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서 암 진단받은 적 없어" 거짓말로 '보험금 먹튀'…막을 방법 없다

정심교 기자 2023. 6. 3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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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통 중국인 "파견 조사 때 '입꾹'하라"…조사 대처법 공유
"서류 제출, 서명했다간 불리해질 것"이라고도
韓보험사 "고지의무 위반 파악? 거의 불가능"
中서 대장암 진단받고 韓건보 피부양자로 등록
한국에서 보험설계사로 근무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인 여성이 지난 3월 자신의 샤오홍슈 계정에 올린 강의 영상 일부. 그는 영상에서 "보험금 청구 후 보험사가 파견 조사를 실시하며 각종 서류 제출을 요구할 경우 순순히 응하지 말라"며 "보험금 심사원의 말을 반드시 녹음하고, 신고하라"고 언급했다. /사진=샤오홍슈 앱 캡처.


국민건강보험·실손보험 '먹튀' 논란에 불을 지핀 중국인들이 이번엔 '보험금 조사 대처법'까지 공유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험금 현장 조사 때 보험금 심사원(손해사정사·보험조사분석사 등)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말라는 게 요지인데,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허위 가입·청구 등 보험사기에서 흔한 일"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 중국인들이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실손보험·정액담보보험에 대해 중국 SNS에서 '본전을 뽑는다'는 뜻의 신조어인 '하오양마오(양털 뽑기)'로 빗대고 있다는 점에서 간과해선 안 될 것으로 보인다.

30일 머니투데이 취재에 따르면 한국에서 중국인 대상 보험설계사로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 중국인 A씨는 '샤오홍슈'(중국판 인스타그램)에 보험사의 현장 조사에 대한 대처법 강의 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에서 A씨는 "당신이 보험금을 청구할 때 간혹 보험사가 '수상하다'고 느껴 사람(보험금 심사원)을 파견해 조사를 진행할 수 있는데 △해당 질환을 보험 가입 전부터 앓고 있었는지 △사고를 고의로 냈는지 △고지의무 위반이 있는지 △보험사기인지를 확인하려는 목적"이라며 강의를 시작했다. 실제로 보험사에선 가입자에게 거액의 진단비 같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때 '의심스러운' 정황이 포착되면 보험금 심사원을 파견해 가입자를 만나 대면 조사를 실시하는 게 원칙이다. 허위 청구, 보험사기 등을 가려내기 위해서다.

A씨는 "이럴 때(보험금 심사원이 찾아왔을 때) 시청자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게 있다"며 "조사하러 온 보험금 심사원은 의무기록 열람동의서, 위임장에 가입자가 서명하기를 요구할 것이다. 이때 섣불리 서명하면 심사원이 병원에 가서 어떤 진료를 받았는지 조사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입자에게 매우 불리해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왜 '불리하다'고 표현했을까? 보험업계 관계자 B씨는 이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B씨는 "상식적으로 가입자가 떳떳하다면 서류에 서명해야 조사를 바로 진행해 보험금을 빠르게 수령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서명을 망설인다면 그 이유는 보험사에 대한 불신도 있을 수 있지만 가입 당시 고지의무(告知義務) 위반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고지의무 위반'이란 보험에 가입할 때 기존의 병력, 직업 등을 일부러 거짓으로 체크한 후 청약해 가입 체결한 경우를 말한다. 예컨대 혈압약을 복용하거나 당뇨병 치료를 받고 있어도, 가입할 때 기존 병력 치료 사항을 청약서에 기입하지 않고 가입했다면 고지의무 위반으로 인해 보험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 이런 경우 가입자는 당연히 보험금 지급이 제한될 수 있다.

또 다른 영상에서 A씨는 "심사원이 당신을 찾아와 자료를 요구하면 일단 휴대전화로 녹음하라"며 조언했다. 그러면서 A씨는 "만약 그들이 이런 자료에 '당신이 동의하지 않아 보험금을 줄 수 없다, 보험금 지급 항목에서 빼겠다'고 하거나, '당신이 동의하지 않아 우리는 조사를 진행할 수가 없다'는 등 이런 말을 구사한다면 직접 전화로 신고하라"라며 영상을 끝냈다. 어디에 신고하라고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보험업계 관계자는 B씨는 "이런 경우 신고 방식은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접수하는 방식을 가리킬 것"이라면서 "찔리는 게 없다면 굳이 조사를 위한 자료에 서명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한국에서 수술을 받고 3일에 나눠 총 1800만원 가까이 받았다는 중국인 여성이 올린 인증샷. 그중 665만원은 별도로 챙길 수 있는 진단금으로 추정된다. 이 여성은 "한국에서 싸게 가입해 수일 내로 큰 돈을 받을 수 있다"며, 보험 가입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사진=샤오홍슈 화면 캡처.
심사원 면담 때 '입꾹'하면 기존 병력 찾아내기 어려워
그렇다면 한국 보험사에 가입한 중국인 가운에 보험금 현장 조사가 실제로 진행된 바 있을까?

