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는 왜 ‘아동 성착취물 소지자’의 공무원 임용을 허락했나? [법원 앞 카페]

우종환 2023. 7. 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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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 카페에 앉아 쓰는 법원 출입기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사진=연합뉴스)

“아동음란물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이미 중죄인데 어찌 공무원 임용이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가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소지로 처벌을 받은 자가 공무원으로 영구 임용될 수 없도록 한 현행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리자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에는 ‘박사방’ 조주빈, ‘N번방’ 문형욱 등이 주축이 돼 만든 성착취물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소지한 사람이 공무원이 되는 걸 허용한다? 언뜻 보기에는 납득이 되지 않을 만한 결정이기도 합니다.

헌재는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걸까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임용이 아니라 ‘영구히’라는 부분입니다. 정리하자면 ‘미성년자 음란물,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게 아니라 소지만 한 수준’이라면 공무원 임용을 막더라도 ‘영원히’ 막는 건 안 된다는 게 헌재의 결정 취지입니다. 이런 결정이 나온 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겠죠. 그 이유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공무담임권과 결격사유

헌법재판이라는 것은 결국 ‘헌법에 어긋나는지’를 판단하는 겁니다. 이번 사건에서 헌재가 판단한 건 ‘공무담임권’ 침해 여부입니다.
헌법 25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담임권을 가진다.

공무담임권이라는 건 쉽게 말해 누구나 원하면 공무원이 되거나 공무를 수행해 나라에 봉사할 권리입니다. 비슷한 개념으로는 누구나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죠.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씨 (사진=연합뉴스)


헌재에 헌법소원을 낸 A 씨는 지난 2019년 ‘박사방’ 등에서 미성년자 음란물, 성착취물을 받아 소지한 혐의로 기소돼 2021년 벌금 700만 원이 확정됐습니다. 문제는 A 씨가 공무원 준비생이었다는 점이었는데 A 씨는 공무원이 될 길이 막혔습니다. 공무원 임용 ‘결격사유’에 해당했기 때문입니다.

국가공무원법 33조

다음에 해당하는 자는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
- 아동ㆍ청소년성착취물임을 알면서 이를 소지ㆍ시청해 형이 확정된 사람

같은 혐의로 벌금 500만 원이 확정된 B 씨도 헌법소원을 냈는데 A 씨와 B 씨는 미성년자 상대 성범죄의 종류도 다양하고, 다른 범죄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임용 제한을 풀어주기도 하는데 자신들처럼 성착취물을 제작하거나 팔지도 않은 단순소지자의 공무원 임용을 ‘영원히’ 막는 건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헌재는 이 주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습니다.
“모든 범죄로부터 순결한 공무원을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헌재가 미성년자 성착취물 소지자의 공무원 임용 영구 박탈이 부당하다고 한 근거는 뭘까요?

첫째는 ‘공무원’이라는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겁니다. 대한민국의 공무원 숫자는 160만 명이 넘고 그 종류도 각종 국가·지방 공무원, 경찰·소방 공무원, 군무원, 비정규직 공무원 등 다양합니다. 이 모든 공무원에 미성년자 성범죄자가 임용되면 안 된다고 하는 건 ‘과잉’이라는 게 헌재 판단입니다.

심판대상조항은 모든 일반직공무원에 임용되는 것을 제한하고 있는데 제한되는 직무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포괄적이다. 일반직공무원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그 직무 중에는 아동 청소년과 관련이 없는 직무도 많다.

- 지난달 29일 헌재 선고

이와 비교해볼 만한 사례가 바로 ‘교육공무원’입니다. 미성년자 음란물을 소지한 혐의 등으로 지난 2015년 벌금 500만 원이 확정된 사범대 학생이 교원 임용 자격을 박탈당하자 헌법소원을 냈는데 헌재는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앞선 사례와 다른 점은 넓은 범위의 ‘공무원’과 달리 ‘교육공무원’은 미성년자와 접촉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결격사유를 인정해야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겁니다.
아동⋅청소년과 상시적으로 접촉하고 밀접한 생활관계를 형성하여 이를 바탕으로 교육과 상담이 이루어지고 인성발달의 기초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초⋅중등학교 교원의 업무적인 특수성과 중요성을 고려해 본다면, 미성년자에 대하여 성범죄를 범한 자는 교육현장에서 원천적으로 차단할 필요성이 매우 높다.

