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영화제 위원장들과 나란히 앉았던 의자… 9대 영화제로 인정받아

신정선 기자 2023. 6. 2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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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75년 기획] [나의 현대사 보물] [11]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초대 집행위원장이 지난 14일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자택에서 대한민국 첫 국제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BIFF) 역사를 보여주는 ‘감독 의자’에 앉아 큐 사인을 하듯 손가락을 올려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2010년 BIFF 집행위원장 퇴임 때 에르메스가 선물한 의자, 2005년 박찬욱 봉준호 등 젊은 영화감독 모임인 ‘디렉터스컷’에서 증정한 의자, 2001년 세계국제영화제 정상회의 때 앉았던 의자다./장련성 기자

환갑을 앞두고 시작된 열애(熱愛)였다. 김동호(86) 부산국제영화제(BIFF) 초대 집행위원장이 BIFF라는 연인을 만난 날은 1995년 8월 18일. 서울시청 앞 플라자호텔 커피숍으로 김지석 당시 부산예전 교수, 전양준 영화평론가, 이용관 경성대 교수 등이 찾아왔다. 셋은 “부산에서 국제영화제를 만들고 싶다, 집행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영화진흥공사 사장, 예술의전당 사장, 문화부 차관을 지낸 그의 인맥과 경륜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연윤리위원회(현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에서 물러나 쉬고 있던 무렵이었다.

시작은 쉽지 않았다. “영화제? 그런 걸 왜 합니까.” “서울 아니고 부산요? 거기서 되겠습니까.” 다들 안 된다고 하니 오기가 났다. 경기고 동창인 김우중 대우 회장을 통해 부인 정희자 대우개발 회장을 만나 3억원을 지원받았다.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기업인을 초청해 모금 만찬회도 열었다. 배우 김지미·남궁원·강수연 등이 참석해 2억원이 모였다. 1996년 9월13일 해운대 야외 상영장에 6층 높이 대형 스크린이 올라가며 제1회 BIFF가 개막했다. 결과는 대성공. 18만명이 몰렸다. “행사 끝나고 BIFF 직원들끼리 끌어안고 울었어요. 그런 감격이 다시 올까 싶습니다.”

부산영화제 성공을 상징하는 감독 의자 3개

김 전 위원장은 ‘한국 영화의 외교관’ ‘BIFF의 아버지’로 불린다. 임권택 감독은 그를 ‘괴물도 같고 인간도 같고 한편으론 그도 저도 아닌 신비한 존재인 것 같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이달 초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자택에서 만난 그는 ‘현대사 보물’로 서재에 나란히 놓인 감독 의자 3개를 꼽았다. 그는 “BIFF가 5회, 10회, 15회 됐을 때 받은 의자들”이라며 “BIFF의 성공과 한국 영화사를 동시에 말해준다”고 했다. 가장 먼저 받은 의자는 2001년 12월 독일 베를린 ‘세계국제영화제 정상회의’ 때 받은 선물이다. 베를린·베네치아 등 세계 9대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모여 단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때 앉았다. “BIFF가 출범 5년 만에 세계 9대 영화제로 인정받았다는 뿌듯함이 살아난다”고 했다.

6월 14일 오후 경기도 가람레스토랑에서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초대집행위원장이 본인이 보물로 꼽은 감독 의자 세개를 놓고 포즈를 취했다. / 장련성 기자

김 전 위원장은 그 의자에 앉아서 단편영화 ‘심사위원들(Jury)’을 찍어 감독 데뷔도 했다. 75세이던 2012년이었다. 강성 심사위원으로 강수연, 우유부단한 심사위원으로 안성기를 캐스팅해 찍었다. 마침 서울에 온 이란 감독 모센 마흐말바프 부부도 특별 출연시켰다. 그해 제10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고, 이듬해 2월 제63회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두 번째 의자는 2005년 제10회 때 박찬욱·봉준호 등 젊은 감독들의 모임인 ‘디렉터스컷’에서 그를 명예감독으로 위촉하면서 받은 것. 2010년 BIFF 집행위원장직에서 퇴임할 당시 BIFF 후원사이던 에르메스에서 증장한 수제 가죽 의자도 간직하고 있다.

