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판결문 도우미 AI’ 구축 가능… 신임 대법원장의 첫 과제 돼야”[M 인터뷰]

김병채 기자 2023. 6. 3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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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인터뷰 - 법원 ‘AI 최고 전문가’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
지금은 판결에 에너지의 30%
판결문 쓰는 데 70% 쓰는데
AI가 들어오면 반대로 될 것
판사도 더 늘릴 필요 없어져
국민은 창의적 판결이 아닌
옳고 신속한 판결을 요구해
아무리 AI가 발전한다 해도
기초엔 아날로그 내공 필요
디지털과 융합된 ‘디지로그’
훌륭한 법관의 첫번째 자질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지난 22일 서울고법 판사실 입구에 걸린 자신의 좌우명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선행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있다)’ 현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백동현 기자

강민구(64)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올해 초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인공지능(AI) 열풍이 불면서 한국에서 가장 바빠진 사람 중에 한 명이 됐다. 현직 법관이지만, 관련 회사에 종사하고 있는 AI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과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곳에서 그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고, 문화일보도 그중 하나였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 판사실에서 만난 강 부장판사는 기자에게 휴대전화를 먼저 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생성형 AI 앱인 오픈AI의 챗GPT,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빙, 구글의 바드를 차례를 깔아줬다. 그는 “이 세 개의 앱이 없는 사람과는 대화하지 말라”고 진담 같은 농담을 했다. 그의 사무실에는 법원 내부망과 분리된 개인 PC, 구술 기록을 위한 마이크 등 장비 등이 구비돼 있었고 그의 휴대전화에 설치돼 있는 메모 프로그램 ‘에버노트’에는 1만8000건 이상의 구술·필기 메모가 기록돼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생성형 AI 시대의 도래를 예언했던 강 부장판사는 지금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생성형 AI를 과감하게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 업무에서 당장 생성형 AI를 활용할 수 있나.

 “지금이라도 하겠다고 결심만 서면 ‘판결문 도우미 AI’를 구축할 수 있다. 10억 원 미만의 예산으로 4∼6개월의 시간이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수백만 개의 하급심과 대법원 판결문, 실무 편람, 법령 정보가 모두 전산화돼 있다. 이를 학습만 하면 된다. 9월에 취임하는 새 대법원장이 처음으로 해야 할 사업이다.”

―어떤 것이 달라질 수 있나.

“지금은 종합법률정보나 판결문 검색 시스템에서 키워드 검색을 하면 결과가 수십 개 이상 나온다. 다 보려면 시간이 엄청 걸린다. AI가 도입되면 ‘대법원 판례, 하급심 중 가장 유사한 것 3개만 보여줘’라고 하면 바로 나올 것이다. 레고 블록을 조립하듯이 판결문을 조립식으로 쓸 수가 있다. 지금은 판결 결론을 내는 데 에너지의 30%, 판결문 쓰는 데 70%를 쓰고 있는데 AI가 들어오면 반대로 된다. 판결문 쓰는 게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판사도 더 늘릴 필요가 없어진다.”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판사들이 지금 하는 업무를 10분의 1로 줄여주고, 10배의 효율을 낼 수 있다. 천편일률적인 판결이 나오고 창의적인 판결이 없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데 새로운 제도 도입의 비용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지금 국민은 창의적인 판결을 바라는 게 아니고 옳고 바른 판결을 신속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흔히 법원이 ‘미뤄서 조진다’고 하는데 그것을 없애 달라는 게 국민적 요구다. 소액이나 약식사건은 AI가 진행하고, 판사가 최종 검수하는 시대가 곧 온다.”

―해외에서는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유럽에서는 에스토니아가 간이 사건에 AI 판결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양형 계산 프로그램 ‘컴파스(COMPAS)’를 적용하는 주가 있다. AI를 도입하면 양형 계산이 가장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야다. 사유를 설명해 주고 양형 가이드라인에 의해서 범위를 뽑아달라고 하면 계산해 준다.”

―대한변호사협회의 리걸테크(법률 관련 기술) 회사 규제 논쟁도 뜨겁다.