- 2019. 7. 25. 헌재 선고

‘교육공무원’이 공무원 중에서도 미성년자 접촉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결격사유가 인정됐다면, 직업군 전체에 대한 결격사유가 인정 된 예로 ‘변호사’가 있습니다. 지난 2018년 한 변호사는 ‘집행유예형 종료 뒤 2년간 변호사 자격을 제한하는 변호사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죄의 종류가 다양하고 모든 죄가 다 변호사 업무와 관련됐다고 할 수도 없는데 집행유예형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격을 제한한 건 과도하다는 거였죠. 하지만, 헌재는 '변호사 자격 제한이 합헌'이라고 인정했습니다. ‘변호사’는 그만큼 윤리적 기대가 큰 직업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래도 민간인인 변호사랑 다르게 공무원이면 더더욱 엄격해야 하는 게 아니냐’라고 말이죠. 이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민간보다 더 엄격한 윤리·도덕을 요구하고 또 기대하는 국민 감정이 반영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헌재의 앞선 판단을 보면 ‘공무원’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 보입니다.

지난 2003년 헌재는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 공무원에서 당연퇴직하도록 한 법률이 공무담임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에 대해 “헌법에 어긋난다” 고 결정하면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지위를 지니는 것이고 공정한 공직수행을 위한 직무상의 높은 수준의 염결성은 여전히 강조되는 것이다. 다만, 엘리트적 면모와 사회적 명예직으로서의 공직 인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할 것이며, 따라서, ‘모든범죄로부터 순결한 공직자 집단’이라는 신뢰를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의 공직에 대한 신뢰를 과장하여 해석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 2003. 10. 30 헌재 선고

이는 예전과 같은 엘리트 지도층으로서의 공무원에서 민간과 큰 차이가 없는 전문서비스직의 형태에 가까워졌고, 또 숫자도 많아졌는데 이런 개별 공무원에게 ‘모든 범죄로부터 순결함’을 요구하는 건 지나치다는 게 헌재의 판단인 겁니다.
범죄에도 등급이 있다?

두 번째 근거는 ‘범죄 정도에 비해 제한이 지나치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성착취물을 소지만 한 사람’과 ‘성착취물을 직접 제작해 유통한 사람’을 똑같이 공무원 영구 임용 금지를 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거죠. ‘아니 다 똑같은 성범죄자 아니냐’라는 주장을 할 수 있지만 헌재는 이런 부분도 언급하며 ‘다르다’고 판단합니다.
형벌 등 범죄에 대한 제재와는 달리 법률상 결격사유에서는 같은 종류의 성범죄를 범하였다면 범죄의 경중에 관계없이 성범죄자로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법률상 결격사유를 정함에 있어서도 범죄의 경중이나 재범의 위험성 여부를 고려하여야 하며 현재 우리 실정법에서 법률상 결격사유를 규정하는 통상적인 규정 방식도 그와 다르지 않다. 범죄의 경중이나 재범의 위험성에 관한 개별적 판단 없이 일률적으로 영구히 임용 기회를 차단하는 것은 죄질이 가볍고 재범의 위험성이 적은 사람에게 부당한 기본권 침해가 될 수 있다.

- 지난달 29일 헌재 선고

헌재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소지죄 그 자체로는 아동·청소년을 직접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직접 대상으로 하는 다른 성범죄들과 차이가 있다”라고도 밝히기도 했습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지난해 11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11월 선고에 입장해 심판을 시작하고 있다. 이날 헌재는 '아동 성범죄 전과자 임용 제한' 국가공무원법 헌법소원에 대해 선고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에도 비슷한 결정이 있었습니다.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 등 성적 학대 행위로 형이 확정된 사람에게 공무원·부사관 임용을 영구 금지하는 게 위헌이냐'는 것이었는데 이때도 헌재는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유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적 학대행위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아동복지법상 금지되는 ‘성적 학대행위’는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 등의 행위로서 아동의 건강ㆍ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성적 폭력 또는 가혹행위를 의미하고, 성폭행의 정도에 이르지 아니한 성적 행위도 그것이 성적 도의관념에 어긋나고 아동의 건전한 성적 가치관의 형성 등 완전하고 조화로운 인격발달을 현저하게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이면 이에 포함되므로 구체적인 행위태양과 죄질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 2022. 11. 24 헌재 선고

성착취물 소지와 제작·유통을 다르게 봐야 하듯 아동에 대한 성폭행을 한 경우와 성희롱을 한 경우는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를테면 성착취물 소지자나 아동성희롱범 같은 ‘비교적 약한’ 범죄라면 공무원 10년 임용금지, 성착취물 제작·유통이나 아동성폭행범 같은 ‘비교적 무거운 범죄’라면 공무원 임용 영구 금지 같은 식으로 나누라는 게 헌재의 의도입니다.

