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수제비·덩크슛 기계…세상 쓸모없는 것의 쓸모 [ESC]

한겨레 2023. 6. 2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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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커버스토리]커버스토리 ‘쓸데없는 물건’ 만드는 사람들
유튜브 채널 긱블, 과학 원리 이용해 기상천외한 작업 화제
어린이·청소년용 ‘메이커 스페이스’ 인기…도전과 실패 장려
어른 기준 쓸데없어도 만드는 것 자체 의미…몰입 경험도
‘긱블’에서 제작한 ‘덩크슛 기계’로 덩크슛을 성공하는 모습. 긱블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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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수제비는 냇가에 납작한 돌을 던져 돌이 수면 위를 통통통 튕기도록 해 누가 멀리 보내는지 경쟁하는 놀이다. 돌을 어떻게 던질 때 물수제비가 잘될까? 이걸 연구한 과학자들이 있는데, 납작한 돌을 골라 이 돌의 입사각이 20도가 되도록 빠르게 회전을 주며 던지면 돌이 수면에서 가장 많이 튕긴다고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원리를 적용한 물수제비 기계가 나왔다는 것. 물수제비 기계는 돌을 약 20도 각도로 재빨리 던져주는 회전 기계다. 손목과 팔꿈치의 움직임을 본떴다. 기기의 틈에 납작한 물체를 끼우고 손잡이를 돌리면 돌이 원하는 각도와 방향으로 날아간다.

“쓸모 있는 물건은 이마트에서”

‘세상 쓸모없는’ 물수제비 기계를 도구로 실현한 곳은 유명 유튜브 채널 긱블(Geekble)이다. 2020년 10월 긱블은 부품을 제작하기 위해 철공소를 찾고 작업실에서 용접을 하는 등의 물수제비 기계 ‘메이킹 필름’을 공개하기도 했다. ‘긱’(Geek)과 할 수 있다는 의미의 ‘에이블’(able)을 합친 긱블은 “공대생들이 모인 과학/공학 콘텐츠 제작소”를 표방한다. 여러 ‘메이커’들이 과학과 공학 원리를 이용해 독특한 작업을 한다. 긱블은 채널 소개에서 “저희는 쓸모없는 작품만 만듭니다. 쓸모 있는 물건은 이마트에서 찾으시는 게 좋습니다”라고 당당하게 적어놨다. 물수제비 기계 등 여러 ‘쓸데없는’ 키트를 모아놓은 팝업 스토어를 지난 5월에 열었다.

유튜브 채널 ‘긱블’에서 물수제비 기계를 시연 장면. 긱블 화면 갈무리

긱블은 최근엔 ‘덩크슛 돕는 기계’를 만들기도 했다. 나이키 매장을 직접 방문해 점프를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에어 조던의 기술력 설명을 듣고 이를 적용해 만든 것이다. 이 기계에는 공기를 압축시켰다가 수직으로 팽창하면서 점프를 돕는 공압 실린더를 넣었다. 발이 닿으면 기계가 자동으로 튀어오르게 하기 위해 표면에 압력 감지 센서인 감압센서를 부착했다. 감압센서는 물체에 눌리면 저항이 달라지면서 자극을 감지한다. 초기 모델에서는 상판에 카본 소재를 이용했지만 무게가 무거워 점프가 잘 되지 않자, 가벼운 알루미늄 소재로 변경했다. 이 기계는 엄청난 점프력을 선사하며 결국 실험자의 덩크슛을 성공시켰다.

‘긱블’에서 만든 물수제비 기계 조립 키트와 펀딩 화면. 와디즈 펀딩 페이지 갈무리

과자를 먹다 보면 손에 과자 부스러기가 묻어 번거로운 일을 해결할 ‘손가락 세탁기’가 달린 과자통을 만들기도 했다. 이 기계장치는 롤러 모양의 솜 2개를 나란히 배치해 그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 문지르면 과자 부스러기가 제거된다. 톱니바퀴와 기어를 넣어 솜이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골고루 잘 닦이도록 디자인했다. 긱블은 이 제품을 다이슨 재단에서 주최하는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에 출품하기도 했다.