국내 한 대형 보험사의 보험사기조사부 C씨는 "거액의 진단비를 청구한 중국인 가입자가 여러 정황상 한국에서 보험에 가입하기 전부터 특정 병력으로 중국병원에 다닌 것으로 파악해 우리 직원이 중국 현지로 파견조사나간 적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장금액이 많으면서 확실한 고지의무 위반, 허위 청구 등의 근거가 있을 때'만 중국 현지로 사람을 보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를테면 고지의무 위반 의심 가입자의 청구 금액이 5만원에 불과하거나, 의심은 가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을 땐 아무리 중국인을 면담해도 의미가 없다는 것.

C씨는 "한국인이라면 심사원이 초진 기록지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겠지만, 중국인의 경우 현지 병원에서 먼저 암으로 진단받고, 한국에 와서 정액 담보 보험에 가입해 암 진단비를 받아냈어도 가입자가 가입 당시 암으로 진단받은 적 없다고 발 빼면 현실적으로 병력이 있었는지 알아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만약 중국인이 중국 현지 병원에서 위암으로 진단받고, 한국에 와서 보험에 '병력 없음'으로 가입한 후 한국병원에서 위암으로 진단받으면 어떻게 될까? C씨는 "진단비를 타갈 수 있다"고 답한다. 게다가 이 중국인이 진단비를 받고 중국으로 돌아간 후로 월 보험료를 더는 내지 않는다면 보험 계약은 자동 해지된다. 그 후로 새롭게 대장암으로 진단받아도 한국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가입할 수 있다.중국에서 큰 병으로 진단받을 때마다 한국에 와서 보험에 가입한 후 병을 다시 진단받고 거액의 진단비를 타가는 게 가능하단 얘기다.

실제로 중국 SNS에선 한국에서 세 차례 수술받고 1800만원(그중 665만원은 진단비로 추정)을 받았다는 인증샷에 "보험 어디서 가입할 수 있느냐", "재테크 고수네", "한국 보험은 재테크에 제격"이라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C씨는 "한국의 경우 가입자에게 초진 기록지 등을 제출해 달라고 요청하거나 면담 때 나오는 얘기를 바탕으로 인과관계를 파악한다"면서도 "중국인에게 중국 병원에서의 초진 기록지를 받는 게 현실적으로 힘든 데다, 여러 정황상 중국인 가입자가 고지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여도 면담 때 그 가입자가 과거 병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통은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아 보험사기를 적발하는 게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 중국인이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은 하오양마오(본전 뽑는 것)야"라는 내용과 문구로 만든 영상을 중국 검색 사이트 '바이두'에 올렸다. 이 영상에서 그는 한국에서 병원 싸게 활용하는 팁을 공유했다. /사진=해당 화면 캡처.

중국인이 중국 현지에서 큰 병으로 진단받고 일부러 한국으로 건너와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사례는 민간 영역(실손보험, 정액 담보 보험)뿐 아니라 국가 영역인 '국민건강보험'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머니투데이가 접수한 제보에 따르면 수년 전 중국에서 대장암으로 진단받은 한 남성은 한국에서 사는 딸의 조언으로 진단 직후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입국 직후 사위(건강보험 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했고, 바로 한국 병원에서 대장암을 치료받았다. 암 치료의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급여 항목의 95%를 내줘, 본인은 5%만 내면 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현재 건강보험 피부양자의 경우 실손보험, 정액 보험과 마찬가지로 가입조건에 국내 최소 체류 기간이 따로 없다.

이에 국민의힘 송언석·주호영 의원이 2021년 1월과 12월, 각각 대표 발의한 외국인 피부양자 자격요건 강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일부 개정안 2건을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외국인이 피부양자가 되기 위한 요건으로 직장가입자와 관계, 소득·재산 요건 이외에도 국내 거주기간 또는 거주 사유를 추가해 단기간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은 피부양자가 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다수 의원과 정의당 일부 의원이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라며 반대해 3년째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그간 건강보험법의 국회 통과를 서둘러달라고 각 의원실을 찾아다니면서 설득해왔다"면서 "최근 머니투데이발(發) 중국인 사례 기사를 의원들에게 보여주며 입법화에 속도를 내달라고 설득할 계획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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