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과 사(死)는 하나···"웰빙이 곧 웰다잉"

정예지 기자 2023. 6.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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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권 웰다잉 강사
준비 못한 가족 죽음 계기, 강사로 나서
자서전·神에게 보내는 자소서 써보기부터
직업으로서 강사, 조급함 덜고 봉사라 생각
[서울경제]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웰다잉’ 강사 강병권(71·사진)씨는 8살 되던 해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의 어머니는 2014년 몸이 불편에 찾은 병원에서 암 판정을 받은 뒤 한 달여 만에 숨을 거뒀다. 기억도 어렴풋한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임종을 앞두고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했지만, 이미 몸이 쇠약해진 뒤라 ‘함께 살던 곳에 가보고 싶다’는 소원은 끝내 들어드리지 못했다. 부모의 죽음을 접하며 그는 ‘삶의 마무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갑작스럽게 당하는 이별’이 아닌 ‘준비한 이별’이 모두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18년부터 ‘웰다잉’을 공부해 올해로 벌써 5년째 강사로 활동 중인 강 씨를 라이프점프가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 본사에서 만났다.

강병권 웰다잉 강사가 31일 라이프점프 본사에서 그가 어떻게 웰다잉 강사가 됐는지 설명하고 있다. / 정예지 기자

웰빙이 곧 웰다잉

“생(生)과 사(死)는 분리되는 것이 아니기에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그는 웰다잉을 ‘죽음을 준비해 남은 가족들이 당황하지 않게 돕고, 노후를 구상해 보는 여생의 시작점’이라고 정의했다. 통상 웰다잉을 편히 임종을 맞는 것이나 유언장을 미리 써두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설명한 웰다잉은 단순히 ‘죽음을 준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에도 방점이 찍혔다. 웰다잉 교육은 그의 삶도 ‘웰빙’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무엇보다 가진 걸 나누게 됐다”며 "선한 영향력을 베풀며 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업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유언장 작성 등 죽음을 준비하는 것부터 용서와 이해, 자아 성찰, 버킷리스트 작성 등을 고루 섞어 운영한다. 그는 꼭 웰다잉을 공부하는 사람을 떠나 모두에게 ‘자서전 쓰기’와 ‘신에게 보내는 자기소개서 쓰기’를 추천한다. 지난날을 낱낱이 써내려 가다 보면 인생에서 후회되는 것과 부끄러운 일, 소중한 것들이 스쳐 지나가고 북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엉엉’ 소리 내 우는 수강생도 간간히 있다고 그는 전한다. 강 씨는 “글을 완성하면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 지가 명확해진다”고 힘줘말했다.

강사=열정적으로 배우는 사람

강씨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33년 일하다 2012년 만 60세에 정년퇴직 했다. 캘리그라피와 오카리나 배우기 등 취미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던 그는 2014년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웰다잉을 접한 뒤 강사가 되기 위해 대한웰다잉협회에서 웰다잉 기본 교육과 웰다잉 심화 교육을 받았다. 자격증 취득 후 바로 강사로 서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예비 강사들과 커뮤니티 ‘웰다잉문화연구회’를 꾸려 함께 강의 시연을 하거나 교안을 만들고 동향을 파악하는 등 ‘내공’을 쌓는데 주력했다. 관련 세미나나 포럼이 열리면 빠지지 않고 쫓아 다녔다. 그는 “남의 강의 자료를 베끼는 건 한계가 있다”며 “유튜브와 포털 검색, 논문 등 배울 곳은 무궁무진하다”고 전했다. 그간의 노력으로 강 씨는 ‘전문 강사’로 거듭나 노인대학과 보건소, 노인복지관, 종교시설, 50+센터 등에서 웰다잉의 개념, 완화의료의 종류와 오해, 사별관리, 자살 예방 등을 강의한다.

“웰다잉 강사들과 협업해 강의를 제안하러 다녔어요. 기회가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했는데, 진정성이 통한 탓인지 만족도가 높아 정규 강좌로 승격되거나, 다른 기회가 들어왔어요.” 인생 2막에 강사로 거듭난 그는 제일 필요한 자질로 ‘배움과 열정’을 언급했다. 그는 강의 자료를 재활용하는 법이 없다. 강의가 들어오면 기존의 파워포인트(PPT)를 그대로 쓰지 않고 매번 새로운 것을 추가한다. 2시간 강의에 PPT 80여 장을 준비해 가고, 수강생들의 집중력을 위해 퀴즈도 마련한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려는 ‘웰다잉’ 실천의 하나다. 덕분일까. 그는 지난해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선정한 ‘우수강사’에도 이름을 올렸다.

강병권 웰다잉 강사가 노인복지관에서 강의하고 있다. / 사진 제공 = 강병권

“직업보다 사회 활동으로 여겨야”

그는 강사로 활동하는 지금 행복하다. “한 분야의 전문성을 토대로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점이 최고 매력”이라고 말하는 강 씨는 인생 2막으로 강사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조급함’을 덜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직업으로 여기는 순간 강의가 없을 때 불안하고 괴로워진다”며 “사회 ‘활동’으로 생각하고 요청이 들어올 때 ‘봉사’라고 생각하는 느긋함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웰다잉 강사의 경우 최근 경로관과 복지관, 노인 대학 등의 수요가 많다고 귀띔했다.

중장년 사이에 유행했던 ‘998834’라는 말이 있다.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3일 앓고 죽자(죽을 사·死)란 뜻으로 호상(好喪)의 대명사로 일컬어졌다. 강씨의 생각은 정반대다. 그는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아파 죽는다면 자기는 물론 가족도 미처 준비할 수 없는, 교통사고사와 다를 바 없다”며 “이별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웰다잉의 저변을 넓혀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정예지 기자 yeji@lifejum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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