긱블은 이밖에도 프라이드치킨을 집어넣으면 양념치킨이 돼서 나오는 ‘치킨 발사기’와 폭이 좁은 통에 들어 있는 프링글스를 쉽게 꺼내는 기구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쓸모가 있어야 좋은 물건이나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는 요즘 세상에서, 긱블의 활동은 특별하다. ‘저걸 해서 어디에다 쓰려고’라는 생각이 들 만큼 황당하고 의미 없는 일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는 것일까. 긱블의 모토는 “쓸모없는 도전은 없으니까”이다.

“뻘짓 해봐야…”

퓨처랩에서 다양한 공구를 활용해 제작하고 있는 학생들.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최근 어린 학생들도 자신의 손으로 ‘쓸데없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메이커 스페이스’가 늘고 있다. 지난 10일 토요일 경기 판교에 위치한 청소년 대상의 메이커 스페이스 ‘퓨처랩’을 찾았다. 퓨처랩은 게임업체인 스마일게이트가 2016년에 문을 연 곳이다. 퓨처랩에 들어서자 초등학생과 중학생 작업자가 나무판을 톱질하고 있었다. 방패와 투창을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초등학생 작업자의 손 크기에 맞춰 방패를 만들고 손잡이를 못으로 박았다. 투창의 끝도 뾰족하게 만들었다. 제작을 마친 아이들은 투창을 던지고 방패로 막으며 한참을 즐거워했다.

지난 10일 경기 판교에 있는 청소년 대상 메이커 스페이스 ‘퓨처랩’에서 한 어린이가 나무로 비행기를 만들고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다른 한쪽에서는 중학생들이 실로폰과 나무, 모터를 이용한 악기를 만들고 있었다. 한 학생이 타원형 나뭇조각을 모터 끝에 붙이고 전원에 연결했다. 모터가 돌자 나뭇조각 끝이 실로폰을 치며 ‘솔’ 음을 규칙적으로 냈다. 모터를 나무에 붙여보려 했지만 잘 안 붙었다. 옆에 있던 다른 학생이 장치를 살펴보더니 “나무에 코팅이 돼 매끈해서 글루건도 본드도 안 붙는다”며 나무판에 사포질해 거칠게 만든 뒤 글루건으로 모터를 붙였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노하우다. 모터가 안정적으로 장착되자 악기는 확장됐다. 실로폰 ‘미’ 음 조각이 추가됐고, 회전판이 돌며 막대기를 올렸다 내리는 장치도 이어 붙였다. 스위치를 누르자 모터 끝의 나무판은 ‘미’와 ‘솔’을 반복적으로 연주하고, 막대기 끝은 ‘도’ 음을 연주한다. 실로폰 소리가 청아하게 울리는 가운데 학생들은 한참 동안 나무 악기의 움직임을 들여다봤다. 이들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이 공간 안에서 필요한 재료를 스스로 골라 작업을 진행했다. 작업자들의 호기심과 협동이 의미 없던 재료에 ‘악기’라는 의미를 준 셈이다.

나뭇조각과 실로폰 조각, 모터를 이용해 완성한 악기. 목정민 제공

퓨처랩에서는 다양한 시도와 끊임없는 실패를 장려한다. 임상빈 퓨처랩 교육예술가는 퓨처랩이 제작한 다큐 <창의는 어디에서 오는가>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것만 창작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질적으로는 수많은 실패 과정이 있어야 한다”며 “여기서 만든 것은 쓸모없는 짓으로 끝날 확률이 굉장히 높다. 망쳐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 교육예술가는 효율성만 강조되는 세상에서 실패 경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이것을 했으니 이만큼 결과를 내야 한다는 어법이 (사람을) 창의적이지 못하게 만든다”며 “뻘짓이나 삽질을 해보지 않으면 무엇인가를 창작해 내는 과정은 만들어질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작업을 하다 보면 몰입의 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작업자 한규현(15)군은 최근 팔굽혀펴기 운동 도구(푸시업바)를 만들다 몰입을 경험했다. 한군은 손바닥으로 봉을 잡아도 아프지 않도록, 각목을 대패로 밀고 사포기로 갈아 둥글게 만들었다. 그는 “대패와 사포기로 사각기둥 각목을 원통형으로 다듬는 데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며 “신경을 쓰지 않고 작업하다 보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설명했다. 몰입하게 되면 몇시간이 한순간처럼 느껴지는 ‘시간 왜곡 현상’을 경험한 것이다. 그는 “경험하고 싶어서 자꾸 작업하게 된다”며 “만드는 것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작업자 남궁호현(14)군은 태엽 시계 부품 디자인에 몰입한 경험이 있다. 기계식 시계를 만들고 싶었던 남궁군은 3D 프린팅으로 수백개에 이르는 부품을 하나하나 직접 설계했다. 학교와 학원을 다녀온 뒤 남는 여유 시간을 쪼개 3D 프린팅을 공부했다. 그는 현재 3D 프린터로 출력한 부품을 조립하고 있는데,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그래도 다시 설계해서 조립하겠다고 의지를 다지고 있다. 그는 “쓸모없는 것을 만드는 과정을 거쳐야 쓸모 있는 걸 만들 수 있다”며 “시행착오는 과정일 뿐”이라고 전했다.

