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관두지 말고, 일을 열심히 하지 마…그러려고 했는데

한겨레 2023. 6. 2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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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조용한 사직’과 행복
일 적게 할수록 행복해지는 건 아니었다
다수는 여가 이용해 행복 느끼는 법 몰라
84년 장기연구 결과 행복-일 분리 못 해
게티이미지뱅크

Z세대는 직업에서 성취감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여가시간이 늘어난다고 더 행복해질까? 미국 하버드대학의 행복 연구는 행복한 삶에서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케르스틴 쿨만 Kerstin Kullmann <슈피겔> 기자

테레제 크루제(37)는 자신의 직업에 관해 이야기할 때 ‘소중한’이나 ‘열정’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근무시간을 정확히 기록하고 초과근무를 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크루제는 심리치료사다.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일하는 그는 삶의 위기에 처한 사람의 집을 방문하거나, 진료소에서 우울증, 공포증,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을 상담한다. 일에서 오는 과부하는 크루제 개인뿐 아니라 많은 내담자가 겪고 있는 문제다. 크루제는 ‘직업이 돈 이상의 것을 가져다주어야 하는지’와 같은 직업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얼마 전 20대 초반의 환자 한 명이 물었다.

“제가 그냥 일하는 것이 왜 충분하지 않지요? 꼭 즐겁게 일해야만 하나요? 그래 봤자 일만 더 하는 꼴이 아닌가요?”

■ 꼭 즐겁게 일해야 하나요?

크루제는 직업에서 느끼는 성취감에 의미를 두지 않는 젊은이를 점점 더 많이 마주하고 있다. 그는 “근무시간도 좋은 시간”이라고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Z세대는 직업에 헌신하는 것과 자신을 위한 시간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을 어렵게 생각한다. 새 천 년이 시작할 때 태어난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와 다른 생각을 한다. 연구지 <독일의 젊은이>에 자주 등장하는 젊은 세대의 이야기는 이러한 생각을 잘 보여준다.

라인란트팔츠주에 사는 한 젊은 직장인은 연구지에 “불확실한 미래보다 현재를 위해 산다”고 말했다. 니더작센주에 사는 한 젊은이(28) 역시 “사람들은 미래를 제대로 계획할 수 없다. 예상치 못했던 많은 일이 일어나고 그 일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매달 천천히 자신의 방식대로 일하고, 그저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젊은이는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공부도 한다.

삶의 목표를 보면 젊은 세대와 1946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사이에는 간극이 크다. 베이비부머는 가족을 꾸리고 자신의 집을 짓는 것 이외에 직업에서도 목표를 세웠다. 베이비붐 세대의 인사부 간부들은 젊은이들이 책임감이 적다고 생각한다. 5일 꼬박 일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초과근무 시간은 피하려 한다고 불평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선 직업 자체보다 직장에서의 풍요로운 인간관계가 중요하다고 학자들은 지적한다. 독일 의사들이 2019년 4월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펼침막을 내걸고 파업을 경고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로이터

1995~2010년에 태어난 Z세대의 대부분이 아직 가족을 꾸리지 않았다. 이들은 후일 아이를 돌보거나 다른 돌봄을 할 때 중요한, 근무 이외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을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순히 삶에서 직장에서의 일이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18~24살 중 58%는 삶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된다면 기꺼이 일을 그만둘 의향이 있다. 일자리 소개 전문기업 란트스타트(Randstad)가 3만5천명의 젊은 여성과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 중 38%는 적어도 한 번은 일을 그만둔 경험이 있다. 

최근 미국인 브라이언 크릴리 커리어코치(진로상담을 하고 조언해주는 사람)는 소셜미디어 틱톡에서 한 가지 대안을 내놓았다. 좋아하지 않는 직장을 그만두지 말고 “그냥 열심히 일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트렌드는 규정대로 할 일만 하는 것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수많은 젊은이가 비디오와 포스팅에서 조용한 사직에 지지를 표현했다.

