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아있냐"…천안함 생존자의 눈물·이태원 유족의 고통[악플러의 동굴]③

유민주 기자 2023. 6. 2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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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생존자 최원일 전 함장·딸 잃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
진영논리에 오염된 말들의 지옥도…두 번 우는 유족·피해자

[편집자주] 악플러는 영미권에서 '인터넷 트롤'(Internet troll)이라 불린다. 트롤은 스칸디나비아 등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 대부분 동굴에 살고 있다. 트롤은 인간을 공격하지만 햇볕을 쬐면 돌이 되거나 터진다. '현실 세계' 속 트롤도 양지가 아닌 음지를 지향한다. 악플러들이 온라인에 적어 올린 글은 흉기가 돼 누군가의 삶을 위협한다. 이들은 왜 악플을 다는 걸까. <뉴스1>이 직접 만나 악플러들의 '이중생활'을 들어봤다.

천안함 전 함장인 최원일 천안함생존자회장이 21일 서울 용산구 호국보훈연구소 벽에 걸린 천안함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2023.6.21/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2010년 3월26일, 천안함에 타고 있던 승조원 104명 중 46명은 폭침으로 바다에 묻혔다. 당시 천안함장이었던 최원일 326호국보훈연구소장(55)은 배를 끝까지 지키다 구조됐다.

그는 생존자이자 피해자이지만 "왜 아직 죽지 않았느냐"는 끔찍한 악플에 13년째 시달리고 있다. 최 소장은 천안함 폭침 후 악플 세례에 '산송장'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악플러도 일반 시민이고 서민이니까 그냥 놔두려고 했는데 그렇게 둘 일이 아니더라고요. 전사자와 생존 병사들의 아이들이 이제 중학생이에요. 그 아이들이 그 댓글들을 모두 읽어요. 악플을 그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명확해졌습니다."

◇"대인기피증·PTSD·알코올 중독…이런 사람들에 2·3차 가해"

2021년 2월28일 예비역 해군 대령으로 군복을 벗은 최 소장은 이후 2년간 악플러들을 상대로 끝이 보이지 않는 '전투'를 하고 있다.

그의 확고한 다짐은 사무실 한쪽에 놓인 책장에서 확인됐다. 천안함과 관련된 책 10여권이 한 칸을 차지했다. 그중 절반은 천안함 음모론에 관한 서적이었다. 천안함 음모론을 펼치는 이들이 진영 논리에 매몰돼 야만적인 악플을 쏟아내고 있다고 본 것이다.

최 소장은 올해 3월부터 모아온 악플 캡처본들과 신고 건 등을 정리해 지난 16일 모욕 및 명예훼손 혐의로 악플러들을 경찰에 고소했다. 그는 익명의 악플러들이 특정된다면 직접 찾아가 '왜 그랬느냐'고 묻고 싶은 심정이다.

"아직도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어떤 사람의 눈빛을 보면 '저 사람이 나에게 이상한 말(악플)을 한 사람이 아닌가'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대인 기피증이 생기는거죠."

천안함 전 함장인 최원일 천안함생존자회장이 21일 서울 용산구 호국보훈연구소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3.6.21/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 대부분은 전장 스트레스로 생기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비롯해 알코올 중독과 분노 조절 장애 등으로 힘겨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최 소장은 "그런 고통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악플러들이 2차·3차 가해를 하는 것"이라며 "가능만 하다면 악플러의 가족에게 그 사람이 어떤 말을 인터넷에 하고 다니는지 알려준 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싶다"고 했다.

악플러 처벌을 위해선 피해자들이 직접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 최 소장이 상식에 어긋나고 터무니없는 악플들을 모두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는 증거 수집 과정에서 유가족과 지인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최 소장은 악플 근절을 위해 "댓글 실명화가 하루빨리 도입돼야 한다"는 지론을 펼쳤다. 그간 경험을 비춰 봤을 때 악플러들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알려지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최 소장은 "유튜브나 페이스북도 국제 공조를 통해 부계정 같은 것을 없애고 전체 실명화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숨 안 쉬어져 응급실 실려 가…그 눈빛 잊히지 않아"

한국에서 참사가 발생하면 익명성이 보장된 온라인에서 또 다른 참극이 벌어진다. 진영 논리에 매몰된 말들의 지옥도가 펼쳐진다. 유족과 생존자들이 2차 가해가 명백한 독설에 고통받는 것이다.

<뉴스1>이 실제로 만난 악플 피해자들은 모두 메말라가는 모습이었다. 주변 사람은 물론 국가 시스템과 언론 등 모든 것을 신뢰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청 앞에서 만난 김은희씨(49·가명)는 지난해 10월29일 용산에서 하나밖에 없는 딸 고(故) 박수연씨(21·가명)를 떠나보낸 뒤 아예 뉴스를 끊었다. 이태원 참사 발생이 1년이 채 안 됐으나 뉴스 댓글 공간에선 희생자들을 매도하고 심지어 성희롱하는 악플들이 활개 치고 있어서다.

"어떤 사람이 '왜 자식 갖고 장사하냐'고 댓글을 달았어요. 밖에서도 그런 말 들으면 몸에 힘이 탁 풀려요. 절대 그 눈빛이 잊히지 않아요. 처음에는 숨도 잘 안 쉬어져서 응급실에 실려 갔어요."

지난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구청 앞에서 만난 이태원 유가족 김모씨(49)가 살아생전 딸이 작성했던 노트의 문구를 보여주고 있다. 김씨의 딸 고(故) 박수연(21·가명)씨는 삶의 원동력은 '엄마'라고 적었다.

김씨는 최소한의 상식이 회복하길 바라고 있다.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모두 이해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욕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1시간이 넘도록 딸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았는지 설명했다. 마음 속에 꼭꼭 담아뒀던 악플 내용을 꺼내 온 힘을 다해 반박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아르바이트하며 일찍 철 들었던 딸은 길거리에 쓰러진 주취자도 모른 척하지 못할 만큼 이타적인 성격의 간호대생이었다고 한다.

"악플은 사람을 생매장하는 것과 같아요. 어느 순간에 누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인데, 그렇게 악플을 달면서 자기 가족은 행복하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봐요"

김씨는 '삶의 원동력은 엄마'라는 딸의 메모를 보고 힘을 얻고 있다. 늘 어른스러웠던 딸에게 역으로 칭찬을 들었던 김씨는 이제 매일 길거리로 나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친다. 그러는 동안 익명의 다수는 실시간으로 그에게 '악담'을 퍼붓는다.

김씨는 딸의 명예를 위해 세상이 바뀔 때까지 거리로 나올 것이라고 다짐했다. 진영 논리에 오염된 악플러들이 이런 김씨를 조롱하고 있다. 유족과 피해자들은 거리에서 두 번 울 수밖에 없다.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속행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자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고 있다. 2023.6.26/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youm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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