퓨처랩에서 공구를 활용해 나무판을 자르는 모습.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작업을 위해 필요한 재료와 공구도 다양하다. 청소년 작업실에서는 끝이 뜨거운 글루건, 실톱이나 목재 재단기, 드릴, 망치, 못, 납땜 기구, 용접기 등 다양한 도구가 구비돼 있다. 그리고 평소 보기 어려웠던 도구들은 제작 욕구를 끌어올리는 동기가 된다. 학교에서는 안전을 위해 위험할 수 있는 도구는 사용을 꺼린다. 글루건을 사용할 때 장갑을 끼지 않으면 감점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청소년 작업실에서는 도구 사용에 조금 더 자유롭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작업 도구를 사용하다 다칠까 봐 걱정된다는 시선도 있다. 이강희 퓨처랩 작가는 “이곳에서 도구를 사용하다 다친 작업자는 작업장을 운영하면서 한명도 없었다”며 “아이들에게 장비를 쓰는 방법을 충분히 알려주고 책임감을 부여한 뒤 옆에서 지켜보면 아이들이 놀랍게도 장비에 익숙해지고 점점 더 잘 사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에디슨과 라이트 형제의 실패

퓨처랩에서 작업물을 만들고 있는 어린이.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도서관 속 청소년 작업실’ 스토리스튜디오는 주변으로부터 ‘압박받지 않는 환경 조성’을 강조한다. 이곳에서 학생 작업자들은 재촉당하지 않고 실패하더라도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기록된다. 육예은 스토리스튜디오 매니저는 “작업자들이 만화책을 읽고 음악을 듣거나 낙서하는 행동 모두 이야기를 쌓는 시간으로 바라보고 있다”며 “이런 행동이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시선에서 벗어나, 작업자들은 스토리스튜디오 안에서 존중받고 대우받는 경험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 작업자들의 ‘쓸데없어 보이는’ 작업물을 대하는 부모의 시선에 대해서도 매니저들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성훈 스토리스튜디오 매니저는 “‘쓸데없는 걸 만들었네’라거나 ‘이걸 가져가서 집 어디에 두려고 하느냐’는 말을 들을 때도 있었다”며 “작업자들이 마음 편하게 만들어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며 작업물을 들고 나갔을 때 입구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많이 속상하다”고 말했다.

작업자들은 주변 시선과 말 한마디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서울 서초구에서 ‘어린이 작업실 박박’을 운영하는 박주영(41)씨는 작업하는 아이를 둔 부모를 위한 안내문을 만들었다.

“부모님이 보시는 결과물 안에는 수많은 작은 성공과 실패들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때로는 결과물이 없기도 합니다. 결과물보다는 ‘오늘 무슨 재료 썼어?’ ‘어떤 친구를 만났어’라고 아이의 경험과 과정에 대해 물어봐주세요.”

박씨는 “작업자들을 통해 부모님께서 ‘다음엔 이런 거 만들어 오지 말라’고 했다거나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들어 오라’고 했다는 말을 자주 전해 듣고 부모를 위한 안내문을 만들게 됐다”며 “어른이 여유를 갖고 작업을 바라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에디슨은 전구를 개발하기까지 147번 실패했고, 라이트 형제는 비행에 성공하기까지 805번 실패했다. 에디슨의 147번째 불이 켜지지 않는 전구와 라이트 형제의 805번째 날지 못하는 비행기는 쓸데없는 물건이었을까? 이 실패작은 주목받지 못했지만, 에디슨의 전구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는 이 실패작이 있었기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위대한 발명 이전에는 쓸데없는 것을 만드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목정민 객원기자 겸 과학 콘텐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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