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山은 山과 사람을 이어주는 오작교"

서현우 , 조경훈 2023. 6. 2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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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창간 54주년 독자와 산행]
평균 구독 30년… 독자들과 함께 북한산에 오르다
사모바위 앞에서 독자들이 가져온 월간 산 책을 들어 보이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독자들이 궁금했다. 월간<山> 독자들은 마치 배달대행 앱이나 포털 지도 사이트 어디에도 평점 한 번 남기지 않으면서 늘 배달 주문해 먹는 무뚝뚝한 단골손님 같다. 잔반으로 무엇을 남겼는지 알 길이 없으니 불안한 마음으로 매달 마감을 친다.

그래서 창간 54주년을 맞이해 이번엔 지면 밖으로 나와 독자들을 만나봤다. 정기구독자를 대상으로 임의로 산행에 동행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흔쾌히 7명의 독자들이 시간을 내어주었다. 북한산국립공원 구기탐방지원센터에서 만난 이들의 구독 개월 수를 들어보고 평균을 내보니 자그마치 30년이다. 서당 옆에서 3년을 지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월간<山>을 30년 본 독자들은 풍월을, 아니 산을 어떻게 읊을까? 또, 왜 30년이나 계속 월간<山>을 본 걸까?

월간 54주년 독자산행을 위해 박대훈씨가 산행 리본을 준비해 왔다.

54년 역사 고스란히 함께하다

구기계곡을 따라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먼저 쭉쭉 치고 나가는 이들이 있는 반면 느긋하게 천천히 걷는 이들도 있다. 잠깐 걸음을 늦춰 후미에 이영규, 박우근씨와 나란히 선다.

"언제부터 월간<山>을 보셨나요?"

두 사람이 동시에 답한다.

"1969년 창간호부터 봤죠."

"태어날 때부터 보셨다니 정말 오래 보셨군요. 어쩌다 월간<山>을 읽게 되셨나요?"

서로 답을 양보하듯 잠깐의 침묵이 뒤따른다. 먼저 이영규씨가 웃으며 말을 꺼낸다.

"월간<山>이 나오기 전에는 등산 강습이나 산악사진 전람회 같은 것들이 많이 있었어요. 하지만 국내에서 발행되는 등산전문 잡지는 없었죠. 월간<山>이 최초였어요. 그때는 책으로 정보를 얻는 시대였기에 월간<山>이 정말 유익했어요. 등산 지식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도 익힐 수 있는 종합적인 책이었죠."

박우근씨도 거들었다.

"한라산에 올라갔다 배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했을 때였어요. 여객터미널에 잡지를 비치하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 처음 보는 책이 있었어요. '등산(월간<山> 전신)' 창간호였죠. 산을 좋아했던 터라 유익하고 재밌는 정보들이 많았어요. 이영규씨 말대로 이전에는 이런 책이 없었죠. 그때부터 월간<山>을 구독하게 됐습니다."

오래된 독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오르는 구기계곡은 신록과 바위의 이끼들로 초록빛이 만연했다. 머금었던 봄비를 조금씩 계곡을 따라 흘려보내는 소리도 들린다. 박우근씨는 작은 폭포 앞에 멈춰서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찍기 시작했다. 그는 산행 초반부터 발걸음을 멈춰 가며 이것저것 분주히 찍고 있었다. 당연히 폭포를 찍는 줄 알면서도 "무엇을 찍고 계시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의외로 폭포가 아니라 "폭포 옆 바위에 낀 이끼를 찍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요즘 같은 시기엔 이끼 사진을 찍기 좋아요. 한국에 이끼가 예쁜 곳이 참 많은 거 아세요? 통바위가 이끼를 다소곳이 입고 있는 것이 장관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이런 곳들이 대부분 비법정탐방로로 막혀 있고, 훼손도 많아져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참 아쉽죠. 그래도 산에 오면 꽃이나 바위, 새 등 찍을 게 정말 많아요. 이것도 산행의 묘미 중 하나죠."

