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갈 수 있을지 몰랐지만…한국 자랑스럽다"

임민형 2023. 7. 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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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는 중국군의 인해전술에 맞서 기적적으로 흥남 철수를 이뤄낸 주요 전투입니다.

그러나 한국전의 가장 참혹한 전투이기도 했는데요.

당시 이 현장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싸웠던 미국 참전용사를 김태종 특파원이 만나봤습니다.

[기자]

미국 서부 오리건주의 주도 세일럼.

한 마을 주택가에 지붕에 성조기를 내건 집이 눈에 띕니다.

현관엔 날짜와 함께 '초신'(chosin)이라고 적힌 명판이 있습니다.

올해 89살인 한국전 참전용사 빌 치즈홈씨의 집입니다.

초신은 장진의 일본식 발음으로, 당시 미군은 일본 지도를 썼기 때문에 지명이 이렇게 알려졌습니다.

치즈홈씨는 1950년 11월부터 12월 사이 함경남도 장진군에서 벌어진 장진호 전투 현장에 있었습니다.

장진호 전투는 유엔군과 중국군이 치열하게 맞붙었던, 한국전쟁의 가장 주요한 전투 중 하나입니다.

계모와 함께 살기 싫어 나이를 속이고 군에 입대했던 치즈홈씨는 6개월 만에 한국전쟁에 투입됐습니다.

갑자기 투입된 장진호 전투에서 기다리고 있던 적은 중국군만이 아니었습니다.

100년 만에 닥쳤다는 영하 40도의 맹추위와도 처절하게 싸워야 했습니다.

"우리가 싸우던 적의 (많은) 숫자 때문에 나는 집으로 돌아갈지, 아닐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장진호에 도착한 첫 3박 4일간은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싸웠고, 혹독한 추위에 죽은 중국군의 옷을 벗겨 껴입어야 했습니다.

"거기 날씨는 영하 20∼30도였습니다. 100년여 만에 찾아온 가장 추운 겨울이었고, 추위 때문에 수백명이 죽었습니다"

식량이 꽁꽁 얼어붙어 식사도 할 수 없었습니다.

목숨을 부지해준 건 캐러맬 과자인 투시 롤이었습니다.

당초 치즈홈씨의 부대는 지원부대에 박격포를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박격포의 암호명이 투시 롤이었는데 지원부대는 실수로 진짜 투시 롤을 보내왔습니다.

이 해프닝 덕에 치즈홈씨는 굶지 않고 살아 남았습니다. 지금도 주머니에 이 과자를 넣어서 다닙니다.

한국전쟁은 치즈홈씨에게 오랜 기간 끔찍한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한국이 발전했다고 들었지만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19년에야 한국에 가보겠다는 용기가 생겼고, 약 70년 만에 청춘을 바친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빌 씨는 한국이 자유롭고 미국의 친구로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70여년전 한국전쟁에 참전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오리건주 세일럼에서 연합뉴스 김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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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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