■ 행복한 사람 다수는 일·동료와 긍정적 관계

미국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로버트 월딩어는 이 추세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직업을 통해 얻는 만족감은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데 “정말로 큰”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데이터로 이를 입증했다. 

월딩어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성인발달연구’를 지휘한다. 1939년부터 연구자들은 설문을 통해 어떤 요소가 행복한 삶에 중요한지 연구했다. 이 연구는 대규모 장기 프로젝트로 여러 세대에 걸쳐 진행했으며 연구 결과는 명확하다. 이 연구는 삶과 직업을 분리한다는 생각은 절대로 성립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개인적인 삶을 무시하면서 어떻게 직업에서 성취감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반대로 일을 적게 할수록 행복해진다는 것은 사실일까? 독일의 교육학자이자 심리치료사인 가브리엘 폴(70)은 5명의 자녀와 16명의 손주를 두고 있으며, 독일 만하임에 있는 연구소에서 아동과 청년을 대상으로 일한다. 최근 라디오 방송에서 그는 진행자가 “주말까지 남은 시간을 행복으로 가는 카운트다운처럼 화요일부터 세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정말로 의미 있는 여가시간은 저절로 올까?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젊은이들은 직업의 의미에 더 회의적으로 생각한다. 이탈리아 로마에 살고 있는 프란체스카 발라구사가 팬데믹으로 전국이 봉쇄된 2020년 3월16일 온라인으로 집 안에서 요가를 하고 있다. 로이터

폴은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연구소에서 그는 이전보다 “삶에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는 환자를 더 자주 만난다. 여가시간을 갖고 싶은 열망은 크지만, 많은 이가 여가를 이용해 행복을 느끼는 법을 전혀 알지 못한다.

폴이 보기에 삶의 의미가 실종된 것은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용어에서 시작한다. “어떻게 이 둘을 분리하나? 일을 하지 않는다면 삶을 온전히 가질 수 있을까?” 폴은 많은 직업에서 사람들이 혹사당한다고 느끼며, 점점 더 직업에 불만을 느낀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특히 사회복지 분야인 병원, 요양원, 유치원 교사 등이 그러하다. 폴은 “이 중요한 직업들이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이 직업의 가치를 높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데 직업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항상 직업 그 자체에서 만족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폴은 생각한다. 일하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데서 행복을 찾을 수도 있다. 왜 Z세대가 이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지 의문이라고 폴은 말했다.

이 의문에 클라우스 후렐만(79)은 답할 수 있을까? 사회학자인 그는 지난 몇십 년간 젊은이들의 태도, 소망, 두려움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연구했다. 후렐만은 독일 베를린 허티스쿨에서 공공보건을 가르치는 교수다. 2002년부터 그는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쉘 청년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6개월마다 나오는 연구지 <독일의 젊은이> 연구에도 참여한다.

■ Z세대, 노동시장 영구적으로 바꿀 수도

그렇다면 Z세대는 어떻게 지내는가? “정말 좋지 않다”고 후렐만은 말했다. 그와 동료들은 한 번도 지금처럼 청소년이 심리문제를 많이 가지고 있는 적을 보지 못했다. “한 학년마다 10% 정도는 정신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태이며 도움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는 2011년부터 ‘행복지도’(Happiness Atlas)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해 독일인의 심리 상태를 조사했다. 2022년 16살 이상 1만1450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Z세대는 지난 몇 년간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이 만족감을 잃었다.