“우리가 규제를 세게 하면 할수록 구글이나 MS에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최근에 한국 리걸테크 회사들의 서비스를 거의 다 체험해 봤다. 수준이 상당하다. 변협의 대응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기업-소비자(B2C) 거래는 몰라도 기업 간(B2B) 거래까지 막는 것은 과하다. 미국은 리걸테크가 2000여 개가 넘는다. 일본 변협만 해도 리걸테크와 상생하자고 한다. 호랑이 등에 올라타야 한다. 변호사 시장도 과거보다 낮은 비용으로 영업할 수 있는 등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빙이나 바드 등 범용 AI도 법률 영역에서 활용될 여지가 많나.

“학교 폭력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소장을 작성해 달라고 하면 상당한 수준의 소장을 만들어 준다. 사람이 조금만 손 보면 된다. 이런 일을 하던 법무사들이 위협을 당장 받게 될 것이다. 소장에 가상 주소까지 만들어 준다.”

―앞으로 법률시장은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보나.

“AI를 잘 사용하는 법조인이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덜 사용하는 사람을 대체할 것으로 생각한다. AI가 인간을 바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시점에서는 AI 활용을 잘하는 법조인이 그 활용을 하지 못하는 법조인을 대체할 것이다. 또 대형 로펌만 생성형 AI의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군소 로펌이나 개인 변호사도 특화된 분야에서 집중탐구를 하면 큰 혜택을 볼 것이다. 단순한 송무 시장 이외의 다양한 분야에 진출할 때 생성형 AI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AI 시대에 필요한 법관의 소양은 어떤 게 있나.

“결국 아무리 AI가 발전한다 해도 그 기초는 아날로그 내공이다. 결국 아날로그 내공과 디지털 내공을 합친 디지로그 융합, 통섭형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훌륭한 법관으로서의 자질이 될 것이라고 본다. 특히 아날로그 내공은 오랜 기간의 우회 축적이 있어야지만 생각 근육이 육성되는데, 생각 근육의 육성은 꾸준하고도 광범위한 양질의 독서, 글쓰기 습관, 명상과 사고실험, 각계 전문가와의 정보 교류 및 유지가 필요하다. 법관도 그런 점을 유념해서 자기 단련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생성형 AI와 관련해 유럽 등에서는 규제 움직임이 있는데.

“한국에서 관련 입법이 논의되고 있는데 꼭 알아야 할 것은 한국은 생성형 AI를 만들 수 있는 거대언어모델(LLM)을 가지고 있는 4개국 중 하나라는 것이다. 네이버, 카카오, 통신 3사 등이 독자적 모델을 가지고 있다. 한국과 미국, 중국, 이스라엘만 이 모델을 가지고 있다. LLM이 없는 유럽과 상황이 다르다. 지금은 진흥에 힘써야 할 때다. 최선두에 있는 미국이 못하는 틈새시장을 파고 들어가면 지금 반도체 시장에서의 삼성전자와 같은 지위를 AI 시장에서도 확보할 수 있다. 규제는 미국의 규제 모델을 보고 따라가도 늦지 않는다.”

―생성형 AI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로 거짓 답변 문제가 제기된다.

“이른바 할루시네이션(환각) 문제인데 생성형 AI는 데이터가 있으면 데이터대로 답변을 하고, 데이터가 부족하거나 없으면 확률적으로 근접한 답변을 내놓는다. 거칠게 말하면 인간이 거짓말을 하라고 명령을 내려놓은 거다. 데이터가 없다고 답변하지 않는다면 인기가 없지 않겠느냐. 이용약관에 거짓말 있을 수 있고 사용자가 판단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골라내는 생각 근육이 있어야 한다.”

―유튜브 채널 ‘디지로그 명심보감’을 만들어 꾸준히 영상을 올리고 있다. 채널을 만든 계기와 소개 및 활용 방법 등을 소개한다면.

“2017년 1월 부산지법에서 ‘혁신의 길목에 선 우리의 자세’라는 고별강연을 했는데 136만 유튜브 조회 수를 기록했다. 그 영상 길이가 100분이 넘어서 끝까지 보기가 불편하다는 피드백이 오랜 기간 있어 짧게 나누고 더 향상된 내용으로 3∼10분 이내 길이 영상을 1번에서 49번까지 만들었다. 30번부터는 주로 생성형 AI에 대한 핵심 내용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려고 했다.”

