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대신 열매 따먹는 회색곰···기후 위기 앞에 이기적 선택은 무죄[책과 삶]

백승찬 기자 2023. 6. 2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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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살 피하다 생식 포기한 도마뱀
산자락 서식지 바꾼 뉴기니의 열대 조류
초고속 멸종 에스컬레이터에 변신한 동물들
울타리도마뱀은 햇볕으로 체온을 조절한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허리케인 도마뱀과 플라스틱 오징어

소어 핸슨 지음·조은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348쪽 | 1만8500원

‘진화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이뤄진다’는 생각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고생물학의 많은 증거들은 인류를 포함해 오랜 기간 환경에 맞춰 조금씩 진화해온 생명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오랜 진화 기간을 기다려줄 수 없을 만큼 환경이 급격히 변화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떤 생물은 묵묵히 멸종의 운명을 맞이하겠지만, 어떤 생물은 몸을 바꿔 재빨리 환경에 적응한다. <허리케인 도마뱀과 플라스틱 오징어>는 전자를 ‘전문종’, 후자를 ‘기회주의자’라고 표현한다. 소행성 충돌과 그로 인한 기후변화로 멸종한 공룡은 전문종이겠다. 이 책은 수많은 기회주의자 생물을 소개한다. 인류의 화석연료로 초래된 기후변화, 그로 인해 진행 중인 ‘여섯번째 대멸종’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생물들이다.

회색곰=자연 다큐멘터리에서는 회색곰이 회귀하는 연어를 잡아 포식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회색곰은 동면을 위해 체중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연어 중에서도 영양이 많은 뱃살, 뇌, 어란 등의 부위만 골라 먹기도 한다. 사냥할 연어가 많기 때문에 나머지 부분은 버려도 큰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이 책은 회색곰이 사실 연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 회색곰이 연어를 먹는 것은 연어가 풍부하기 때문일 뿐, 대안적인 음식이 있다면 그걸 섭취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곰과 연어의 개체수를 파악해 이들의 행태를 관찰했다. 놀랍게도 곰은 연어의 수가 절정에 다다른 어느날 낚시터를 떠났다. 곰이 연어 대신 택한 음식은 알래스카 해안가의 붉은 엘더베리다. 엘더배리는 단백질이 풍부해 곰의 덩치를 키우는 데 제격이다. 그동안 엘더배리는 연어 산란기가 끝나가는 가을에 다른 열매들과 섞여 있어 곰들이 먹는 모습이 포착되지 않았지만, 기후온난화로 엘더배리의 결실기가 앞당겨지면서 곰들이 연어 대신 먹기 시작한 것이다. 연어를 먹든 엘더배리를 먹든 그건 곰의 자유지만, 곰이 연어를 덜 먹어 연어 사체를 먹는 동물들도 줄어들면 생태계 에너지 흐름이 바뀐다.

뉴기니 카리무이산의 새들=열대조류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1960년대 뉴기니 카리무이산에 사는 새들을 서식지 고도별로 조사한 기록을 남겼다. 50년 후 벤 프리먼은 같은 곳에서 같은 작업을 진행했다. 다행히 다이아몬드의 시절과 비교해서도 숲은 크게 훼손되지 않은 상태였다. 50년 전과 다른 것은 평균 기온이 0.39도 정도 올랐다는 점 하나였다. 기온이 올라가면 생물들은 자기가 선호하는 날씨를 따라 산 위로 올라갈까. 프리먼은 카리무이산에 사는 대부분의 새들이 50년 사이 상한 고도와 하한 고도 모두 100m 이상 올라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산기슭에 사는 새들이 중턱에 오르고, 중턱에 사는 새들이 정상으로 오른다. 그렇다면 정상에 살던 종들은 어떻게 되나. 이 책은 ‘멸종의 에스컬레이터’가 최고 속도로 운행되고 있다고 표현한다.

울타리도마뱀=울타리도마뱀은 외온동물이다. 이는 햇볕의 열기로 체온을 조절하는 동물을 뜻한다. 이 동물들이 몸을 움직이려면 체온이 어느 정도 상승해야 한다. 도마뱀이 햇볕 아래서 사지를 펼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도마뱀이 더위를 좋아하긴 하지만 무더위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햇볕이 너무 강하면 유기체가 기능을 멈추는 온도인 상임계온도를 초과할 가능성이 있다. 도마뱀은 상임계온도 아래에 있되 활동에 필요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그늘과 햇볕 사이를 왔다 갔다 해야 한다. 날씨가 뜨거워지면 도마뱀은 그늘 아래 있는 시간을 늘린다. 햇볕을 피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먹이를 찾아다닐 시간이 줄어든다. 장기간 하루에 3.85시간 이상 그늘로 피한 도마뱀은 생식을 멈췄다. 더위에 새끼를 낳지 못한 것이다.

조슈아 나무는 온난화에 적응하지 못해 서식 영역이 줄어들고 있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조슈아나무=동물만 기후에 따라 서식지를 옮기는 건 아니다. 나무도 움직인다. <맥베스>에는 “버넘의 숲이 던시네인 언덕까지 움직이지 않는 한” 맥베스는 패배하지 않을 것이란 예언이 나온다. 맥베스는 나뭇잎으로 위장한 적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나무가 새나 들짐승에 의탁해 적절한 기후를 찾아 서식지를 변경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셰익스피어는 <맥베스>의 대사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조슈아나무는 기후가 추워지면 남쪽의 멕시코까지, 따뜻해지면 북쪽으로 이동한다. 단 조슈아나무 열매를 먹는 거대동물 샤스타땅늘보가 멸종한 이후로는 이 패턴이 사라졌다. 이제 조슈아나무는 시원한 북쪽으로는 이동하지 못한 채, 자신의 이름을 단 모하비 사막의 조슈아나무국립공원에서조차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인간은 기후변화에 재빨리 적응하는 ‘기회주의자 생물’일까. 조슈아나무처럼 한 자리에서 멸종할 리는 없으니 그럴 것도 같다. 다만 기후변화 와중에 큰 혼란을 겪으리란 건 분명하다. 시리아 역사상 최악의 가뭄 이후 시리아 내전이 발생했고, 러시아와 캐나다의 폭염으로 밀농사가 실패하자 빵이 부족해졌고 이후 저항운동 아랍의 봄이 일어났다. 캐나다의 산불로 인해 미국 뉴욕 대기가 재난영화처럼 붉게 물든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 책이 소개하는 새로운 학문인 ‘기후변화 생물학’의 연구에 인간도 포함해야 할 듯하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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