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TV CHOSUN, ART CHOSUN '아트 Pick 30'-1]'침묵의 화가' 윤형근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2023. 6. 2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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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현대미술가 30명 선정 작업 세계 소개
7월12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 개막
윤형근, Burnt Umber _ Ultramarine Blue, 1992, Oil on linen, 116.5x91.2cm(unframed) *재판매 및 DB 금지


국내 최초 미디어 연합 전시 ‘Art Pick(아트픽) 30’전이 오는 7월12일 오후 3시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에서 개막한다. 뉴시스와 TV CHOSUN, ART CHOSUN이 공동 주최해 국내 주목 받는 현대미술가 30인을 한자리에 모은 이 전시는 국내 최대 민간통신사와 국내 최고 종합편성채널이 선정한 작가들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참여하는 작가와 작업세계를 소개한다.<편집자주>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추상화가 故 윤형근(1928~2007)은 '침묵의 화가'로 불린다. 그림은 묵직하다. 쉽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다. 형상을 절제한 채 짙은 청색과 다갈색을 기조로 수평 혹은 수직의 획만을 허용한 그의 작업은 조용하면서도 현대적인 세련미를 가지고 있다. 색 띠에서 번져 나오는 선염의 미묘한 진행은 화면에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게 특징이다.

면포나 마포 그대로의 표면 위에 하늘을 뜻하는 청색(Blue)과 땅의 색인 암갈색(Umber)을 섞어 만든 ‘오묘한 검정색’을 큰 붓으로 푹 찍어 내려 그은 것들이다.

누리끼리하고 검은 화면의 그림을 작가는 스스로 ‘천지문(天地門)’이라고 명명했다. '천지문'이라 지은 이유에 대해 1977년 1월 "블루(Blue)는 하늘이요 엄버(Umber)는 땅의 빛깔이다. 그래서 천지라 했고 내 그림의 구도는 문(門)이다."는 일기를 남겼다.

처음부터 어두운 작업은 아니었다. 그의 스승이자 장인인 수화 김환기(1913~1974)의 영향을 받아 밝은 색채를 사용했었다. 작업이 변한 건 1973년 ‘반공법 위반’의 누명을 쓰고 서대문형무소를 다녀온 후 색채를 잃게 됐다. 누런 마포에 검은빛의 그림은 말이 없이 점잖고 진중한그와 닮았다. 그러나 그는 어두운 시대에 저항하며 울분과 서러움을 삭이며 삶을 살아냈다.

윤형근은 1977년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내 그림은 잔소리를 싹 뺀 외마디소리를 그린다. 화폭 양쪽에 굵은 막대기처럼 죽 내려 긋는다. 물감과 널찍한 붓 그리고 기름, 면포나 마포만이 내 작품의 소재다. ...왜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깨끗한 작업과정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젊은 시절 전란 속에서 살아오다 보니 안정된 화실에서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다."

2018년 사후 11년 만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첫 회고전을 기획한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윤형근의 작품은 김환기의 것과는 달리 하늘에서 노닐지 않는다면서 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는 서정을 대신해서 그의 흙 빛깔 작품들은 훨씬 더 인간의 피와 땀을 기록한 것"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윤형근 작품은 간결해서 '잔소리'를 찾을 수 없다. 색채는 엄버와 블루 두가지뿐. 천조차도 평범한 마포나 면포일 뿐이며, 불투명한 백색 도료를 더하지 않은 그대로의 표면에 슬쩍 바른 것이다. 후기 작품은 한층 더 간결해져 색채는 미묘한 차이가 제거된 순수한 검정색으로 변했다. '회화라든가 표현이라든가 형상이라든가 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지각 너머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같은 그림이다.

윤형근은 K아트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한국의 대표 추상화가다. 미술시장에서도 단색화 급부상으로 작품 값이 20배 정도 상승한 '블루칩 작가'로 꼽힌다. 사후에도 세계 유명 미술관과 화랑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포투니미술관(Palazzo Fortuny)에서 열렸던 기념비적인 회고전에 이어 4년여 만에 영국 헤이스팅스 컨템포러리서에서 첫 개인전을 10월1일까지 개최한다. 올해 1월 세계적인 화랑인 데이비즈 즈워너 갤러리 파리점에서 새해 첫 전시로 개막, 긴 줄이 늘어서는 등 첫날 1000여 명이 관람 화제가 된 바 있다. 방탄소년단 리더 RM이 좋아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윤형근, Umber-Blue, 1989~92, Oil on linen, 100.2x65.5cm(unfram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생전 윤형근의 서교동 아틀리에 모습.아래 사진은 윤형근(1928~2007)이 1989년 서교동 화실 작품앞에서 찍은 생전 모습.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추상화가 윤형근(Yoon Hyung-Geun 1928~2007)은?

1928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6남2녀 차남으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참혹했던 역사적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다. 파평윤씨 문정공파 대장손으로 아버지 윤용한은 경성고보 출신 지식인이었지만 식민지 시기 낙향, 서예와 사군자를 그렸던 문인화가였다. 1945년 청주상고를 졸업한 후 미원금융조합에 취직했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어 사직서를 내고 지나가는 트럭을 잡아 가출하듯 서울로 상경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1회 입학생이 되면서 스승인 김환기와 인연이 이어졌다. 반골기질이 강했던 그는 미군정청의 ‘국립 서울대 설립안’에 반대했다가 제적됐고, 이후 홍익대학교로 편입할 때에도 김환기가 그를 이끌었다. 그러다 1960년 윤형근이 김환기의 장녀 김영숙과 결혼함으로써, 두 사람은 장인-사위의 관계가 되었다. 그러나 윤형근은 평생 김환기를 ‘장인’이 아닌 ‘아버지’라고 불렀으며, 김환기 또한 윤형근을 신뢰와 존중으로 대했다고 알려져있다.
1974년 7월 뉴욕에서 타계한 김환기의 죽음을 통보받고 윤형근은 "너무나 불쌍하고 뭔지 모르게 한없이 원통해서 밤새도록 통곡을 했고" 죽음같은 고독속으로 빠져들었다. "나와 나의 그림도 그와 같이 될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장인의 죽음에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고, 허무할 소다"라고 일기를 썼던 그도 2007년 12월 28일 담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9세였다.

‘Art Pick(아트픽) 30’전 참여 작가

윤형근, 김창열, 박서보, 하종현, 최명영, 이강소, 오세열, 김근태, 민병헌, 이 배, 김영리, 권여현, 김찬일, 최영욱, 김현식, 함명수, 손진아, 김남표, 정영주, 강민수, 하태임, 이경미, 박병일, 곽철안, 이사라, 채지민, 김호정, 권하나, 다다즈, 전아현.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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