―마지막으로 요즘 사법부에 대한 비판이 많다. 재판 지연, 재판 질 저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국민, 사건 당사자, 대리인들이 이 점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매우 안타깝다. 재판 업무에 있어서 동기부여가 많이 사라진 것이 그 원인이라고 다들 이야기한다. 여러 개선책이 향후 나올 것이다. 생성형 AI를 이용한 판결문 작성 도우미 시스템을 법원 내부에 도입하면 이 문제도 쉽게 해결된다.”

김병채 기자 haasskim@munhwa.com

한국정보법학회장 역임… 차세대 사법정보화 시스템 초석

■ 강 부장판사는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이 불기 전부터 법원 내에서 최고의 정보기술(IT) 전문가로 꼽혔다. 강 부장판사는 1985년 군 복무를 하던 육군사관학교에서 중·대형 서버 컴퓨터에서 작동되는 더미터미널(데이터 처리능력 없이 데이터 입·출력 기능만 지닌 단말기)을 본 이후 독학을 시작했다. 1988년 법관 임관 이후 사비로 조립 PC를 장만해서 모든 판결문을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하고, 혼자서 취미 생활로 컴퓨터를 공부했다고 한다. 한국정보법학회장을 지냈고, 대법원 사법정보화발전위원장과 법원도서관장으로 차세대 사법정보화 시스템 초석을 다졌다.

‘본업’인 재판 업무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다. 전국 주요 법원의 민·형사 재판부를 거쳤고, 창원지법원장과 부산지법원장을 역임했다. 2015년 창원지법원장 시절에는 대법관 최종 3인 후보에 들기도 했다. 법원도서관장을 거쳐 2018년 다시 재판부로 돌아왔고, 올해 2월부터 서울고법 재정신청부 부장판사로 일하고 있다. 내년 1월 정년퇴임이 예정된 가운데 마지막 보직이다. 강 부장판사는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현업 재판장 정년 퇴임 최초 사례로 기록된다.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지만, 그에게서 여유로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재정신청 제도는 고소인·고발인이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불복하여 법원에 결정을 구하는 제도다. 강 부장판사는 “공소 제기 명령 비율이 3%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지는 않지만, 얼마 전에 구제된 피해자가 감사 편지를 보내온 사실도 있는 등 그 나름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고소인들이 검찰 처분에 불복하는 사례는 점점 많아져 재정신청부에 사건은 매달 100건씩 더 쌓이고 있는데 강 부장판사가 온 이후 1700건까지 늘어났던 사건이 1400건으로 일단 줄었다.

재판 외에 강연 스케줄도 가득했다. 9월까지 서울중앙지법, 수원지법, 국가보훈부, 행정안전부, 육군사관학교 강연이 잡혀 있고, 각종 학술대회와 세미나에서 법조 AI 관련 발표도 예정돼 있다. 아직 정년 후 계획도 없다. 강 부장판사는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해서 재판 업무에 집중할 생각”이라며 “그 이후에는 인연 따라 어떠한 일이라도 하게 되면 할 생각이고, 부수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든지 간에 디지털 격차 해소 계몽운동인 디지털 상록수교실 같은 것을 비영리 단체로 만들어 디지털 문맹 해소에 헌신하고 싶은 생각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재정신청부 부장판사를 마지막 보직으로 받은 것을 강 부장판사는 ‘운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해 1월 암으로 세상을 떠난 사법연수원 동기 고 윤성근 부장판사의 마지막 보직과 사무실을 그대로 받았기 때문이다. 강 부장판사는 윤 부장판사가 말기 암 투병을 하던 2021년 11월 윤 부장판사의 칼럼과 강연 녹취록 등을 모은 전자책 ‘법치주의를 향한 불꽃’ 발간을 주도했다. 윤 부장판사의 법치주의 정신을 알리고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된 책 출간 작업은 동기들이 뜻을 모은 후 48시간 만에 탄생했다. 일반 서점 공개와 유통 마진 없는 선진적인 출판 시스템으로 연수원 동기생 등을 통해서만 8000권을 팔아 고인의 치료비에 보탬을 줬고, 고인은 생전에 2000만 원을 사회단체에 재기부했다.

이현웅 기자 leehw@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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