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人] (24) 지역별 방언 성조 연구에 매진…원광대 임석규 교수

임채두 2023. 6. 25.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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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구요'는 청계천 중인들 언어…성조, 알기 쉽게 종합적으로 설명
"추론 아닌 내적 증거로 성조 연구…경북 영주·섬 언어 연구 욕심"
연구 설명하는 임석규 교수 [촬영: 임채두 기자]

[※ 편집자 주 =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지방 대학들은 존폐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대학들은 학과 통폐합, 산학협력, 연구 특성화 등으로 위기에 맞서고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도 지방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학 구성원들을 캠퍼스에서 종종 만나곤 합니다. 연합뉴스는 도내 대학들과 함께 훌륭한 연구와 성과를 보여준 교수와 연구자 또 학생들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하려고 합니다.]

(익산=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지역의 언어를 배우려면 버스정류장 주변을 공략하면 돼요."

임석규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25일 저서 '국어 성조의 이해'를 펴낸 노하우를 귀띔하면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 책은 국어의 성조 현상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관련 연구의 저변을 넓히고자 했다.

사람의 말 몇 마디에 녹아든 음의 높낮이로 어느 지역 출신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성조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했다.

임 교수는 동음탈락, 반모음화, 완전 순행 동화 등 분절 음운론(音韻論)과 연계한 연구만이 성조 현상의 본질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인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이 성조 연구의 본질을 임 교수는 예로 들어 설명했다.

1993년 발표 직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가수 강산애의 노래 '라구요'.

임 교수는 서울에서 3대째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시민들을 인터뷰해 '라고요'의 비표준어인 라구요가 1930년대 청계천 주변 중인들이 쓰던 방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삼촌을 삼춘으로, 사돈을 사둔으로 발음하는 것도 이와 유사한 예다.

충청도 출신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발음하는 '이거 느'(넣어)도 대표적인 중부지역 방언이다.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문장 '느집에 이거 읎지?'도 중부지역의 말투다.

임 교수는 그간 성조 연구에서 활용했던 이니셜 L(LOW), H(HIGH), M(MIDDLE) 등의 사용도 간소화했다.

또 우리나라 동남 지역 방언과 동북 지역 방언의 성조가 역전하는 전이지대적 성격을 지닌 곳으로 삼척(강릉)을 지목했다.

임 교수는 박사 과정에 들어간 2000년대부터 전국을 돌며 이런 현상을 몸으로 체험하고 국립국어원에서 자료를 수집한 결과를 책으로 풀어냈다.

국어 성조 현상을 쉽게 설명했다는 평가를 받은 임 교수는 한국학과 동아시아학 연구를 장려하기 위해 제정된 두계학술상을 지난달 수상했다.

그는 "중세국어 이후로 억양이 생겨나고 사라진 이유를 막연하게 추론하지 않고 내적 증거로 입증하려고 했다"며 "기존의 성조 연구는 일반인에게 너무 어려워 보다 쉽게 성조에 접근하는 데 목적을 뒀다"고 말했다.

연구 설명하는 임석규 교수 [촬영: 임채두 기자]

임 교수는 3대째 대를 이어 특정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이들을 찾아내 '진짜 방언'을 익혔다고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지역의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붙잡고 무작정 인터뷰를 하는 것이었다.

임 교수는 "오전 6시쯤 버스정류장에 가면 어르신들이 늘 읍내로 나가려는 어르신들이 있다"며 "이분들의 마음을 얻으려면 편하게 읍내로 갈 수 있도록 내 차로 모신다"고 운을 뗐다.

이어 "차 안에서 이분이 3대째 여기에 사는 주민인지 확인하고 이런저런 말을 붙이면서 억양이나 단어를 유심히 듣는다"고 덧붙였다.

지역 토박이를 찾으려면 일주일 넘게 걸릴 때도 있었다는 게 임 교수의 말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경북, 경남, 강원도 등을 돌면서 최소 특정 지역에 3일 이상 머무르며 방언을 배웠다.

임 교수는 저서 '국어 성조의 이해'의 판매 부수가 그리 높지 않으리라 예상하면서도 10여년 남은 교직 생활 동안 개정판 출간을 희망했다.

그는 "1천500년 전부터 이어온 중세국어를 이해하려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며 "외부로부터 오염되지 않아 우리말 고유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경북 영주의 언어를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천 옹진군 등 섬 지역의 억양도 추적하면서 내륙과 섬의 언어 유사성도 비교 관찰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며 아직 시들지 않은 학구열을 내보였다.

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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