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농막 대신 ‘텃밭주택’을 허하라

이봉현 2023. 6. 2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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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귀농·귀촌을 꿈꾸거나 ‘5도2촌’ 하는 도시 중장년층은 우선 농막을 들여놓고 농사체험을 하는 경우가 많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들어 농막 사용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하려다 비판 여론이 많자 지난 14일 이를 잠정 중단했다. 독자 김송은씨 제공

이봉현 ㅣ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사람들이 자꾸 잔디밭을 가로질러 다니면 ‘출입 금지’ 팻말을 세우기보다 길을 내주는 게 나을 때가 있다. 애초 길이 이상하게 났을 수도 있고, 중간에 편의점 같은 게 생겨 행인의 동선이 달라진 경우도 있다. 정부가 일을 할 때도 이런 융통성이 필요하다.

정부가 농지에 설치하는 농막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하려다 보류했다. 반발 여론이 커지자 윤석열 대통령까지 신중한 추진을 주문했고, 결국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주 농지법 시행규칙 입법예고를 중단했다. 관련 누리집에는 항의의 글이 몰렸는데, 몸은 도시에 있어도 마음은 전원을 꿈꾸는 중장년층의 바람이 잘 드러났다.

이렇게 되자 규제 강화를 주도한 감사원과 농림부가 국민의 마음을 살피는 데 둔감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들의 문제는 훌쩍 커진 몸을 예전의 작은 옷에 자꾸 구겨 넣으려 한 것이다. 그 작은 옷이란 농지법 시행규칙의 ‘농막’ 규정이다. ‘농자재 및 농기계 보관, 수확 농산물 간이처리 및 일시 휴식을 위해 설치하는 시설’로 ‘연면적 20㎡(약 6평) 이하이고 주거 목적이 아닌 경우’가 그것이다. 법대로 해석하면 농약, 비료, 예취기 등을 들여놓은 공간에서 잠시 낮잠은 가능하지만 밤에는 잘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오래전 도입된 이 협소한 규정에는 은퇴를 앞둔 수백만 베이비붐 세대의 고민, ‘5도2촌’ 하며 도시의 고단함을 풀어보려는 중장년의 ‘로망’, 인구소멸을 막고자 귀농·귀촌인과 주말 방문자를 늘리려 발버둥 치는 지자체의 노력이 들어갈 틈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법이 있으니 감사원은 올봄 농막 실태감사를 대대적으로 했고, 농림부는 불법 농막이 많다는 지적에 따라 농막 본래의 목적을 지키는 방향으로 규제안을 내놨다. 지난 10여년은 변화한 농촌 실정에 맞게 농막에 전기, 수도, 난방 설치를 허용해왔는데 이런 규제 완화 흐름을 되감는 ‘역주행’이었다. 농지 면적에 따라 약 2평, 4평으로 농막 규모를 축소하고, 그마저도 휴식 공간이 4분의 1을 넘으면 안 된다는 개정안은 “농민이 아니면 농촌에 오지 마라”는 뜻으로 읽혔다.

개정안을 철회했다고 아무 일 없던 게 되진 않는다. 현실과 동떨어진 모호한 법규는 계속 혼선을 부를 것이다. 일선 지자체는 이 소동을 겪은 마당에 종전처럼 농막 업무를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각에선 총선 뒤 정부가 같은 카드를 다시 꺼내는 거 아니냐며 미심쩍어한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농림부가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폭넓게 듣고 제대로 된 대안을 마련할 때다.

이번에 확인된 국민의 바람은 “농지를 쪼개 농막 단지를 만들어 파는 불법이나 호화 농막, 농지 투기는 엄정히 단속하되, 주말 농부와 귀촌인이 소박하게 사용하는 것까지 색안경을 쓰고 보지 말자”는 것이었다. 시골에서 가족과 텃밭을 가꾸며 하룻밤 쉬고 올라가는데, 이게 범법이냐 아니냐를 자꾸 신경 쓰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물론 법대로 해야 하는 공무원이기에 현행 농막 규정이 있는 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그렇다면 ‘텃밭주택’ 같은 새 범주를 만들어 국민이 원하는 농사용 간이 주거시설에 법적 근거를 마련해주면 어떨까? 러시아의 주말주택 ‘다차’, 독일 가족농원 클라인가르텐(작은 정원) 내 오두막집 등 외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농막은 어감부터 나무와 천으로 엮은 가설물을 연상시켜, 전문업체가 디자인과 단열 등을 고려해 제작하는 요즘 농막과 거리가 있다. 텃밭주택의 연면적은 지금처럼 6평으로 하고, 전입 등 주거 목적 사용은 계속 금지하되, 그 외는 농기구를 들여놓든 하룻밤 자고 가든 정부가 간섭할 필요가 없다. 지역마다 달랐던 정화조 등 시설 기준도 구체화하고, 비 가림용 어닝, 데크, 주차장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분명히 해 혼선을 줄여야 한다. 허가받아 농촌주택을 지은 이들과 형평을 고려한다면 일정한 ‘텃밭주택세’를 걷는 방법도 있다.

식량 안보를 챙기는 정부가 농막에 의한 농지 잠식을 걱정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그런데 요새 경지 면적이 줄어드는 이유는 농막보다는 고령화로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서이다. 논밭은 한해만 묵혀도 산이 된다. 일부 눈살 찌푸리게 하는 사례도 있지만, 마을 주민들은 외지인이 텃밭을 오가기에 주말에나마 사람 소리 난다고 좋아한다. 이들은 지역 농협, 철물점, 전통시장 같은 데서 돈을 쓰게 마련이다. 계절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듯, 시대가 변하면 법과 정책도 새로워져야 한다.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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