폭포의 멋을 더해주는 조미료 정도로 생각했던 이끼를 그 자체로 애호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시각이 신선했다. 그 생각을 곱씹을 수 있도록 승가사로 올라가는 길은 한적했다. 평일이라 등산객이 적었고, 사람의 말소리보다는 자연의 소리들로 가득했다. 선선한 바람이 몸을 가볍게 했다. 저 멀리 기다리고 있는 다른 독자들이 보였다. 그들과 합류해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었다.

초여름으로 성큼 들어선 구기계곡을 감상하는 독자들. 산행 베테랑인 그들은 여유롭게 북한산을 즐겼다.

월간<山> 기사 보고 백두대간 종주

벤치에 앉아 배낭을 내려놓았다. 배낭 속에서 행동식을 꺼내려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녹차양갱을 건네준다. 박대훈씨다. 그는 이번 54주년 독자산행을 위해 자발적으로 플래카드를 준비해 왔으며, 각자의 배낭에 걸 산행리본도 만들어 나누어줬다. "어떻게 이런 걸 준비할 생각을 했냐"고 묻자, 그는 "그간 단체에서 총무 역할을 많이 해 익숙하다"며 "독자산행 제의가 왔을 때 정말 기뻤고, 30년 동안 구독했던 책에 출연할 수 있게 되어 기대가 컸다"고 답했다. 자연스럽게 승가사로 오르는 길을 그의 옆에서 걸었다.

"산을 좋아하게 된 건 어머니의 영향이 커요. 어머니 연세가 올해로 97세이신데, 아직도 산에 다니시죠. 저도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산에 올랐고, 자연스레 산이 익숙해졌어요. 그래서 70세가 넘은 지금까지도 산에 오르는 것 같아요.

월간<山> 기사를 보고 백두대간 종주도 했어요. 정말 멋있어 보였거든요. 직장을 다니던 탓에 주말마다 틈틈이 산을 탔죠. 3년 조금 넘게 걸렸던 것 같아요. 중간에 산행하다 눈과 코 사이를 크게 다쳐 응급실로 이송된 적도 있어요. 하지만 부상도 저를 막을 수 없었죠. 치료를 마치고 무사히 종주를 끝냈어요. 아직까지도 제 자신이 자랑스러워요."

승가사 갈림길에서 사모바위까지 오르는 길은 각개전투였다. 일행들 간에 간격이 조금씩 벌어졌다. 이전보다 높아진 경사에 모두들 각자의 페이스대로 산에 올랐다. 어느덧 옆에는 이번 산행의 홍일점인 신설주씨가 있었다. 그는 월간<山>을 구독한 지 이제 3년차인 비교적 젊은 60대 독자였다. 잔잔한 능선에 오르자 그에게 말을 걸 여유가 생겼다.

"최근에 읽은 월간<山> 기사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으신가요?"

"올해 5월호 주작-덕룡 산행기가 기억에 남네요."

4월에 진달래를 보려고 주작산에 다녀왔는데, 자신이 걸었던 등산 코스가 그대로 기사에 나온 게 신기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 주작산의 진달래와 기암괴석의 아름다움을 말하며, 다음에는 두륜산도 꼭 가볼 거라는 다짐을 전해주었다. 산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얼굴엔 행복이 가득했다. 꼭 새로운 산이 아니더라도, 이미 가본 산을 기사로 만나는 반가움도 하나의 즐거움인 것이었다.

산행 내내 환한 미소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최창열씨와 김기진씨.

비봉능선에 올라 사모바위로 향했다. 우중충했던 아침과 달리 하늘은 조금 푸르러졌다. 햇빛을 피해 나무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배낭에서 간식을 꺼내 함께 나누어 먹었고, 사모바위를 배경 삼아 기념사진도 찍었다. 사진 속 독자들의 손에는 월간<山> 책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 취재진은 이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월간<山> 한 권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었다. 다양한 책들을 선보이는 가운데 이영규씨가 가져온 책이 단연 눈에 띄었다. 그것은 1969년 월간<山>의 모태인 <등산> 창간호였다. 보관상태가 좋아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보물 같은 책이었다. 모두가 신비한 물건을 본 듯 입을 벌리고 창간호를 구경했다.

