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넘칠라” 배수펌프장 시험가동…“또 잠길라” 저지대 긴장

김홍준.원동욱 2023. 7. 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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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시름 깊어진 사람들
경기도 고양시 신평배수펌프장은 최근 집중호우가 잦아지면서 방재 성능을 높이기 위해 300억원을 들여 다시 시설을 보강할 계획이다. 장마에 돌입한 지난달 27일 신평펌프장 관계자들이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일용직 노동자 신용선(65·경기도 의정부시)씨는 “철근을 어깨에 메야 해서 이런 날 일하면 살이 문드러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집에서 쉰다고 했다. 경기도 고양시의 A미용실 레나(42) 원장은 미용 가위를 종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이런 날은 머리하러 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이런 날’은 지난달 26일. 비 내리는 날이었다. 중앙SUNDAY는 2023년 장마의 초입인 지난 26~29일에 수마(水魔)로 시름에 잠긴 이들, 수난(水難)과 사투를 벌이는 이들을 만났다. 비와 비 사이의 폭염에 힘겨워하는 이들을 찾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아파트·도로 많아져 빗물 흡수 못해 피해 커져
“지난해 8월 8일? 그날은 기억하기도 싫어요.”
2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신림동주민센터 부근에서 상점을 30년째 운영하는 강연화(62)씨는 넌더리를 쳤다. 강씨는 “그날 저기 조금 높은 큰길(신림로)과 롯데백화점(관악점) 방면에서 물이 달려 내려와 이 앞에서 만났는데, 바다가 따로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가게에 물이 무릎 부근까지 차올랐다. 그는 “당시 이 골목에서 물폭탄을 맞은 뒤 서너 곳이 버티지 못하고 아예 가게를 접었다”며 “지금 그곳에 들어간 사장들은 수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같은 골목이지만 살짝 비탈진 곳에 있는 맞은편은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2022년 8월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의 농산물 할인마트 사장 강연화씨는 ″물이 이 정도로 찼다″며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침수로 선반이 헐어 있다. 김홍준 기자

근처에서 25년째 거주하는 김나연(70·가명)씨는 "신림로에서 쏟아져 내려온 물이 화단을 맞고 틀어져 그쪽에 피해가 컸다“고 말했다. 김씨는 ”담배꽁초 버리는 걸 막는다고 배수구를 판으로 막았고, 안에는 담배꽁초 등이 가득했던 데다가, 상인들이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음식물 쓰레기가 배수구를 꽁꽁 막아 피해가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그쪽’의 한 가게는 내부가 반지하 형태인데, 빗물이 천장까지 들어찼다고 한다.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의 배수구. 냄새를 막는 장치가 안에 있는데, 근처 상인은 이를 없애야 물이 잘 빠진다고 입을 모았다. 김홍준 기자
당시 서울에는 1시간 최대 141.5㎜, 하루로는 최대 435㎜(이상 동작구)의 비가 퍼부어 서울 지역 강우량 기록을 갈아치웠다. 동작구 상도동과 그 옆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에서는 일가족 3명과 50대 여성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서울 폭우 피해의 원인을 분석했는데, 그중 하나가 콘크리트 재질의 아파트·도로·인도 등의 불투수면(물이 스며들지 못하는 곳) 증가다. 빗물이 땅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도로 등을 따라 저지대로 집중됐다는 것이다. 신림동 주민 강씨·김씨와 비슷한 분석을 한 셈이다.

근처의 신사시장(관악구 신사동)이나 성대전통시장(동작구 상도동) 부근도 모두 고지대 바로 밑 움푹 팬 저지대에 자리 잡고 있어 피해가 컸다. 신사시장의 B중국음식점 사장은 한국어와 중국어, 심지어 몸짓까지 섞어가며 “물이 가슴팍까지 찼다”고 전했다. 신림동에서 15년째 프레시 매니저(야쿠르트 아줌마)로 일하며 동네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신영희(62·가명)씨는 "20여 년 전에 신림동 반지하에 살았는데, 큰비( 2001년 7월 집중호우)로 모든 게 잠기고 보상금 70만원만 달랑 받고 바로 고지대로 이사 갔다"고 말했다.

