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취향이 레이어드된 남산 아래 집
높이 솟은 남산타워의 호연한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남산 아래. 정재연·최진수 씨 부부는 서로의 취향을 한 코씩 그물처럼 엮어 '사람 냄새 나는 집'으로 가꾸며 살아가고 있다. 매일 부부의 그물 속에는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줄줄이 걸려든다.
부부의 취향을 층층이 레이어드하기
동갑내기 커플인 정재연·최진수 씨 부부의 집은 서울에서 손꼽힐 만큼 매력적인 전망을 자랑하는 이른바 '뷰 맛집'이다. "이전 집보다 크기가 2배 이상 커져 한편으론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전망을 한 번 본 이후로 그 아름다움이 잊혀지지 않았죠." 이 집에서 다섯 번째 해를 맞이하는 동안 부부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딸 소월이도 어느덧 세 살 꼬마가 됐다. 부부는 옥상 루프톱 공간과 남산타워가 훤히 내다보이는 풍경 외에도 외국인이 주로 거주하는 빌라 특유의 정형화되지 않은 내부 구조가 마음에 쏙 들었다. 일반적인 한국 아파트 평면에서 비롯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인테리어를 계획할 수 있었기 때문. 집은 현관을 기준으로 크게 두 영역으로 나뉘는데, 왼쪽은 거실과 주방이 자리한 커뮤니티 공간, 오른쪽은 아이방과 서재, 침실이 자리한 사적 공간이다. 부부는 서로의 취향이 겹치는 교집합과 섞이지 않는 여집합 부분을 공간에 적절하게 안배했다. "저는 패션 에디터로 일하면서 압구정, 청담동이 주요 생활 반경이었고, 남편은 홍대 앞 스트리트 컬처에 푹 빠져 있었어요. 서로 다른 문화를 접하며 취향을 쌓아온 셈인 거죠." 메인 공간인 거실은 캘리포니아의 자유로운 문화와 화창한 날씨를 사랑하는 남편의 취향을 힘껏 반영했다. 디제잉을 취미로 즐기는 남편의 위시 리스트였던 1970년대 JBL 스피커, 비초에 선반장을 가득 채운 LP, 천장에 달린 실링팬, 서핑보드를 연상시키는 허먼밀러의 소파 테이블이 아름다운 뷰와 어우러져 말 그대로 캘리포니아 감성이 흘러넘친다. 거실이 남편의 취향을 담았다면, 주방과 다이닝 룸은 아내 정재연 씨의 놀이터. 요리를 좋아하는 정재연 씨가 하나 둘 모아온 레시피 북을 비롯해 두 사람이 함께 즐기는 커피라는 공통 관심사가 이곳에 자연스럽게 반영됐다.
사는 '것'이 아닌 '곳'으로의 집
어릴 때부터 인테리어와 공간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온 정재연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웃음). 이 집을 꾸밀 때는 한창 미드센추리 모던 스타일이 유행하기 시작할 때였어요. 그래서 그런 스타일의 가구는 의도적으로 배제했죠." 정재연 씨는 인테리어 책, 관련 채널을 틈틈이 챙겨 보며 자신만의 취향을 세심하게 다듬어나갔다. 10여 년 전 북유럽 스타일이 유행할 때는 일본에서 북유럽과 아메리칸 빈티지를 어떻게 그만의 방식으로 해석했는지 살펴보며, 한국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어떻게 조화롭게 받아들일지를 고민했다. "세계 곳곳의 작고 아름다운 집을 소개하는 '네버 투 스몰(Never Too Small)'이라는 유튜브 채널이 인테리어 감각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무엇보다 이 공간에서 가족이 생활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채워가니 실패할 확률이 적었죠." 콘셉트나 유행을 좇아 구입한 것이 아니기에 한번 선택한 가구와 소품들은 오랫동안 쓰는 것이 대부분이다. 가족의 생활을 기준으로 충실하게 가꿔나간 집은 자신을 표현하는 매개체이자 사람들과 교류하는 소셜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예전에는 외부에서 소셜 활동을 했다면, 이제는 집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져요. 사람들도 제가 사는 집을 더욱 궁금해하고, 공간을 통해 저를 바라보기도 해요. 집을 통해 관계가 더욱 확장되고, 가족과의 정서적인 유대감도 모두 집 안에서 형성돼요. 저희에게 집은 곧 관계의 근원이 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죠." 정재연 씨 말처럼 퇴근 후 잠시 쉬었다 나가는 반쪽짜리 집이 아닌, 충만한 삶의 터전으로서의 집이 곧 진정한 의미의 '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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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이승민
photographer김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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