산행기 모은 '산행수첩' 만들기도

일정상 비봉 진흥왕순수비는 생략하고 족두리봉으로 향했다. 비봉 옆을 지날 때 이영규씨가 "과거 국립박물관으로 옮기기 전 진흥왕순수비 원본과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고 들려줬다. 진흥왕순수비는 1972년 경복궁으로 처음 옮겨졌으니, 오래된 사진임이 분명했다. 그는 이어 "문화재가 제자리에 있어야 그 가치가 있는 건데 진본을 옮긴 것이 잘한 것인지는 모르겠다"고도 했다. 한 번 생각해 볼 지점이다.

독자들은 지금까지 읽은 월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1권씩을 가져왔다. 이영규씨는 1969년 6월 창간호를 가져왔는데, 오래되었음에도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았다.  최창열씨는 여동생과의 지리산 종주 산행기가 담긴 2015년 10월호를 가져왔다. 그 외에 클라이밍 여제 김자인 선수의 어린 시절이 표지로 쓰인 박대훈씨의 2008년 6월 창간호 특집도 인상적이었다.

향로봉으로 향하는 길은 김유항씨와 함께 걸었다. 그 역시 구독 30년이 넘은 오래된 독자다. 교수였던 그는 30대 중반부터 산을 즐겨 타기 시작했는데, 지방으로 세미나 혹은 출장을 갈 때마다 해당 지역 산을 하나씩 올랐다고 했다. 13년 전 교수 생활을 마치고 난 뒤 산은 퇴직 이후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다. 실제로 그는 동네에 있는 우면산을 일주일에 세 번씩은 꼭 오른다고 했다. 70대가 되어도 그에게 산은 놀이터였다. 전직 교수라고 하니 책으로 가득 찬 서재 속의 그의 모습이 어른거려 그동안 받은 책을 다 보관하고 있는지 물었다.

"예전에는 매달 오는 책을 다 보관했지만, 최근에는 새로 온 책은 한 번 읽고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편이에요. 보관할 곳도 마땅치 않고, 지인들에게 월간<山>도 홍보할 겸 나름대로 방법을 생각해 냈죠."

대신 그는 젊었을 때부터 작성한 산행수첩은 집에 꼭 모아두고 있다고 했다.

"두 발로 걸으며 땀 흘린 흔적을 기록하는 재미가 쏠쏠해요. 나이에 따라 똑같은 코스에 걸린 시간을 비교하는 것도 재밌고요."

오늘 독자산행도 산행수첩에 적을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당연하다"고 답했다.

향로봉 하산길에 만난 좁은 돌구멍길. 독자들은 망설임 없이 이 좁은 길을 올랐다.

향로봉 지나 내려가는 길은 조금 힘들었다. 돌구멍을 지나야 했고, 가파른 바윗길을 내려 가야 했다. 풍경도 트이지 않아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걸었다. 대화할 겨를이 없었다. 반면 독자들은 나비 같았다. 스틱을 쓰지 않고도 훌쩍훌쩍 내려갔다. 안간힘을 써야 그들의 속도를 겨우 맞출 수 있었다. 젊은이의 패기는 그들의 노련함을 따라갈 수 없었다.

향로오거리 기점에서 힘든 내색을 하자 최창열씨가 다가와 "괜찮냐"고 물었다. 그는 1980년부터 월간<山>을 구독한 독자이자, 53주년 독자 인터뷰에도 참여한 월간<山>의 골수팬이었다. 그는 월간<山>에 담긴 자신의 산행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는 5남매와 함께 산행을 다녀요. 2015년에는 여동생과 함께 지리산을 종주하기도 했죠. 아무래도 힘든 코스라 여동생이 정말 힘들어했어요. 그래서 제가 동생의 배낭까지 메고 산행했어요. 정말 힘들었죠. 나중에 여동생이 이때의 산행기를 월간<山>에 기고했는데, 운 좋게도 그 글이 책에 실렸어요. 소중한 추억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에 실려서 정말 기뻤습니다."

"5남매의 우애가 정말 돈독하신가 보네요. 함께했던 산행 중 또 기억에 남는 것이 있을까요?"

"우리 셋째 퇴직 기념 산행 때 영남알프스를 종주했어요. 제수씨도 함께했는데, 산행하면서 셋째 몰래 미리 준비해 간 퇴직 기념 현수막을 보여줬죠. 그거 보고 제수씨가 감동받아서 울더라고요. 이렇게 저희 5남매는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으며 산행해요."