후렐만은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젊은이들이 개인시간만이 유일하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직장에서 그저 기계적으로 할 일만 하고 온다”며 젊은이들이 직업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른 후과가 있기 마련이다. 후렐만은 Z세대가 노동시장을 영구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 Z세대가 인구학으로 더 긴 영향력을 가질 것이다.” 베이비부머 두 명이 사라지면 젊은이 한 명이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 그렇기에 젊은 세대는 일자리에 대해 협상하게 되고, 직업이 개인생활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도록 이를 활용한다. 후렐만은 “새로운 세대는 마치 ‘번아웃 차단장치’가 내재돼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디지털기기와 함께 성장했고 하루 24시간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 “하지만 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삶 만족도’와 ‘삶의 질’이라는 용어는 Z세대에 이론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후렐만은 지적했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이를 현실로 만들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여유시간에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한 기준이 너무 높다.” 후렐만은 결국 아주 소수만 이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추정한다.

■ 인생 뜻대로 되지 않아도 가장 행복한 사람

어떻게 하면 직장과 개인생활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미국 하버드대학 정신과 교수인 월딩어는 저서 <행복한 삶>(The Good Life)에서 자신의 연구에서 얻은 중요한 발견을 요약했다.

놀랍게도 그는 일을 많이 줄이고 가족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집중하라고 권장하지 않았다. 월딩어는 이 두 가지를 절충하는 방안을 추천한다. 이는 어떤 직업에서 일하는지와는 상관없다. 월딩어는 “우리 연구를 살펴보면 행복한 사람들 다수는 자신이 하는 일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직장 동료들과도 마찬가지였다”고 전했다. “타이어를 팔든 유치원에서 가르치든 외과수술을 하든 상관없다.”

미국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로버트 월딩어가 테드에서 직업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테드 갈무리

레오 데마르코의 삶이 전형적인 예다. 1946년부터 그는 하버드대학 설문 연구에 응했다. 그는 중산층 가정 출신이고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했으며 해군이었다. 그리고 성공적인 언론인과 저술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다르게 흘러갔다.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는 병이 들었다. 데마르코는 미국 버몬트주로 이사해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는 결혼하고 아이들을 길렀다. 저술가가 꿈이었지만 책을 쓰지 못한 채 40년 동안 교직에서 일했다.

데이터에 따르면, 데마르코는 현재까지 연구에 참여한 사람 중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월딩어는 데마르코가 직업에서의 성취감과 가족과 함께하는 인생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을 이뤘다고 서술했다. 그는 네 명의 딸과 낚시를 가곤 한다. 가르치는 학생들을 향한 헌신도 엄청나다. 직업은 데마르코의 행복한 삶에서 의미가 크다.

영국 직장인들이 2021년 9월 런던브리지를 건너 런던 금융지구로 출근하고 있다. 직업을 통해 얻는 만족감은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정말로 큰 역할을 한다고 연구자들은 설명한다. 로이터

일을 향한 찬가는 놀랍도록 많다. 그런데도 죽어가는 순간 자신이 너무 일을 조금 했다고 후회하는 이는 없다. 그렇지 않은가? 노년층에서 직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월딩어는 말한다. 하지만 그 이유가 예상했던 답변과는 다르다. “우리가 80대에게 ‘어떤 면에서 당신의 삶이 가장 자랑스럽냐’고 물으면 그들은 ‘내가 사장이었던 것’이나 ‘부자여서, 유명해서’라고 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직장에서 좋은 상사, 친구, 멘토였던 점을 자랑스러워했다. 사람들은 풍요로운 관계를 맺었을 때 직장에서 보냈던 시간을 충만했다고 여긴다.

■ 죽기 전, 내 삶이 자랑스러웠을 때

하지만 지루한 직업에도 이 점이 해당되는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계속 착취당하리라 예상되는 직업에서도 그러한가? 월딩어는 “많은 사람이 지루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하버드 교수도 마찬가지다”라며 “나는 운이 좋았다. 내가 하는 일이 좋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도 직장을 바꿨다. 그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동료들이 일을 그만두어야 했을 때다. 그러므로 직업에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 그저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는 사람에게 월딩어는 이렇게 조언한다. “직장에 있는 동안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세요.”

ⓒ Der Spiegel 2023년 제12호
Lob Der Arbeit
번역 이상익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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