신사동의 김모 공인중개사는 “월세가 대부분인 반지하 주택은 지난해 8월 이후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며 “침수된 반지하라도 주인이 리모델링하고, 어쨌든 수요는 채워져서 (수해) 이전과 월세는 똑같고, 공실도 없다”고 전했다. 신림동의 한 반지하 주택에 사는 김모(32)씨는 “비가 많이 온다는 내일(29일)도 걱정”이라며 비를 막아줄 차수판을 두드려 본 뒤 현관문을 단단히 닫았다. 강씨는 “구청에서 전달한 모래주머니 12개로 가게를 막아봐야 하는데, 어디 좀 더 구해봐야겠다”고 말했다.

# 신림동 반지하 형태 가게, 작년 천장까지 침수
“스탠바이!” 이어 육중한 기계 작동음과 함께 물이 쏟아져 나왔다. 27일. 전날 비가 남긴 물웅덩이에 많은 구름이 비쳤다. 경기도 고양시 강매배수펌프장에서는 시험 가동이 한창이었다. 정봉기 고양시 재난대응과 팀장은 “비상 상황에 대비해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팀장이 말한 비상 상황은 집중호우, 팔당댐 방류, 서해 만조 등이 겹쳐 범람 위기일 때를 말한다.

고양시는 저지대다. 집중 호우가 경기 남부에 뿌려져도 한강이 범람해 큰 피해를 보는 곳이다. 1990년 9월에는 83개 마을이 잠겼고, 이재민이 5만명이었다. 정부는 해발 4~5m의 신도시 지역 지반을 10m 높이로 올리고 서둘러 자유로 신설공사를 발표하기도 했다. 강매지역은 지난해 8월 폭우 때도 침수됐다. 그래서 관내 8개 배수펌프장의 역할이 크다.
지난달 27일 집중호우에 대비해 시험 가동 중인 고양시 강매배수펌프장 1호기에서 1분당 300t의 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강매펌프장도 490억원을 들여 증설할 계획이다. 최기웅 기자

이날 시험 가동한 강매배수펌프장 1호기는 1분당 300t의 물을 뿜어냈다. 덤프트럭(6t) 50대 분량이다. 같은 날, 22개의 펌프가 있는 신평배수펌프장에는 직원들이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신평배수펌프장 관계자는 “지금은 날씨가 괜찮지만, 내일은 모른다”며 “그야말로 물 흐르듯 배수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고 밝혔다. 정 팀장은 “지난해 8월 폭우는 서울 강남과 경기 남부에 집중적으로 쏟아져 우리(고양시)같은 경기북부 지역은 가장자리로 분류됐지만, 2시간 동안 풀가동했다”고 밝혔다. 신평배수펌프장의 분당 처리 용량은 1만1700t. 그러니까 당시 140만t의 물을 쏟아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의 배수펌프장은 2112곳(2021년 9월 기준). 전국의 배수펌프장에서는 5월 15일부터 10월 15일까지는 재해대책 시스템이 적용된다. 이곳 직원들의 긴장감은 펌프처럼 용솟음치고 있었다.

# 폭우 땐 미용실·택시 일손 놔…고지대 쪽방촌 더위 몸살
지난해 8월 폭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과 동작구 상도동의 반지하 주택이 큰 피해를 입었다. 신림동에 새로 지은 한 반지하 주택 창에 비를 막아줄 지붕이 만들어져 있다. 김홍준 기자
다시 28일. 한강 이남의 저지대에 사는 이들이 ‘물’로 걱정할 즈음, 강북의 비교적 고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열’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종로구 돈의동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 북쪽, 이른바 ‘쪽방촌’ 골목에는 주민 대여섯 명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쿨링포그(증발냉방장치) 신세를 지고 있었다. 구청에서 지원해 약 1m 간격으로 설치된 쿨링포그는 10분마다 시원한 물안개를 내뿜고 있었다.

