 아니라 현실로 다가왔을까요.

국토교통부가 자율주행차 시범운행지구를 또 지정했습니다. 서울 여의도, 합정~청량리를 비롯해 충남ㆍ경남ㆍ경북 등 전국 15개 시ㆍ도의 24개 지역에서 자율차가 다닐 예정입니다.

사실 이미 승객에게 돈을 받고 자율차를 운행하는 곳도 있습니다. 서울 상암동과 대구ㆍ제주 등입니다. 특히 지난해 2월 서비스를 시작한 상암 지역은 자율차 수도 가장 많고, 국토부 평가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았죠.

상암 지역 자율차는 탭('Tap!')이라는 앱으로 택시처럼 부를 수 있지만, 사실 셔틀과 더 비슷합니다. 승객이 호출하는 곳으로 와서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주긴 하는데, 승ㆍ하차를 5~10개의 자율차 정류장에서만 할 수 있거든요. 정해진 노선으로만 다니고요.

현재 상암 지역에선 3개 업체가 7대의 자율차를 운행 중입니다. 약 1년 반 동안 시행되고 있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상암 지역에 유상 서비스를 도입할 때부터 자율차 운전을 맡은 '베테랑 기사' 홍승우 씨를 만났습니다.

자율주행차에 왜 '운전기사'가 있나요



그런데 잠깐. 자율차 운전기사라고요? 자율차는 차가 스스로 움직이는 거잖아요. 왜 운전기사가 필요한지 의문이 듭니다. 자율차 운전기사의 정식 명칭은 '안전요원', '세이프티 드라이버(safety driver)'라고도 부릅니다. 자율차 안전요원은 '만약의 경우'를 위해 운전석에 앉는 사람입니다. 갑자기 옆 차선에서 무리하게 차가 끼어들거나 하는 돌발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밟거나 핸들을 돌리는 등 직접 운전을 해서 대처하죠.

“사실 자율차가 그런 상황까지 예측해서 움직이기는 해요. 하지만 아무래도 승객을 태우고 있는 만큼, 정도가 심할 땐 제가 직접 운전대를 잡습니다. 승객이 놀라거나 불안해하면 안 되니까요.”

자율차 자체가 주변의 수상한 움직임을 파악하고 미리 대응하도록 프로그램돼 있지만, 승객을 태운 만큼 이중으로 안전장치를 해놓는다는 겁니다.

이런 돌발 상황이 아니라도 '자율차 운전기사'는 꼭 필요합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자율차라도 어린이ㆍ노인ㆍ장애인 보호구역에서는 반드시 사람이 운전해야 하기 때문이죠.
서울 자율주행차 상암 A02 노선을 운행하는 홍승우 '안전 요원'. 자율주행 중에는 핸들에서 양 손을 떼고 자유롭게 쓸 수 있습니다.

'홍 기사'도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역을 오가는 상암 A02 노선 3.8km 중에서 상암초등학교 앞 400m는 매번 직접 운전합니다. 해당 구간에 들어서기 전에 신호음이 울리면서 수동 운전으로 바꾸라는 안내도 나옵니다.

“수동으로 바꾸는 건 쉬워요. 제가 그냥 운전을 시작하기만 하면 돼요. 엑셀이나 브레이크, 핸들을 움직이면 바로 수동으로 바뀌거든요. 다시 자율 주행으로 바꿀 때도 이렇게 버튼 한 번만 누르면 되고요.”

두 손 머리 위로!



이렇게 매번 운전하지만 사실 '홍 기사'의 역할은 가이드에 더 가깝습니다. 상암 지역 자율차는 돈을 내고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지만(거리와 인원에 상관없이 한 번에 2000원, 첫 이용은 무료), 대부분의 승객은 실제로 거리를 달리는 자율차를 체험해 보고 싶어서 오거든요.

“중간에 내리지 않고 15분 정도 걸리는 노선 한 바퀴를 다 도시거든요. 자율차가 어떻게 차선을 변경하고 회전하는지 기본 원리도 설명해드리고, 운전석 옆에 붙어있는 모니터가 뒷좌석에도 붙어있잖아요. 여기 보이는 데이터는 뭘 뜻하는 건지도 알려드려요. ”

사람이 운전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홍 기사는 일부러 손을 핸들에 올리지 않습니다. 허벅지에 손을 올려놓거나, 자동차 문에 몸을 기대죠. 그런데 운전석 바로 뒤에 앉은 손님에겐 이런 모습이 잘 안 보이거든요. (안전 문제 때문에 자율차 조수석에는 승객을 태우지 않습니다.)