국내외 영화인과 약속 적힌 수첩 50여 권

BIFF 초창기 그는 영화제를 알리기 위해 해외 이곳저곳을 다녔다. 우선 영진공 사장을 지낼 때 만났던 해외 영화인들을 부산으로 불러모았다. “그들과 만난 약속이 전부 여기 적혀 있어요.” 김 전 위원장이 가리킨 것은 50권이 넘는 수첩. 1961년 서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며 문화공보부 7급 주사로 들어가 각종 회의 발언을 기록하던 습관이 수첩 적기로 이어졌다. 1969년 국제교류국장 때 하나 장만한 것이 시작이었다. “1970년대 초반에 한 권인가 잃어버렸어요. 밤새 술 마시고 귀가하던 길이었죠. 영진공 사장 하며 영화와 인연을 맺은 후론 철저하게 간직했어요.” 그 안에는 2001년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부임한 티에리 프레모를 초청하기 위해 자비를 들여 파리로 3번 날아간 기록도 있다. 감복한 프레모는 그해 부산 노래방에서 김 전 위원장과 함께 밤새도록 노래했고, 김 전 위원장이 BIFF에서 퇴임하던 2010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부산을 찾았다.

김동호 전 위원장은 1969년부터 여러 인사들과 약속과 일정을 수첩에 빼곡히 적어왔다. 매해 한 권씩 적어온 수첩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세계적 영화제로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오종찬 기자

2001년 인도네시아 국민 배우 크리스틴 하킴을 BIFF 심사위원장으로 초빙하려 만났던 일정도 적혀있다. 하킴은 “인도네시아의 한국 식당에서 먹은 돌솥비빔밥이 무척 맛있어서 집에서 해먹어봤는데 그 맛이 안 나더라”고 했다. 그날로 당장 돌솥을 사서 인도네시아로 부쳤다. 이듬해인 2002년 하킴은 칸 영화제 심사위원이 됐다. 마침 임 감독의 ‘취화선’이 칸 경쟁 부문에 올라가 있었다. 개막 파티 때 만난 하킴의 첫마디는 “돌솥비빔밥 너무 맛있게 먹고 있어요”였다. 김 전 위원장은 다짐하듯 “취화선 좀 잘 봐주세요”라고 했다. 돌솥의 뜨거운 기운이 보태졌는지 그해 ‘취화선’은 칸 감독상을 받았다.

다시 펴보고 싶지 않은 수첩도 있다. 고(故) 강수연의 장례 일정이 적힌 지난해 수첩이다. 그는 “강수연은 제게 딸이고 친구였다”고 말했다. 강수연은 BIFF의 사회자 혹은 집행위원 등으로 해마다 부산을 찾아 ‘BIFF의 안방마님’으로 불렸다.

“이것도 빠질 수 없다”며 어루만지는 보물은 1997년 받은 트로피다. 부산 지역 교수·언론인·문화 예술인 단체인 ‘포럼 신사고’에서 수여한 ‘올해의 부산인상’이다. “포럼 내에서도 논란이 많았대요. 아무리 BIFF를 2회째 성공시켰다고 해도 부산인상을 어떻게 서울 사람한테 주느냐는 거였죠. 다행히 대다수 의견이 ‘그것이 신사고다’였대요.”

1997년 부산 언론 문화 단체인 ‘포럼 신사고’가 준 ‘올해의 부산인상’ 트로피. 서울 사람이 처음으로 받은 ‘올해의 부산인상’이었다./장련성 기자

그는 요즘 새로운 보물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주위에 알리지 않고 혼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고 있다. 주제는 ‘극장의 미래’. 올 초에 캠코더도 하나 장만했다. 지난 4월 한국을 찾은 벨기에 영화감독 다르덴 형제, 지난달 칸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만나 인터뷰를 땄다. 지난 23~25일엔 일본 도쿄와 다카사키(高崎) 등지의 독립영화관을 찾아갔다. “일본에선 극장 살리기 프로젝트가 한창이에요. OTT(동영상 서비스)로만 영화를 보면 미래가 어찌 될지. 미래 세대와 함께할 고민과 해답을 담아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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