이곳에서 18년째 산다는 김현동(74)씨는 “장마도 비만 오는 게 아니라서, 비 안 오는 사이사이의 폭염이 무섭지 물은 항상 잘 빠졌다”며 “침수는 수십 년 전 이야기고,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분들은 최근까지 있었지만 5년 전부터는 뜸해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종로구 창신동의 또 다른 쪽방촌에는 쿨링포그는 없었다. 주민 조세환(68)씨는 “근처 소방서에서 30도가 넘으면 바닥에 호스로 물을 뿌려주고 가곤 한다”고 했다. 김정진(74·가명)씨는 “아직은 6월이라 버틸만한데, 7월이 되면 푹푹 쪄서 정말 환장할 노릇”이라고 밝혔다. 순식간에 하늘이 어두워졌다. 다음날 예보된 큰비를 몰고 올 검은 구름이었을까.

29일 비. 호남을 할퀸 장마전선이 중부로 올라왔다. 오전 6시부터 호우에 대비하라는 재난문자가 계속 날아왔다. 일용직 노동자 신용선씨는 다시 집에서 쉬었고, 미용실 레나 원장은 또 미용가위를 내려놓고 있었다. 경기도 파주시에서 개인택시를 모는 이재은(62)씨는 “장대비에 운전이 어렵다”며 오후 2시에 일을 접었다. 경기도 고양시 개인택시 기사 최승엽(61)씨는 “이런 날은 까딱 잘못하면 더 손해”라며 아예 운행하지 않고 막걸릿잔을 기울였다. 신림동의 강연화씨는 “모래주머니 12개로 방어선을 구축해 피해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관악구 곳곳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취재가 진행된 26~29일 전국에서 시간당 50㎜ 이상의 폭우가 내린 곳은 12곳. 시간당 50㎜의 비는 보행자가 안 보이고 차량 와이퍼가 무용지물일 정도다. 30일에는 전날의 호우주의보를 무색하게 하는 폭염주의보가 중부에 내려졌고, 남부에는 호우주의보가 다시 발령됐다.
쪽방촌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폭염의 7월이 시작됐고, 저지대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게릴라성 장마는 아직 서곡조차 끝나지 않았다.

■ 비가 오면 더 바빠지는 사람들

「 2300개. 차모(62)씨와 김원일(60)씨가 한 해 고치는 우산·양산의 숫자다. 비가 쏟아지는 계절, 이들은 더욱 바빠진다.

지난달 26일. 비 내리는, 올해 장마의 초입이었다. 이날 인천시 계양구 작전2동 행정복지센터 2층. 차씨의 두툼한 손에 쥐어진 플라이어(일명 펜치)는 섬세하게 기자의 우산을 헤쳐 나갔다. “제 살이 가장 튼튼한 법”이라며 그는 ‘조직 이식’ 대신 ‘조직 재생’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구부러진 살을 폈다. 살을 지탱해 주던 실을 다시 심으며 봉합했다. “자 됐어요. 오늘 15개째네.” 옆에 있던 김씨는 “이 양산까지 16개째”라고 했다.
작어 중인 인천시 계양구청의 우산 무료 수리 서비스 기술자인 차모씨(왼쪽)와 김원일씨. 이들은 한 해 2300여 개의 우산을 고친다. 2023.6.26 김홍준 기자

'우산 수리공' 차씨와 김씨는 인천시 계양구청의 '찾아가는 우산 수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자원순환, 일자리 창출 정책의 하나로 8년째 이어지고 있다. 차씨는 사업 원년인 2016년부터 일하고 있다. 그는 “재료 모으기가 가장 어렵다”면서도 “하나하나 고칠 때마다 새 생명을 불어넣은 듯해서 뿌듯하다”고 밝혔다. 아들이 취업해 받은 첫 월급으로 사준 고급 우산을 들고 온 어머니,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물려준 양산을 고치러 온 며느리 등 사연도 많다.
김씨는 “우산 살 8개 중 4개 정도 부러지면 우산으로서는 ’사망 선고‘인데, 그걸 고쳐 달라고 하소연하는 사람도 알고 보니 이런 사연이 있더라”고 전했다. 이들은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 가장 바쁘다고 한다. 그들은 서운동에서 무료 수리를 위해 자리를 옮기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비가 와야 우산을 펴고 그때야 고장 난 걸 알지. 미리미리 준비하면 좋겠지만.”
인천시 계약구청에서 운영하는 우산 무료 수리 서비스 관계자가 기자의 우산을 고치고 있다. 그는 ″장마 때 일이 쏟아진다″고 말했다. 2023.6.26 김홍준 기자

김홍준·원동욱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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