가파른 경사를 오르는 독자들의 모습은 나비처럼 가벼워 보였다.

월간<山>의 기둥, '독자'

독자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며 걷다 보니 풍경은 빠르게 바뀌어 있었다. 어느 샌가 족두리봉을 지나 불광역으로 향하는 능선을 걷고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은평구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모두가 휴대폰으로 이날의 산행을 기록하기 바빴고, 다시 발걸음을 옮길 때면 풍경에 대한 감탄사는 산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곤 했다. 그들은 지리산에서 곰을 본 이야기, 산에서 길을 헤매 조난당한 이야기, 본인만 아는 숨겨진 명산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모두 흥미로운 것들이었다.

산행 내내 재기 넘쳤던 김기진씨도 여기에 한마디를 더했다. 그는 "등산학교 다닐 때 김창호 대장이 강사였다"며 "늘 월간<山>에서 그의 히말라야 원정 르포를 진짜 열심히 봤다"고 했다. 서울 소재 '그랜드산악회'의 창립자이기도 한 그는 "월간<山>을 보며 산악회 운영의 틀을 다졌고, 그 덕에 20년 무사고를 기록할 수 있었다"고 했다.

어느 덧 하산지점이 코앞에 이르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산에 대한 열정과 월간<山>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에게 산은 마르지 않는 행복이고, 일상의 근심을 잊을 수 있는 쉼터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들은 "월간<山>이 우리와 산을 이어주는 오작교 역할을 해줬다"고 했다. 감사한 말이다. 하지만 그 다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든든히 버텨낸 기둥은 그들 자신인 터다.

족두리봉을 배경으로 박대훈씨가 준비해 온 54주년 기념 플래카드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산행길잡이

구기탐방지원센터에서 산행을 시작해 승가사까지는 계곡길을 따라 올라간다. 오르막과 완만한 길이 번갈아 나타나며 산행은 그리 힘들지 않다. 길은 명확하고 잘 정비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가 적다.

승가사에서 비봉 방향으로 올라선다. 짧은 오르막을 오르면 비봉능선과 합류한다.

여기서 비봉 방향으로 가면 불광역이 나오고, 사모바위 방향으로 가면 승가봉을 지나 문수봉을 만난다. 불광역으로 간다면 사모바위만 들렀다 내려가도 좋다.

비봉과 향로봉을 지나 하산하는 길에서는 북한산을 조망할 수 있는 곳들이 곳곳에 있다.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내려가지만, 향로봉에서부터 향로오거리 기점까지는

경사가 꽤 가파르다. 또한 비봉과 향로봉에 올라갈 계획이라면 장비를 갖추고 안전에 더욱 유의해야 한다.

향로오거리 기점에서는 탕춘대나 황룡사지 방향으로 탈출이 가능하다. 족두리봉 방향으로 간다면 약간의 오르내림이 있다. 힘들지는 않은 편이다.

족두리봉에서 불광역 방향으로 가려면 대호아파트 방향으로 하산해야 한다. 이 구간은 대부분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경사가 꽤 가파르다. 초보자는 안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은평구 일대를 가까이서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이 훌륭한 구간이다.

교통

북한산은 도심 속의 산답게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다. 택시도 수월하게 잡을 수 있다. 주요 기점인 대호아파트는 3, 6호선 불광역에서 약 0.6km 떨어져 있다. 버스로 이동하는 것보다 도보 이동이 더 빠르고 편하다.

취재진처럼 구기계곡에서 산행을 시작하려면 승가사입구 정류장에 하차해 주택 길을 따라 구기탐방지원센터로 가면 된다. 구기동 공영 주차장에 차를 주차할 수 있고, 비봉 탐방지원센터 등 다른 탐방로로 산행할 수도 있다.

맛집

불광역으로 하산하면 불광동 먹자골목에서 끼니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중 가볼 만한 곳은 중화원(02-353-3379)이다. 해물누룽지로 유명한 중국집이다. 짬뽕 맛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짜장 5,000원, 짬뽕 7,000원으로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산행 후 가성비 좋게 배를 채우기 좋은 곳이다.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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