앞서 헌재가 ‘범죄의 경중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납득이 안 되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성착취물을 가지고만 있는 게 제작·유통보다 정녕 죄질이 낮다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종석 헌법재판관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헌재 안에서도 다른 의견이 나왔습니다. 헌재 결정을 이끈 재판관 6명과 달리 이은애 ·이종석 재판관은 성착취물 소지도 제작을 전제로 하는 범죄라는 점에서 가볍게 볼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아동 청소년이용음란물소지죄는 그 자체로는 아동 청소년에 대한 성착취 및 성학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우나 아동 청소년이용음란물 제작을 전제로 하여 성립되는 범죄라는 점에서 아동 청소년에 대한 성착취 및 성학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음란물의 소지에 이르기까지는 다양한 형태의 아동 청소년대상 성범죄가 전제되었을 것인바 단지 직접적으로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아동 청소년이용음란물소지죄로 형을 선고받아 그 형이 확정된 사람을 국민의 신뢰가 생명인 공직사회에 아무런 제약 없이 진입할 수 있도록 한다면 성착취 및 성학대로부터 아동 청소년을 보호하기는 어려워질 것이고 공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실추될 것이다.

- 지난달 29일 이은애·이종석 재판관 반대의견

두 재판관은 앞서 언급한 지난해 ‘아동성희롱범’에 대해서도 “아동에 대한 성적 학대행위는 구체적인 행위태양을 불문하고 그 자체로 죄질이 불량하고 비난가능성이 높다”며 경중을 나누는 게 의미 없다고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성착취물 소지든 제작·유통이든, 아동성희롱이든 아동성폭행이든 모두 경중을 나눌 의미가 없는 ‘똑같은 중죄’기 때문에 ‘똑같이 공무원 임용을 영구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앞에서 헌재의 결정 근거로 ‘공무원’은 너무 범위가 넓고 미성년자와 접촉 가능성이 낮은 직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임용을 금지하는 건 과하다고 봤다고 했었지요? 두 재판관은 여기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공무수행 중에 접촉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아동 청소년과의 접촉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아동 청소년대상 성범죄는 행위자의 습벽 등에 의해 저질러지는 경우가 적지 않아 단기간에 교정되지 않고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고 그 과정에서 재범의 위험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만일 과거에 아동 청소년이용음란물소지죄로 형을 선고받아 그 형이 확정된 사람이 일반직공무원에 임용되어 공무원의 신분을 보유한 상태에서 다시 아동 청소년대상 성범죄를 범하게 되면 공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심히 추락할 수밖에 없다.

- 지난달 29일 이은애·이종석 재판관 반대의견
'갱생 가능성'과 '재범 방지' 사이에서

어쨌든 헌재의 결정은 결국 ‘특정한 직군이 아닌 모든 공무원’, ‘범죄의 경중을 나누지 않은 일률적인 영구 임용 금지’는 헌법에 맞지 않으니 헌법에 맞게 법을 고치라고 결정했고 공은 국회로 넘어갔습니다.

실제로 이에 맞춰 국회에서는 헌재의 결정에 따른 법안이 발의되고 있습니다. 앞서 아동성희롱범에 대한 공무원 임용 영구 금지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데 대해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은 ‘아동성희롱범은 10년 간 임용 금지’로 수정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5년 간 임용 금지’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여전히 결격사유 완화가 아닌 강화 움직임도 있습니다. 앞서 지난 4월 국회는 의사 면허 취소 요건을 ‘의료법 위반’에서 ‘모든 범죄’로 확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또 최근 마약 관련 범죄가 이슈가 되자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은 기존 성범죄 뿐만 아니라 ‘마약범죄’까지 공무원 임용 결격사유로 추가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헌재 결정이 요구하는 건 결국 ‘공무담임권’이라는 기본권과 ‘결격사유’를 통한 공공복리증진, 범죄 예방 효과의 균형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공무담임권’ 보장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가해자의 권리’인 만큼 이를 보장하는 방향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을 겁니다.

이에 대해 법제처는 지난 2009년 ‘법령상의 결격사유에 관한 연구’에서 결격사유를 강화하는 건 “형사처벌을 받은 자에 대한 건전한 사회참여의 폭을 제한하여 갱생보호적 측면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도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헌재와 법제처가 말하는 건 10년이든 15년이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범죄 정도가 낮은 범죄자가 ‘갱생’할 수 있다는 것일 겁니다. 헌재는 이런 관점에서 ‘성착취물 단순 소지자’나 ‘아동성희롱범’은 비교적 갱생의 여지가 있다고 본 것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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