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호우 다가오는데… 전국 곳곳에 가파른 산비탈 태양광 ‘아슬아슬’

세종=전준범 기자 2023. 6. 2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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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동 중인 산지태양광 1만5220개
국지성 폭우에 산사태 빈발인데도
산지전용 허가 2583건 ‘공사 계속’
경사도 기준 25→15도 강화했으나
산지태양광 상당수는 경사도 초과
여름철 집중호우가 잦은 우리나라 날씨 특성 탓에 산지 태양광 시설 주변에서는 매년 크고 작은 산사태가 발생한다. 사진은 2018년 7월 3일 경북 청도군 매전면 온막리 국도 58호선 옆 야산에서 산사태가 나 산비탈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시설이 무너진 모습. / 뉴스1

본격적인 여름 장마 시즌을 앞두고 전국 산림에 깔린 산지(山地) 태양광 발전 시설에서 사고가 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산지 태양광은 나무를 잘라내고 산비탈에 설치해 지반이 대체로 약한데, 우리나라는 특정 지역에 확 쏟아지는 국지성 폭우가 잦아 사고의 위험이 더 크다. 올여름은 예년보다 더 많은 비까지 예고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국 1600곳 넘는 산지에서 태양광 설치를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정부는 2018년 태양광 시설을 구축하려는 산지의 평균 경사도 기준을 25도 이하에서 15도 이하로 강화했다. 태양광 시설을 지으려는 산지의 경사도가 18도라면 예전에는 허가가 났는데, 지금은 안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부가 경사도 기준 강화 이후 개발을 허가한 산지 태양광의 24%도 15도를 초과한 상태다. 관련 법 개정 전 설치 신청부터 해둔 사업자는 강화된 규제를 적용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에 따르면 사업자가 산지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산지전용 허가를 받은 건수는 2583건이다. 이 가운데 1628건은 공사에 착수했다. 사진은 2020년 8월 11일 산사태 피해를 본 충북 제천 대랑동의 한 태양광 발전 시설에서 관계자가 복구 작업을 하는 모습. / 뉴스1

◇ 여의도 17.6배 산림 사라져

22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산림청 등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가동 중인 산지 태양광 발전 시설은 1만5220개다. 또 이와 별개로 사업자가 산지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산지전용 허가를 받은 건수는 2583건이다. 이 가운데 1628건은 공사에 착수한 상태다. 윤석열 정부 들어 전(前) 정부의 신재생 폭주에 제동을 걸었지만, 여전히 전국 곳곳에서는 태양광 구축을 위한 벌목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선언과 함께 육지 태양광 보급 속도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산림 훼손이 급증했다. 정부에 따르면 태양광 설치 목적의 산지전용 허가 면적은 2015년 522헥타르(㏊·1㏊=1만㎡), 2016년 529㏊에서 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1425㏊로 3배가량이 됐다. 2018년에는 2443㏊까지 늘었다.

이후 산림 파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자 산지 태양광 허가 면적은 2019년 1024㏊, 2020년 229㏊ 등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2017~2020년만 따져도 서울 여의도의 17.6배에 달하는 5131㏊ 산림이 태양광 시설 후보지가 됐다. 이 기간에 벌채된 입목은 259만8000여그루에 달한다.

문제는 산림 훼손의 부작용이 여름철 집중호우가 잦은 한반도 날씨 특성과 맞물려 매년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긴 장마가 찾아왔던 2020년 여름에는 강원 철원, 충북 제천, 충남 금산·천안, 전북 남원, 전남 함평, 경북 성주·고령·봉화 등 태양광 시설이 설치된 전국 각지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그래픽=정서희

300㎜ 넘는 폭우가 쏟아진 작년 8월 9일 강원 횡성 둔내면 현천1리에서는 무너진 야산에 70대 주민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때도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산사태 발생 지점 약 2만㎡ 부지에 설치된 대규모 태양광 발전 시설이었다. 지역 주민들은 태양광 설치를 위해 일대 수목을 모두 제거한 것이 지반 취약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 경사도 초과 비중 통계도 없어

대규모 벌목에 따른 산사태 부작용 논란이 잇따르자 정부는 2018년 11월 산지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태양광 시설 설치가 가능한 경사도 제한 기준을 25도 이하에서 15도 이하로 강화했다. 당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산사태와 토사 유출 방지를 위해 ‘평균 경사 10도 이상, 최고 경사 15도’인 입지를 회피 지역으로 선정해야 한다고 권고했으나 문 정부는 KEI 권고보다 느슨한 경사도 기준(15도 이하)을 적용했다.

산림청이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산지관리법 시행령 개정 이후 정부가 허가한 산지 태양광 중 경사도 제출 대상은 총 3684건이었다. 이 가운데 경사도 제한 기준인 15도를 초과한 태양광은 884건으로 전체의 24%에 달했다. 기준을 초과한 884건 중 20~25도의 가파른 경사에 설치된 산지 태양광도 240건(27.1%)이나 됐다.

이는 산지관리법 개정 전에 설치 신청을 한 태양광 시설에 대해 정부가 강화된 기준 적용을 면제해줘서 벌어진 일이다. 경사도 기준을 넘어선 산지 태양광을 지역별로 보면 전남이 344건으로 가장 많았다. 전남 뒤를 경북(152건), 경남(101건), 전북(92건), 강원(75건), 충남(58건), 충북(32건), 경기(28건), 세종(2건) 등이 따랐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1년 7월 3일 산림청 관계자들이 전남 광양시 봉강면에 있는 산지 태양광 시설을 찾아 안전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 뉴스1

범위를 넓혀 현재 국내에서 가동 중인 전체 산지 태양광 발전 시설 1만5220개 가운데 현 경사도 기준(15도)을 초과하는 시설은 몇 개나 될까. 에너지 당국인 산업부 관계자는 “통계를 산림청에서 갖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산림청 관계자는 “산지전용 허가를 받고 태양광 시설을 지으면 그때부터 해당 산지는 산지관리법 관리 대상에서 빠진다”며 모르겠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여름 역시 예년과 마찬가지로 특정 지역에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국지성 폭우가 잦을 예정이어서 정부의 긴장감은 커지고 있다. 더구나 올해는 엘니뇨(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수준으로 수개월 이상 지속하는 현상)로 많은 비까지 예상된다. 기상청은 지난달 발표한 ‘3개월(6~8월) 전망’에서 “엘니뇨 등의 영향으로 7월 중순부터 많은 비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업부는 산사태에 취약한 태양광 설비 1408개를 선정해 지난 2월부터 점검 중이다. 6월 중 모든 점검을 마친다는 계획이지만, 점검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 관계자는 “안전 관리가 미흡한 태양광 설비 운영자에게 보완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며 “응하지 않으면 신재생 에너지 공급 인증서(REC) 발급 중단 등의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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