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성 “‘벌거벗은 세계사’가 나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2023. 6. 29.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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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대한민국 대표 인문학 예능 tvN ‘벌거벗은 세계사’가 지난 5월 23일 100회를 맞이한 이후에도 순항하고 있다. ‘벌거벗은 세계사’는 ‘히스토리 에어라인’이라는 가상의 전용기를 타고 전 세계 곳곳을 언택트로 둘러보면서 각 나라의 명소를 살펴보고, 다양한 관점에서 우리가 몰랐던 세계의 역사를 파헤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저(低)시청률 시대’에 역사 강연으로만 3~5%대의 시청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주목받고 있다. ‘벌거벗은 세계사’가 시청자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나라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정치, 문학, 예술, 과학 등의 폭넓은 분야의 주제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전문가 강사와 수강생 역할을 하는 연예인 MC들, 매주 바뀌는 외국인 게스트들이다. MC인 이혜성은 은지원, 규현과 함께 초기부터 쭉 함께 하면서 케미를 발전시켜왔다.

이혜성은 “회당 4시간 정도 녹화해 1시간 30여분으로 편집돼 방송된다. 녹화하러 가는 날이면 방송하러 간다는 생각보다는 재밌는 인문학 강의를 공짜로 청강하러 간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혜성은 평소 역사를 좋아하고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벌거벗은 세계사’가 론칭하기 전인 2021년 말, ‘벌거벗은 세계사’를 기획하며 출연진을 섭외하려는 제작진으로부터 작은 인터뷰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 질문지에 저를 좀 어필했다. 한국사 능력 시험도 1급을 받았고, 세계사도 관심이 많다. 어릴 때부터 위인전을 많이 읽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벌거벗은 세계사’의 김형오 PD와 이윤호 PD는 “3명의 MC중 두 명은 예능적으로 센스가 있고, 지루하게 설명할 때도 웃음 한스푼을 첨가할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또 한사람은 지적이고 모범생의 이미지가 필요했다”고 말한 바 있다.

연예인 패널들을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든다. 은지원과 규현은 자신의 역할을 잘하고 있다. 지적이고 모범적 이미지에 이혜성만큼 어울리는 패널이 없다.

게다가 이혜성은 교수가 긴 시간 사안에 대해 설명하면, 중간에 이를 짧고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멘트를 투척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역할도 맡고 있다. 이혜성은 교수가 강의중간 수시로 내는 퀴즈를 가장 잘 맞히는 걸로도 유명하다. 어떨 때는 답을 알고 있는데도 재밌는 오답을 내놓는 것 같을 때도 있다.

무엇보다 이혜성은 ‘벌거벗은 세계사’ 출연 전후 달라진 점이 너무나 많다고 했다.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배운 내용들이 일상생활에서 떠오를 때가 많다. 예를 들면 미술작품을 보거나 클래식 음악을 접할 때, 나라 간 분쟁에 관련된 기사를 볼 때 우리 프로그램에서 배운 내용들이 연상돼 뿌듯할 때가 많다. 일상 속의 세계사랄까요.”

이혜성은 ‘연인 클로델을 파멸로 이끈 천재 조각가 로댕’ 강의를 듣고 영화 ‘카미유 클로델’을 봤다. 유방과 항우편 강의를 듣고 ‘패왕별희’에 대한 관심이 생겨 보게됐고, 자이니치 코리아 등 일본사의 박삼현 건국대 교수 강의후 OTT 시리즈물 ‘파친코’도 봤다고 했다.

“이제는 역사를 찾아보게 된다.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2차대전과 나치, A급 전범 이야기가 나왔다. 최근에도 오픈런 행렬이 이어진 샤넬의 창시자인 코코 샤넬에도 관심이 생겨 역사를 찾아봤는데, 2차대전때 나치에 협조한 전력이 나오더라. 제가 생각해보지 못한 내용이 나와 놀라기도 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도날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에 대한 강의도 들었다. 평소 트럼프는 왜 항상 막말을 할까? 왜 바보같이 인종차별하는 말을 할까? 이런 점들이 궁금했는데, 강의를 듣고 확실히 알게됐다. 트럼프의 악명높은 변호사가 ‘무명보다 악명이 낫다’고 조언했다. 그런 식으로 어그로를 끄는 게 낫다. 어떤 식으로 해도 적은 생긴다. 트럼프는 확실한 지지자와 반대파를 만드는 방식이다. ‘벌거벗은~’은 이렇게 그 사람 행동의 맥락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혜성은 ‘벌거벗은 세계사’를 통해 인생에 대한 위로로 많이 받는다고 밝혔다. “역사를 통해 위로받는다면 조금 의아하게 볼 수도 있다. 역사의 판도를 바꾼 처칠 같은 위인도 평생 우울증을 달고 살면서 그 우울증에 ‘검은 개’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인류 역사를 뒤바꿀만한 결단을 내린 사람도 평생 우울증을 달고 살았다는 사실은 위안을 줬다. 또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1000통 가까이 되는 편지를 보내서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점이 저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연인에게도 보내기 어려운 편지 천통이다.”

