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동공원 오리 가리키며, 맹목적 우애 일깨워준 ‘선한 형님’[고맙습니다]

2023. 6. 2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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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맙습니다 - 셋째 형님 김재삼
오리들이 한가롭게 노는 율동공원을 배경으로 필자와 형님 김재삼(오른쪽) 씨가 정겹게 미소 지으며 서 있다.

앞산을 넘지 못한 바람이 뒤돌아 오면 오리들은 날개를 펴고 더위를 씻는다. 암컷이 한눈팔까 바람조차 두려운 수컷은 보초병처럼 경계가 매섭다. 가끔 떠돌이 수컷이 암컷에게 수작을 부리면 수컷은 잽싸게 다가가 사정없이 쪼아대며 한바탕 물살을 뒤흔든다. 저쪽에서 헤엄치며 놀던 오리들, “저것 봐, 저것 봐, 당신도 한눈팔지 마. 한눈팔면 저렇게 돼.” 하며 집안 단속에 분주한 오리들은 율동공원의 원주민들이다.

나는 율동공원을 가끔 찾는다. 30년째 공원 옆에 살고 계신 형님과 함께 도란도란 둘레길을 걷고 차를 마시며 오리들의 사생활을 엿듣는다. 형님은 오리들의 생태에 관해 박사가 되셨다.

“봐봐! 동생, 저 오리는 원래 부부였거든. 근데 덩치 큰 저놈이 암놈을 차지해 버리니까 저 수컷은 주위를 빙빙 돌고 있잖아. 야! 오리들도 참 무서워. 결국 힘센 놈이 쟁취하는 거야.”

“우와! 그래요? 그럼 쟤는 졸지에 외톨이가 됐네.”

“그렇지, 이제 늙어서 힘이 부치니까 밀려나는 거지.”

형님은 신바람 난 일타강사처럼 공원 오리들의 내력을 줄줄 외셨다. 내 눈에는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데 형님은 누가 누구의 짝이었는지, 누가 먼저 배신하고 도망갔는지, 암놈 뒤통수는 왜 털이 다 빠졌는지, 어미를 뒤따르는 새끼들의 아빠는 또 누구였는지까지 찍어내는 관찰력이 대단하셨다. 처음엔 신기했으나 같은 레퍼토리를 너무 오래 설명해 지루했지만 이미 지르박에서 탱고로 넘어가 버려 끊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먼 산을 바라보자 형님은 그때야 눈치를 챘는지 일타 오리 강의를 마무리하셨다.

“와 형님, 성남시청에 율동공원 일타강사 자리 하나 신청하시죠?”

우리는 해맑게 웃으며 다시 걸었다. 공원은 늘 사람들로 붐볐다. 너른 정원과 야외무대 그리고 책을 볼 수 있는 책 테마파크까지 있어 가족 나들이에 안성맞춤이다. 군데군데 아들 며느리 손주 3대가 모여 정겨운 시간을 보내는 풍경은 이곳만의 특별한 자랑이다. 형님은 거동이 불편한 장모님을 휠체어로 모시고 자주 공원 산책을 하셨다. 그때마다 장모님은 사위가 아니라 아들이라고 칭찬하셨다 한다. 그 후 거동이 점점 불편해진 장모님은 결국 침대에 누워 생활하셨다. 기억력이 떨어지고 음식물을 삼키지 못해 혼미한 정신에도 형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하루는 형님이 문화센터에서 배운 가곡을 불러드렸더니 참 잘했다며 가만히 눈을 깜빡하셨다 한다. 그 후 장모님은 돌아가시고 병간호에 지쳤던 형님은 상중에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병원 치료를 받았다. 착한 인성에 인정까지 많으신 형님은 부모에 대한 효와 형제의 우애가 지극하다.

어느 날 형님과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우애와 효에 대하여 의견을 나눴다. 효에 대한 생각은 똑같았으나 우애에 대해서는 견해가 서로 달랐다. 현실주의 성향이 강한 나는 선택적 우애를 강조했으나 분별이 앞서면 우애는 뒤선다고 정의한 형님은 맹목적 우애를 주장하셨다. 형제란 세상 밖으로 나오며 분리됐을 뿐, 부모 몸 안에 있을 땐 한 몸이었다. 그 한 몸이었던 형제가 우애보다 돈을 우선하는 것에 대하여 나는 심한 반감을 갖는 반면, 형님은 그와 나를 낳은 사람은 한 부모요, 고로 그와 나는 한 몸으로 그를 부정함은 곧 나를 부정함과 다르지 않음에 미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형제간에 돈 때문에 의절하고 고발까지 하는 작태에 대하여 나는 선택적 우애가 맞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 모든 일은 다 욕심 때문이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형제라고 해서 무조건 받고자 하는 것도 욕심이요, 말로 받은 은혜를 되로 갚으며 생색내는 것도 욕심 때문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차려준 두레밥상은 사랑의 밥상이었다. 세 살 터울로 키를 키운 보리밥은 정이요, 사랑의 눈빛이었다. 어디로 갔을까. 그 정은… 그 눈빛은…. 삭막한 7월에도 청포도는 익어간다. 아이야, 굳이 은쟁반까지야. 오늘은 내 두 손으로 또옥 따서 사랑하는 형님께 드려야겠다.

김재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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