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마흔 살 발레리나 강미선
몸을 쓰는 직업에는 전성기가 있다. 스포츠와 공연예술이 그렇다. 극한의 체력에다 가혹한 다이어트까지 요구하는 발레는 그중에서도 제약을 심하게 받는 분야다. 발레 영화 ‘블랙 스완’에 출연했던 배우 내털리 포트먼은 발레리나 몸매를 만들기 위해 그렇지 않아도 마른 몸에서 9㎏을 더 덜어냈다. 잠시 맛본 발레리나의 삶이 얼마나 혹독했던지 영화 개봉 후 “일주일만 더 이렇게 살았으면 미쳐버렸을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많은 무용수가 “무대에 서고 싶어도 더는 안 된다”며 발레를 그만두는 나이가 대략 마흔 전후다. 세계 5대 발레단 중 하나인 파리오페라발레단(POB)이 정년을 42세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 로열발레단과 러시아의 마린스키, 볼쇼이 단원도 40~42세 사이에 무대를 떠난다. 세르비아 국립발레단이 정년을 50세로 연장하자 발레단원들이 힘들어 못 한다며 들고일어난 적도 있다.
▶유니버설 발레단(UBC) 소속 수석 무용수 강미선은 1983년 3월생으로 올해 마흔이다. 그가 발레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최우수 여성 무용수상을 수상했다. 한국인으로 다섯 번째 수상이지만, 마흔을 넘겨 이 상을 받은 이는 강미선이 처음이다. 앞서 수상한 강수진은 32세, 김주원은 28세, 박세은은 29세였고 김기민은 24세였다. 게다가 워킹맘이 수상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라고 한다.
▶마흔의 벽을 넘겨 무대에 서는 발레리나가 없지는 않다. 올해 환갑인 이탈리아 발레리나 알레산드라 페리는 여전히 현역이다. 53세에 내한해 14세 줄리엣 역할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러시아에선 발레리나 마야 플리세츠카야가 1995년 만 70세로 볼쇼이 극장 무대에 서는 기록을 세웠다. 한국인 중엔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이 49세이던 201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오페라극장에서 고별 무대를 가졌다.
▶강미선이 어느 인터뷰에서 마흔 워킹맘으로 무대에 서는 각오를 이렇게 밝혔다. “나이 먹으니 골반이 굳고 허리도 전처럼 꺾이지 않았어요. 꺾이지 않으면 별수 없죠. 연습으로 꺾어야죠.” 발레 무용수에게는 ‘클래스’라는 명칭의 워밍업이 필수다. 고난도 동작이 포함돼 있어 임신한 무용수에겐 권하지 않는다. 강미선은 출산 2개월 전까지도 클래스에 참여했고 엄마가 되고 석 달 만에 몸 만들기에 나섰다. 그걸 본 문훈숙 UBC 단장이 여성 주역 무용수의 체력 소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악명 높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맡겼다. 마흔 살 발레리나 강미선이 땀의 소중한 가치를 곱씹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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