이혜성은 “링컨도 무시 당하던 시골뜨기로 계속 실패를 거쳐 위대한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면서 “실패했던 것까지 같이 배우니까 인생에서 ‘버티기’가 중요함을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베토벤편도 잘 들었다. 많은 교향곡을 쓴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완전히 청력을 잃고 쓴게 9번 ‘합창’이다. 녹화후 차안에서 ‘합창’을 들으면서 집에 갔다. 그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그전에는 라디오에서 클래식 음악이 나와도 별 느낌이 없었다. 청력을 잃어 피아노의 진동을 느끼고 썼다고 했다. 내가 얼마나 좁은 세상에서 살고있나? 안보이던 것도 보이고, 안들리는 것도 들리고, 채도가 높아진듯 하다. 1시간이 넘는 ‘합창’을 전체로 들은 게 처음이다. 과거에는 4악장, 이런 식으로 들었다면, 청력을 잃고 어떻게 음악을 만들었을까를 생각하고 전체를 들었더니 베토벤의 고뇌가 더 느껴졌다.”

이혜성은 우스꽝스러운 몸개그로만 알았던 찰리 채플린이 ‘독재자’에서 감히 당대 최고의 권력인 히틀러를 조롱할 수 있었던 힘을 지닌 사람이었고, 좌파로 몰려 CIA로부터 추방돼 스위스에서 말년을 보낸 것은 새롭게 안 사실이라고 했다.

“‘벌거벗은 세계사’의 장점은 위인의 업적에 대해 미화된 부분을 배우는 게 아니라, 그 이면을 다룬다는 점이다. 한 인물이 큰 일을 이루기 전에 어떤 실패가 있었고, 여자관계는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인도독립의 아버지 비폭력주의자 간디도 젊은 시절 도둑질, 매춘, 자살시도까지 한 흑역사가 있었다. 항상 좋은 것만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게 때로는 교훈과 위로를 주기도 한다.”

이혜성과 ‘벌거벗은 세계사’ 이야기를 나누면 끝이 없다. 그는 “상품 브랜드도 역사를 알게되면 충성도가 높아지는 것처럼 ‘벌거벗은 세계사’에 대한 인지도도 많이 높아졌다”면서 “단순히 세계사만 다루는 게 아니라, 커피, 챗gpt도 다루고, 오래할 수 있다. 와인, 맥주의 역사. 모든 것의 역사를 다 할 수 있다”고 했다.

이혜성은 “최근 방송한 아문센과 스콧의 남극탐험 대결편은 무엇보다 드라마틱했다. 영국과 노르웨이의 자존심을 걸고 경쟁해 결국 남극도달을 쉽게해주는 기술자 위주로 탐험대를 꾸린 노르웨이의 아문센이 먼저 남극점에 도착했지만, 65명중 12명의 과학자를 대동한 스콧 탐험대는 남극의 기상, 해양, 지질, 동물학 등에 이르기까지 남극탐사의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며 남극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 그들은 경쟁을 했다기 보다 자신만의 레이스를 한 것이다”면서 “남극을 꼭 가고싶다”고 했다.

이혜성은 “안토니 가우디편을 봤는데, 바르셀로나를 못가본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상태에서 갔다면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고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가우디가 건물을 올리기 위해 의뢰인과, 또 시청과 싸워 얻어낸 값진 결과물이다”면서 “가우디가 설계한 건축물은 순서가 있다. 가우디의 예술관이 진화해간 순서대로 여행을 하고싶다”고 전하기도 했다.

미국의 총기 소지 문제도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왜 총기사고가 계속 일어나는데 불법화를 못하지”라는 의문을 가지고 봤다고 한다. “서부개척부터 총을 가지고 스스로를 지켜야 했고, 이제는 정치적인 로비 문제와 겹쳐있다고 했다. 현재의 일은 과거에서 비롯된 게 많았다. 에디슨 시절 살았으며 교류 전기를 사업화했던 니콜로 테슬러(1856~1943) 시절에도 전기자동차가 있었다는 사실도 새로 알게됐다.”

이혜성은 신혼여행지로는 찰스 다윈편에서 새 부리 관련 연구로 등장했던 갈라파고스를 꼭 가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책 관련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거다.

“제 유튜브명이 ‘혜성책방’인데 요즘은 업로드를 못하고 있지만, 책 관련 프로그램이 생긴다면 꼭 참여하고 싶다. 우리 나라는 ‘기생충’ ‘오징어 게임’을 만들어낸 문화강국인데 연평균 독서량은 매우 적게 나오는 등 독서만 등한시한다. 프랑스 같은 예술 강국도 책을 읽고 철학 토론이 자연스럽고 이뤄지는데, 그런 게 국력의 큰 기반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유튜브와 틱톡 등 갈수록 숏폼이 유행하는데, 긴 분량의 책, 깊이감 있는 책 읽기도 함께 투 트랙으로 갔으면 좋겠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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