'홍 기사'는 자율주행 중인 걸 승객들에게 잘 알려주려고 양 손을 허벅지에 일부러 올려놓고 운행합니다.
" "진짜로 운전 안 하고 있는 거 맞냐고 물어보시기도 해요. 그러면 뒷자리에서도 보실 수 있도록 두 손을 이렇게 머리 위로 올리죠. 손님들이 가장 신기해하시는 건 아무래도 좌회전, 우회전이죠. 자동차 핸들이 저절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와 진짜 차가 혼자서 운전하는구나, 하세요." "

산소 호흡기를 단 '그 손님'



지난해 7월 휠체어를 탄 채로 탑승할 수 있는 자율차가 상암 노선에 추가됐습니다. 경험 많은 홍 기사가 운전을 맡았죠. 휠체어를 탄 손님뿐만 아니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차라서, 정류장에서 손님을 만나기 전까진 실제 휠체어 이용 여부를 알 수는 없어요. 홍 기사가 잊을 수 없는 '그 손님'을 만난 그 날도 그랬습니다.

상암 A02 노선은 휠체어에 탄 상태로 탑승할 수 있는 자율차가 다닙니다.
"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깜짝 놀랐어요. 40대 남성분이셨는데 산소 호흡기를 달고 계신 거예요. 휠체어에 이렇게 기대어 앉아 계시는 것도 힘겨워 보일 정도로 몸을 제대로 못 가누셨고요. 정류장까지는 어떻게 오셨나 싶을 정도였어요." "

전신 마비로 거동이 불편하지만, 자율차를 너무 타보고 싶어서 힘겨운 나들이를 나왔다고 했습니다. 사실 홍 기사도 그 손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진 못했어요. 손님이 목소리를 제대로 내기가 어려운 상태였거든요. 함께 온 70대 아버님이 귀를 손님의 입 가까이에 대고 들은 다음 홍 기사에게 말을 전달해줬습니다.

"정말 호기심이 많은 분이었어요. 자율차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질문이 끊이지가 않았어요. 한 바퀴 도는 내내 설명해 드렸지만, 주행이 다 끝난 다음에도 차를 세우고 한참을 더 말씀드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체험 동영상을 찍으러 온 유튜버 승객과 촬영을 함께 한 것도 즐거운 기억입니다.

1주일에 한 번은 꼭 엄마와 함께 학교 앞 정류장에서 자율차를 타는 초등학생 단골도 있습니다.

“자율차가 너무 좋대요. 3~4학년 정도인데, 처음에는 '와, 신기하다, 와 신기하다' 하더니 어느 날 '이건 (자율주행) 몇 단계에요?' 하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사람이 필요 없는 완전 자율주행 바로 전 단계인 4단계'라고 설명했죠. 또 하루는 자율차에서 쓰는 '라이더(빛을 이용하는 센서)'에 관해 물어보더니 '라이더는 사람의 눈이네!' 하더라고요. '아! 정확합니다!'라고 감탄했죠.”

끼어들어도, 빵빵거려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런 단골은 좀처럼 드뭅니다. 평일에 운행하는 자율차를 타보기 위해 연차를 내거나 제주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있지만, 단 한 번 체험에 그치기 마련이죠. 그렇다 보니 손님은 하루 평균 두 명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럼 손님이 없을 땐 '홍 기사'는 쉬는 걸까요.

사실 홍 기사의 정식 직함은 자율차 업체인 SWM의 차량운영팀 전임연구원입니다. 자율차 시스템 개발에 필요한 여러 가지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하죠. 손님이 있든 없든 자율차를 타고 상암 지역을 달립니다. 손님이 없으면 정해진 노선을 벗어나서 데이터를 모으기도 합니다. 아무리 여러 가지 상황을 학습한 자율차라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돌발상황을 꿰고 있을 순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실제 차를 운행하면서 여러 상황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는 겁니다.
자율차는 교통법규를 정확하게 지키게 시스템을 맞춰 놓았기 때문에 주변 운전자가 답답해할 때도 잦습니다. 시속 50㎞ 기준 속도로 달리고 있는데도 뒤에서 빵빵대기 일쑤고, 차간 거리 10m를 지키고 있으면 앞으로 끼어드는 차가 대부분입니다. 자율차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려고 일부러 거칠게 끼어드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 “처음엔 당황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는데, 그게 다 실제로 자율차가 도로에서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이잖아요. 귀중한 데이터를 수집할 기회라고 생각하니까 요즘은 오히려 끼어드는 차가 반갑더라고요. ” "

신호등도, CCTV도 '자율차의 눈'



이렇게 모은 데이터로 자율차 시스템을 계속 업데이트합니다. 처음엔 차 트렁크를 꽉 채웠던 자율주행 장치가 이제는 다른 짐을 너끈하게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아진 것도 다 이런 데이터들이 쌓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소형화된 장비를 장착하면 일반 승용차를 자율차로 바꾸는 것도 언젠가 가능해질 거라고 하네요.

자율운행 데이터를 모아서 시스템을 개선합니다. 초기엔 자율차 뒷부분을 꽉 채울만큼 장비가 컸습니다.
이제는 일반차처럼 뒷 트렁크를 쓸 수 있을만큼 자율차 장비의 크기와 무게가 줄었습니다.
홍 기사가 운행하는 자율차는 전파를 이용하는 레이더, 빛을 이용하는 라이더, 카메라 등을 복합적으로 사용해서 주변 환경을 인식합니다. 여기에 서울시의 교통관제 시스템이 '제3의 거대한 눈' 역할을 합니다. 자율차가 미처 보지 못한 정보까지 무선으로 계속 전달을 해주는 거죠.

“이 앞에 보시면 불법 주정차를 해놓은 차가 있잖아요. 이걸 카메라나 라이더로도 인지하지만, CCTV 등 서울시 관제 시스템이 파악해서 자율차로 직접 정보를 보내줍니다. 그 정보를 받고 자율차가 미리 다른 차선을 이용할 준비를 하는 거죠. 신호등도 신호가 바뀔 때마다 자율차로 바로 정보를 보내줍니다.”

이렇게 손님 없이 자율 주행을 하면서 데이터를 모을 때는 운전석에 앉아서 휴대전화를 쓰는 것도 쏠쏠한 재미라고 합니다. 자율주행 중엔 합법이거든요.

“카톡도 보내고, 웹툰도 보고요. 그래도 신호 대기 중에만 양손을 쓰려고 해요. 혹시 돌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정차한 상태에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차가 움직이면 아, 신호가 바뀌었나보다 하고 전화기를 내려놓죠.”

자율주행 강남 택시, 심야 버스 나온다



자율차가 흥미로운 구경거리나 기술 개발 도구가 아니라 일상적인 교통수단이 될 수 있을까요.
레이더와 라이더, 카메라 등이 달려있고 자율차라는 표시가 있어서 일반차와 구분이 쉽습니다.
"여기 아파트 단지에서 일곱 정거장 거리에 있는 헬스장까지 가끔 이용하시는 손님이 계세요. 마을버스 노선이 없는데 걸어가기는 좀 멀고, 택시비도 부담스러운데 한 번에 2000원 정도면 탈 만하다고요."

이렇게 자율차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분들이 앞으로는 더 늘 것 같습니다.

서울시가 붐비는 강남 지역에서 택시처럼 다니는 자율차를 운행할 계획이거든요. 대중교통을 찾기 힘든 한밤중에 합정~동대문까지 다니는 심야 자율주행 버스도 올 하반기에 도입할 예정이고요.

당분간 자율차는 무료나 저렴한 요금으로 운행될 겁니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서 이런 시도가 늘고 있으니까 앞으로는 곳곳에서 자율차를 더 자주 볼 수 있을 거예요.

혹시 길에서 자율차를 만나면 손을 한 번 흔들어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운전 중이더라도 반갑게 양손으로 화답해 줄지도 모르거든요. 자율차 운전기사는 두 손이 자유로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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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자의 숨트뷰]는 살아 숨 쉬는 트렌드를 봅니다. 그 속에 숨은 사람의 탁 트인 이야기를 시원하게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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